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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yuni May 02. 2020

벚꽃이 지는 아름다움, 벚꽃같이 아름다운...

-꽃이 지는 것은 새로움의 시작-

 


 재작년 벚꽃이 만발하던 찬란했던 봄에, 엄마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다. 대학 시절부터 배낭여행을 다니시던 고모부께서 함께 가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고모부, 고모, 고모 친구 두 분과 엄마와 나는 그렇게 유럽으로 첫 여행을 떠났다.

 대학 시절부터 자주 여행을 다니시던 고모부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유럽 여러 곳을 알차게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이동 수단은 기차였는데 기차 밖 유럽 현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묘미였다. 푸른 나무와 들판, 새파란 하늘 아래 자유롭게 노니는 소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 당시 한국에서 바쁘고 지친 삶을 이어가던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한국의 건물은 대부분 높고 빼곡하고 자연을 볼 수 없어서 온통 회색빛이다. 그러나 유럽의 집들은 자연, 집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유럽의 집들은 대부분 낮은 주택들인데, 색색이 예쁜 색깔로 칠해져 있고, 창 마다 빨갛고 노란 꽃들이 놓여 있어서 동화 속 아기자기한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평상시 성격이 예민하고 말이 별로 없는 나는 친척들과도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하는 편인데 엄마와는 속마음을 터놓을 정도로 수다를 많이 떠는 편이다. 그래서 여행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보냈다. 기차 여행을 할 때도 거의 엄마와 함께 앉아 여행지에 대한 여러 감상들을 함께 나누었다.

 “참 예쁘다. 옛날 어린 시절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여기처럼 자연과 함께 보내는 날이 많았었는데... 어릴 때 한 번은 있지? 무지개를 따라 언덕을 뛰어가던 때도 있었어. 무지개를 잡고 싶어서 두 언덕을 한달음에 뛰어갔었어. 조금만 더 가면 무지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한 언덕을 쉴 새 없이 뛰어가면 무지개가 저기 저 언덕 너머로 도망가 있고, 그래서 다시 또 뛰어가면 무지개가 저기 언덕 너머에 또 걸려있고...”

 엄마는 어린 시절 자신은 호기심도 많고 감성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서 크게 웃으셨다. 엄마에게 자연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바티칸 박물관을 여행할 때는 그 명성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리거나 걷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엄마는 다리 관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다.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신문사 일을 함께 하시면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뛰어야만 했던 엄마는 고관절이 생겼다. 하지만 자신의 아픔을 내색하게 되면 다른 분들의 여행이 망쳐질까 봐 아무런 내색도 않으신 채 힘겨운 여행을 하셨다. 자주 앉아가길 반복하던 엄마와 내게 고모부께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특징과 역사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유럽은... 복지가 잘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노인이 되어서도 부부가 함께 손잡고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인이지만 사람들이 참 곱게 늙지. 늘 여유와 웃음이 표정 속에 머물러 있거든. 그런데 한국은 어때요? 젊은 시절은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숨 가쁘게 살다가 나이 들어서는 아픈 몸뚱어리 하나 남잖아. 돈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게 참 안타깝지.”

 나이 들어서는 아픈 몸뚱어리 하나 남는다는 말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 엄마도 젊은 시절에는 자식들을 위해서 쉴 새 없이 달렸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무너져버린 아픈 두 다리가 남았다.  

 바티칸 박물관 안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웅장했다. 왕의 명령에 따라 눈병이 나고 지병에 시달릴 정도로 천장에 그림을 그렸던 미켈란젤로의 그림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천지창조까지... 책에서만 보아왔던 그림들이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았다. 엄마는 박물관을 관람하는 내내 ‘우와, 우와’ 감탄사를 멈추지 않으셨다. 늘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엄마였는데 엄마는 어린 시절 호기심 많고 감성적인 모습 그대로 나보다 더 큰 감동을 느끼고 계시는 듯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이 전까지 엄마는 낮에 본 박물관의 명화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속을 맴도는 듯하셨다.

 “윤이야, 천장에 아까 그 그림들 모습 같아. 눈을 감아도 그림들이 아른아른 떠올라. 진짜 엄청났지? 어떻게 그렇게 옛날 사람들이 그 크고 멋진 건물들을 짓고 그려놓았을까? 정말 대단해. 중세 시대로 돌아간 것만 같아.”

여행을 하는 내내 고모들과 고모 친구들, 나는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주 단체 사진을 찍자고 보채는 고모들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이 많이 늙고 미워서 별로 찍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엄마는 여행하는 내내 웅장한 건물들과 예쁜 풍경 사진들은 많이 찍으셨지만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거의 없었다. 나는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고 돌아온 숙소에서 낮에 보았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수하게 박물관을 관람하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자신 없어하시던 모습을... 무언가 마음이 아련해지는 느낌이 들어 쉽게 잠이 들 수 없는 밤이었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한국에 도착하기 전, 일본에 머물렀다. 일본에서 유명한 목욕탕에 들러 그동안의 묵은 때를 벗겼다. 엄마와 나는 목욕탕에서도 함께 앉았다. 이태리 타올로 박박 때를 벗기던 엄마는 내게 등을 밀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엄마의 등을 밀었고 어릴 적 목욕탕에서 보았던 엄마의 등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오른쪽 다리는 고관절로 인해 왼쪽 다리보다 두 배는 퉁퉁 부어있었고, 등은 세월의 더께가 얹어져서 얼마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등 모습과 비슷했다. 조금은 굽고, 주름진 등... 엄마는 어린 시절 보았던 그때의 당당한 등 대신에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벚꽃을 감상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지기 전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피어있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벚꽃놀이를 간다. 벚꽃이 조화와 다른 것은 진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벚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호기심 많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쉴 새 없이 달렸던 엄마는... 그렇게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변해가고 계셨다.

 벚꽃이 완전하게 지기 전에... 나를 위해 시간을 쓰셨던 엄마께 이제부터는 내가 엄마를 위한 시간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매해 봄마다 엄마와 아름다운 벚꽃을 구경하러 가야겠다.

벚꽃이 찬란하게 피고 지던 아름답던 4월에... 나의 첫 유럽여행은 엄마와의 추억이 담겨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내 안에 고스란히 머물렀다.


꽃은 졌지만 아름다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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