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의 근황

우울증 극복 중(괜찮은 척의 말로)

by 김땡땡

참으로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써본다. 이렇게 말하면 다른 플랫폼에서는 지속적으로 글을 쓴 것 같지만 사실 글쓰기 자체가 오랜만이다. 심지어 10년 동안 이어온 나의 오랜 자랑이었던 일기조차 멈춘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가끔 PC메모장에 끄적인 날도 있긴 하지만.(난 기본적으로 손으로 쓰는 일기를 고집하고 있다)

저장글 중에는 작년에 쓰다 만 캐나다 워홀 마무리 글이 있는데 이어서 쓰기에는 한국에 온 지도 2년이 다 되어가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2년 만에 근황글을 올리는 이유는 한국에 온 이후 우울증이 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브런치에는 꾸준히 글을 썼던 것은 아니라서 그동안 글을 못 쓴 게 우울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귀국 후 한국에서 어떤 일을 겪었길래 우울증이 생긴 것일까.



캐나다에서는 1년을 다 채우진 못했지만 그럭저럭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여행도 많이 다녀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귀국이 가까워질수록 한국에 간 후 한동안 방황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우울증의 형태로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지만.

그동안 난 인생 목표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굵직한 목표를 늘 갖고 살았었다. 학창 시절 일본에서 어학연수하는 동안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해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고 일본에서의 대학진학을 포기한 유학 후반부엔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거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워홀을 경험해 봐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의 대학진학을 포기했을 때나 한국에 돌아온 후 물리학자의 꿈을 완전히 포기했을 때도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한국에서 돈을 벌어 캐나다 워홀을 가겠다는 목표 덕에 버텨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돈을 모으던 중 코로나가 터지고 팬데믹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20대 후반이던 난 이대로 나이제한에 걸려서 캐나다 워홀도 못 가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도 있었다. 다행히 조금씩 캐나다 입국 제한이 풀리게 되며 스트레스는 많이 줄었고 무사히 워홀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워홀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자 그럼 난 이제부터 뭘 보고 살아야 하지 라는 고민이 내 안에 새롭게 자리 잡게 되었다.

앞으로의 나의 목표만 잘 생각해 보면 이 시기도 지나가겠지 생각했지만 뜻밖의 곳에서 내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에 온 직후 운 좋게도 바로 취직이 되었는데 회사 상사 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분이 있었다. 문제는 좋은 의미의 관심이 아닌 지나친 참견일 때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참견으로 알게 된 남의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말하고 다니는 게 문제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누가 내 일에 참견하는걸 굉장히 불편해한다. 하지만 그분은 사무실 모두의 일에 지나친 관심과 참견을 하였고 저런 얘기를 굳이 왜 할까 싶은 류의 말들도 서슴없이 하는 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무실 모두 중엔 나도 포함되게 되었다.

그러다 익명인 브런치에서 조차 꺼내기 힘들어하는 내 치부를 어쩌다 그분에게 들키게 되었다.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는 아니고 그분이 이것저것 물어보다 대답하기 곤란해서 침묵하였는데 그게 곧 긍정의 답변이 되고 말았다. 질문 자체가 대답을 안 하면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는 질문이었지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며칠 뒤 그 일은 사무실 모두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땐 치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나에겐 오랜 시간 날 괴롭혀온 문제였다. 몇 년에 걸쳐 난 아무렇지도 않고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써하고 살아오고 있었는데 그 문제가 공공연하게 밝혀지자 순식간에 내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그동안 난 괜찮은 척하고 있었구나.


내가 괜찮은 척하고 있었다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밝혀지는 건 원치 않았다. 괜찮은 척하는 와중에도 그 문제를 해결하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그 문제를 인정하는 건 자존심이 상해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방어기제가 나온 것이었다. 자존감과 방어기제가 무너지자 무기력함과 우울함이 그 자릴 대신했고 앞서 언급한 대로 10년 동안 일상 루틴으로 지켜오던 것까지 모조리 무너졌다.

결국 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이전에도 우울증인가 싶었던 시기가 몇 번 있었지만 실제로 우울증 치료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아직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지만 약물 치료도 받고 오랜 시간 날 괴롭혀온 문제도 우연히 해결이 되어 조금씩 극복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일기를 근 1년간 못 쓴 게 많이 아쉽지만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분과는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업무적으로 얘기할 일이 많은데 척을 질 수는 없고 그 외엔 좋은 점도 많은 회사라 그런 사람 때문에 퇴사를 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해 껄끄럽지만 최대한 거리를 두며 생활하고 있다. 다행히도 그분도 내가 거리를 두려는 게 느껴지는지 예전보단 참견을 덜 하고 있다.

서서히 일상 루틴도 회복하고 있고 나의 또 다른 고민거리인 앞으로 뭘 목표로 할지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 보면서 몸과 마음을 건강히 유지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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