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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Aug 29. 2021

요리에 대하여 - 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27

  민지가 아프기 전까지 나에게 요리는 그저 하기 싫은 의무(?) 정도였다. 아주 가끔 이거 해 먹어 보면 맛있겠다는 음식이 있으면 해 먹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만들어진 재료들을 가져다가 끓이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시판 밀키트 - 특히 냉동식품은 냉동실에 항상 채워 놓고 반찬 할 것이 없으면 냉동 만두, 냉동 볶음밥 등등을 자주 해 먹였었다. 

  작년 3월 민지가 아프고 4월에 크론병 진단을 받으면서 나의 머릿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생각은 무엇을 먹일까? 였다. 예전에 나의 뇌에 30%도 차지하지 않았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일까?'가 생각의 7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크론병은 소장, 대장 소화기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보니 먹는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예민하게 먹는 것이 반응하기도 하고 (반응도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바로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이는 증상은 괜찮은데 각종 수치들이 안 좋기도 하고) 

  민지는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레미케이드 주사 치료를 시작해서 지난주에 3차 주사를 맞고 왔다. 주사를 맞으러 가면 처음 30분가량은 레미케이드의 부작용을 줄여주는 항히스타민제를 투여받는다. 처음에는 속도를 아주 천천히 투여받아서 거의 5시간가량 수액 맞는 것처럼 투여받았다가 이번 3차 때는 3시간 반 조금 넘는 시간 정도 걸려서 투여받았다. 다행히도 민지에게는 생물학적 제재 치료가 잘 맞아서 피검사 결과 crp 0.06 이하 (0.5 이하가 정상) , esr 2 (20 이하가 정상)라는 아주 좋은 결과가 나왔다. 주사치료를 하면서 변 횟수도 점차 줄었고 이제 더 이상 설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것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밀가루, 매운 것, 기름진 음식을 배제하며 죽, 된장국, 달걀국, 달걀말이 등으로만 근근이 이어졌고 과일은 거의 일체 먹지 못했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그 좋아하는 수박 한 조각 먹어보지 못하고 지냈는데 올여름에는 수박도 먹고 복숭아도 먹고, 아직은 제한된 음식이 있지만 (밀가루, 햄, 인스턴트 음식들) 그래도 그전에 비해서는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돼지고기 안심에 쌀 식빵을 구워서 블렌더에서 갈아서 만든 돈가스
양배추는 생으로 먹는 것은 아직 부담스러워서 살짝 데쳐서

요즘 우리 집 (둘 째는 빼고^^) 최애 반찬 브로콜리 데친 것에 올리브, 블루베리, 양송이버섯을 볶은 것에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 꿀을 뿌려서 만든 반찬

쌀가루로 만든 토르티야에 컬리플라워 라이스로 만든 매쉬포테이토(애들은 감자인 줄 알고 먹었다는^^)


아직은 요린이 (요리 초보)라 하나하나 만드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특히 설거지 그릇도 많이 나와서 신랑이 고생도 하지만 (우리 집 설거지 담당) 민지도 둘째도 신랑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진다.


  오늘 저녁은 토르티야를 살짝 두껍게 구워서 인도식으로 난을 만들어 카레에 찍어먹을 예정이다. 요리하는 시간이 꽤나 많이 걸려서 힘들긴 하지만 오늘도 우리 가족 건강한 식단을 위해서 또 애써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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