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엄마 Sep 09. 2020

연산의 미학

초등학교 때 연산을 가르치는 이유


  “산수는 수학이 아니죠.” 수학과를 나왔다는 이유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이유로 종종 나에게 계산을 물어보는 이들이 많다. 암산에 약한 나는 산수는 수학이 아니라는 논리를 들며 암산을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해가곤 했다. 사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연산은 수학에서 비중을 아주 크게 두진 않았었다. 지금 소개할 두 아이를 만나서 가르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 아이는 5학년 때 나를 찾아왔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다. 5학년이었기에 기본적인 연산을 할 수는 있었지만 종종 나에게 “기억이 안나요.” 라며 쭈뼛쭈뼛 이야기 하던 친구이다. 그 아이에게 수학은 자신 없는 영역이었기에 자신감부터 불어 넣어주어야 했다. 5학년이긴 했지만 3, 4학년 때 하는 덧셈, 뺄셈 문제부터 반복해서 풀게 했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느리지만 변화는 찾아왔다. 틀릴까봐 자신이 없어서 숙제를 자주 못해 오던 아이가 이제는 3~4장 되는 숙제를 척척 해서 온다. 


  또 다른 아이 하나는 수업을 시작 하고 한두 달 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수업 시간을 자주 옮기고 수업을 안 왔던 아이었다. 결석한 이유도 다양 했고 때로는 수업 10분 전에 ‘선생님 죄송한데 오늘 못갈 것 같아요.’ 라는 문자를 어머니에게 받고 허탈했던 적도 있었다. 그 친구도 연산을 시켜 보니 이게 맞는지 틀린지 몰라 우왕좌왕 했었는데 아마도 수업을 갑자기 못 왔던 이유 중 하나가 숙제를 못했거나 가기 싫어 엄마한테 오늘 하루만 빼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친구도 연산에 자신감을 키워주려고 주로 연산을 특히 나눗셈 연산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공부하게 하였다. 이 친구는 기본적으로 자신감은 넘치는 아이어서 그랬는지 앞에 이야기 했던 아이 보다 더 빨리 수학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은유작가가 수영을 글쓰기로 번역했듯 나도 수영을 수학 연산으로 번역해 본다. 수영장 가기 (책상에 앉기- 이게 가장 어렵다. 수영장 가는 것도 책상에 앉는 것도). 그 다음엔 입수하기 (첫 문제 풀어보기 - 첫 문제부터 어려우면 그 문제에서 포기해버리는 수가 있는데 그런 심리를 반영한 것인지 대부분의 문제집이 첫 문제는 쉬운 문제인 경우가 많다.) 락스 섞인 물을 1.5리터 쯤 먹을 각오하기 (모르는 문제가 있더라도 다음 문제로 넘어가서 다음 문제 풀어내기 - 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숙제는 중간까지 하고 끝을 맺지 못한다.)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줄 수영하는 친구 옆에 두기 (이렇게 말하면 과외는 필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구해줄 수 있는 친구는 학교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수학 공부를 잘 하는 설명 잘해주는 친구일 수도 있다.) 다음 날도 반복하기 (이건 모든 배움에 공통인 듯). 


  ‘산수, 연산은 수학이 아니다.’ 라고 말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연산은 인생이다. 수학을 배우는 제일 첫 시기인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에게 사칙 연산은 반복 연습을 통해 신체의 느린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연산은 필요 없는 것이라며 계산기를 아이들에게 쥐어주자고 하는 주장에 이제는 반대한다. 고사리 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충분히 주어야한다. 연산은 인생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