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은 맞이 할 겨를도 없이
성큼 다가와
문 밖에 우두커니 서있다.
깊은 밤 가끔씩 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에
잊고 있었던 시간이 나를 깨운다.
모두 잊어내고
모두 씻어내고
바람에다 실어 보낸다.
시간은 깊은 밤처럼 소리없이
바람은 낯선 사람처럼 흔적없이
문 밖에서 조용히 지나간다.
나는 그저 끄덕인다.
차가운 바람에게
지나는 사람에게
아무 말 할 수 없어서
그저 끄덕이다 그저 끄적인다.
펜 끝에 매달린 아쉬운 마음 한가닥
길게 잡아 당겨서 끄적인다.
밤새도록 종이 위를 달리는 펜은
지칠줄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