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말쯤

우울감 일대기

by 일이영




몇 주째 계속 불편했다.

뭔지 모르게 우울했고 쌓여갔다. 그것이 처음엔 작았다가 요 며칠 전부터 거의 고름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내가 있는 곳과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뭔가 계속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게 내 논문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신호인 줄 알았다.

논문을 준비하다 보면 읽을 것이 계속 생겨나고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방향이 맞는지 계속 스스로에게 피드백을 주게 되는데 그게 가장 큰 원인인 줄 알았다.


또는 내가 너무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서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최근에 러닝을 시작했는데,

성취감과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은 들지만 이상하게도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막상 시작하면 좋지만 뛰지 않고 있는 날에는 온몸의 크고 작은 근육통으로 인해 그 작은 성취감은 금방 사라졌다.

집중력에도 좋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 있는 환경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쉬었다.

잠깐 러닝도 쉬고 논문 준비도 쉬었다.

그러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생각은 많아지고 몸은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산책을 통해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전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그림도 잠깐 그리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전시 가서 감명 깊었던 것들에 대해 써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 불편한 것들이 와라락 한꺼번에 나왔다.



뭘까, 뭘까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만족하지 못하고 불편한 지.

그런데 쉽사리 찾아지지 않았다.

원인을 모르니 뭘 해도 좋아지지 않았다.


예전에 심리상담받았을 때 심리상담 분이 꼭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알았다. 원인을 찾으면 찾을수록 사실 그러한 기분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찾아야 한다면 우선 나한테 친절할 필요가 있다고.

그래서 우선은 나한테 좋은 걸 했다. 논문도 쉬고 운동도 쉬고 좋아하는 초밥도 먹었다. 게임도 조금씩 했다.

나를 위로하는 걸 우선으로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억지웃음과 억지 행동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와중에 일해야 했고 친구들도 만나야 했으니까.

일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만나야 한다. 그래서 웃어야 하고 친절해야 한다. 만약 부당한 일이 있다고 해도 항상 중립적인 입장에 있어야 한다. 쿨하게 있어야 한다.

또한 친구들을 만날 때는 거의 항상 밝은 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주변에 조금씩 말하긴 했다. 내가 좀 우울한 것 같다고. 아무래도 현타 온 것 같다고.

그리고 마침 오래된 친구한테 오랜만에 연락 와서 서로의 기분을 공유했다. 내 기분에 인정을 하고 주변에 조금씩 알리면 조금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게 나한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늘 그러하지만 늘 기대와는 다르게, 그때 잠깐 좋아지다가 집에 와 혼자가 되면 다시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나한테 '왜?'라고 자꾸 되물었다. 나도 모르겠는 데 말이다. 누구보다도 내가 그 원인을 찾고 싶은 데, 자꾸 물어서 답이 안 나오면 마치 내가 문제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의 이런 우울감은 사실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엄마한테 이런 얘길 하면 '쓸데없는 생각, 배불렀구나'라고 얘기하실 테니까.


그러다 결국 골병 났다. 막 크게 아픈 건 아니지만 병가를 냈다.

몸에 열은 나지 않았지만 열이 났다. 입 속이 말랐다. 갈증도 났다.

무언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배가 고팠다.

의욕은 없지만 단 한 가지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 게임을 하루종일했다. 밥 먹고 좀 쉬다가 시작했는 데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 앉아 있었기에 온몸이 뻐근하고 불편해도 말이다.

그랬더니 속이 풀렸다.


게임을 하는 동안 어떤 작용으로 속이 풀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나로 온전히 있어도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게임을 하다 보면 꽤나 좌절하는 상황들이 많은 데,

화나면 화내도 되고 짜증 나면 짜증 내도 되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태연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여도 된다. 천천히 하면 다시 복구되거나 다시 하면 되니까.


그러다가 다음 날 릴스를 보다가 오랜만에 에픽하이의 Born Hater를 들었다.

오랜만에 들었더니 반가워 그 곡 전체를 몇 번 듣고 에픽하이의 다른 곡도 메들리로 들었다.

그때도 속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Born Hater를 통해 내 상태에 대한 힌트를 얻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만족이 결핍된 게 아니라 불편했구나. 마음이 굉장히 불만이 많은 상태이구나.

그래서 모든 것에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렇지만 이러한 기색을 낼 수도 없어 곪았구나 싶었다.

화를 내야 할 땐 화를 내고 어떠한 의견과 생각이 영 마음에 안 들거나 불편하면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답답한 것이었구나. 그리고 좋고 즐거운 척을 안 해도 되는 데 하느라 지쳐있기도 했구나 싶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확실하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겨우 잡은 일, 겨우 시작한 공부 등등 내 행동과 말 하나 때문에 사라질까 봐.

이게 나를 조이고 조여 내 행동과 감정을 억제한다.

어떠한 특정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불편함과 불안감이 최대치로 쌓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유를 ㄷ알았으니 조금은 속이 시원하다.



그래도 좀 더 쉼이 필요하다. 다시 내가 해야 할 일로 돌아가기 위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 과거의 굉장히 나를 불편하게 하고 슬프게 했던 일이 생각이 난다.

그러면 운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거다. 가끔 이런 식으로 마음과 정신이 약해져 있으면 그러한 기억들이 강하게 작용해 신체적인 반응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마음과 정신이 좀 괜찮으면 이러한 기억들은 잘 지나간다.


지금은 아직 그 기억에 격하게 반응하는 걸로 보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언제쯤 나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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