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르다, 그래서 더 편해졌다

게으름을 넘어선 효율의 미학

by 그냥 하윤

나는 게으르다. 이보다 더 솔직한 고백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집에서는 조기 기상이 미덕이라 배웠고, 학교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고 겁을 줬다. 그래서 한때는 나도 ‘나태함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부지런한 게 무조건 좋은 걸까? 누구나 바쁘게 움직여야만 하는 걸까?


나는 쓸데없는 수고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다. 반복적인 일을 하면 짜증이 나고, 쓸데없이 분주히 움직이는 게 괴롭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보면 몸서리를 친다.

어쩌면, 덜 움직이기 위해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게 진짜 부지런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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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직업인 만큼, 나는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재정비하고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귀찮은 수작업의 연속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점점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덧 마지막 업데이트 이후 6개월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 매번 “나중에 해야지” 했던 일이 결국 미뤄지고 미뤄지면서 한동안 손도 대지 못했다.


내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한 권의 책이라고 해보자.

새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챕터(페이지)를 직접 만들고, 그때마다 책의 목차(메인 목록 페이지)도 수정한다. 책을 출판할 때처럼, 각 장의 제목을 정리하고, 페이지 번호를 매기고, 빠진 내용이 없는지 검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결국 새 프로젝트를 추가하는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정작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은 귀찮음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걸 왜 내가 직접 하고 있지?”


어차피 내가 하는 건 매번 같은 패턴의 작업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가할 때마다 페이지를 만들고, 목록을 수정하고, 링크를 걸고, 스타일을 맞추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걸 한 번에 처리할 방법이 있다면, 더 이상 이런 귀찮음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처음엔 단순히 ‘조금 더 편해지는 방법’을 고민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고민할수록 확신이 들었다.


이건 그냥 자동화하면 된다.

한 번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앞으로 이 귀찮은 과정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2.jpeg 페이지 하나하나 다 만들었던 과거의 흔적들..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예전부터 귀찮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게으르다’는 말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엔 좀 다르다. 불필요한 노동을 줄이려는 태도가 결국 더 나은 워크플로우를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귀한 시간을 절약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퇴를 해야 하니까.)


예전에 다녔던 직장에서도 그랬다.

업무 요청이 들어오면 메일로 파일을 첨부하고, 메신저로 일일이 데드라인을 조율해야 하는 방식이 너무 비효율적이고, 성가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극 내향인인 나는, 불필요하게 대화를 길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의 개발팀 상사에게 사내 업무요청 툴 제작을 건의했다. 다행히 베테랑이었던 상사는 내가 생각히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구현해 주었다. 기획자가 원하는 날짜와 기획안을 첨부해서 업무 요청을 등록하면, 작업자는 요청을 승인하거나, 반려할 경우 사유를 함께 입력할 수 있다. 또한, 상태 표시 기능을 추가하여 '대기', '작업 중', '작업완료' 등의 진행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기획자는 별도로 진행 상황을 묻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작업자도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없이 자신의 작업 상태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목록에 '작업 중' 상태가 많아지면 기획자들이 이를 보고 알아서 데드라인을 조정하면서, 업무 요청이 훨씬 수월하게 조율되었다. 더는 “이번 주는 스케줄이 많이 쌓여서요.” 라고 말하며 민망한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후, 팀장님과 함께 업무 요청 매뉴얼을 작성해 다른 팀에 공유했다. 처음에는 우리 팀만 쓰던 내부 전용 시스템이었지만, 업무 요청 과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커뮤니케이션 부담이 줄어들면서 다른 팀들도 개발팀에 요청해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통해 확신했다.

불필요한 비효율을 줄이려는 태도가 모두의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해 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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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확신은 이번 포트폴리오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방법이 꼭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노션이나 구글 사이트 같은 간편한 툴을 활용한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수정도 편리하다.


하지만 나는 오롯이 내가 직접 코딩한 사이트를 고집했다. 내가 가진 능력치를 보여주려면, 디자인, 구조, UX까지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번거로운 과정도 감수해야 했지만, 결국 내 작업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은 ‘내 손으로 만든 사이트’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자동화도 단순한 편의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구축한 시스템 안에서 최적의 효율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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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의 디버깅 끝에 완성한 관리 페이지와 포트폴리오 목차

이틀 동안, 로그인 화면부터 관리자 페이지에 필요한 항목, 추가해야 할 기능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하나씩 실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간단한 아이디어의 나열에 불과했지만, 점차 이를 구체화해 나갔다. 그렇게 내 자동화 사이트를 완성했다.


처음 자동화를 실행해 봤을 때 솔직히 좀 허무했다.

예전에는 한 번 업데이트할 때마다 30분씩 걸리던 작업이 단 몇 초 만에 끝나버렸다. 버튼 한 번 누르면 끝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이제는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를 미루지 않는다. 이전까지는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귀찮으니까 나중에 해야지.” 했던 일들이 이제는 “그냥 정보만 입력하면 되니까, 지금 바로 해버리지 뭐.” 로 바뀌었다.





나는 게으르다.

이건 내가 인정한 진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단순히 게으른 것이 아니라, 덜 귀찮아지기 위해 더 열심히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때때로 게으름이 나를 효율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포트폴리오 업데이트가 더 이상 일이 아니게 되자, 나는 그렇다면 뭐가 귀찮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귀찮음이란 결국, 개선될 여지가 남아 있는 신호 같은 것이다.


이제 나는 그냥 게으른 게 아니라, 효율적인 게으름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아니다. 덜 움직이기 위해 더 깊이 고민하고, 적은 노력으로 큰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진짜 내 방식이다. 앞으로도 덜 귀찮아지기 위해 사는 동안 열심히 고민할 생각이다.


언젠가 포트폴리오조차 알아서 멋지게 만들어지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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