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디자이너 3년 차의 착각과 깨달음
종종 챙겨보는 유튜브가 있다. 어쩜 맞는 말만 이렇게 골라서 하는 걸까 싶어서 통찰력에 새삼 감탄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과거에 고집 센 예술병 부류들을 정의 내린 내용이 있었다.
찐따들의 특징 : 뭐 하나에 꽂히면 주변을 못 보고, 지 좋을 대로 생각한다.
약간 뜨끔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곱씹어 보면 씁쓸할 정도로 정확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기 쉽다. 직장인으로서 9년, 그리고 올해로 프리랜서 3년 차가 되면서 나는 그 사실을 점점 더 뚜렷하게 체감하고 있다. 특히 프리랜서는 이러한 함정에 더 빠지기 쉬운 존재다.
얼마 전, 클라이언트가 준 피드백 하나에 묘하게 기분이 상하는 걸 느꼈다. 사실 별것도 아니었다. "이 부분은 조금 명료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같은 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아, 그런가?’ 하고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조율해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안에서 작은 반발이 일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의도를 담았는데, 더 어떻게 명확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스스로도 그 반응이 낯설었다.
순간 깨달았다. 이게 프리랜서의 고립이라는 거구나.
회사를 다닐 때는 매일매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일했다. 강제적으로라도 다양한 피드백을 받고 동료들과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환경이었으니. 서로 의견을 나누고, 수정을 반복하고, 논의 끝에 최선의 결과를 도출했다. 그러는 동안 내 작업은 더 나아졌고 내 시야를 넓힐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그런 과정이 사라졌다.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고, 혼자 끝을 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방식이 정답처럼 굳어졌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내 작업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경고등이 켜진 순간이라는 걸 느낀다.
고립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남의 말이 귀찮아지고, 피드백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내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믿음이 커진다. 하지만 그 믿음이 과연 온전한 것일까? 나는 정말 바른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내 세계를 지키느라 바깥의 소리를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업계 네트워크를 유지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있다. 전 회사 동료들과의 단톡방을 5년째 유지 중이며,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가끔 업계 이야기와 직무 고민을 나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의 오픈채팅방에도 참여 중이다. 때때로 창업자와 개발자, 디자이너들을 위한 컨퍼런스에도 참여한다. 무엇보다, 내 직업 특성상 최신 트렌드와 툴을 익히는 것이 필수다. 같은 업계 종사자들과의 소통 없이는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에, 이러한 네트워크는 단순한 교류를 넘어 필수 요소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고립을 피할 수 있을까?
내가 남의 피드백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내 고집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내가 익숙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고립이 두려워 네트워크를 유지하지만 그게 객관성을 완전히 보장해 주는 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태도'다 -내가 내 방식을 얼마나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 남의 피드백을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다.
분명히 프리랜서는 자유롭다. 하지만 그 자유는 자기 세계에 갇힐 위험을 동반한다. 회사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서로 다른 시선을 주고받던 환경을 벗어나면, 어느 순간 내 시선이 좁아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방식이 정답처럼 굳어진다. 스스로 쌓은 성벽 안에서 나만의 논리를 만들고, 나만의 기준을 세운다. 그리고 그 기준을 건드리는 말이 들려오면, 그제야 성벽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깨닫는다.
그래서 내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늘 상기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야 한다. 내 고집을 부리기보단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소통해야만 한다.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다. 자기 세계를 지키되 바깥의 소리를 놓치지 않는 것.
어떤 길은 혼자 걸을 때 더 선명해진다.
길을 내는 건 오롯이 내 몫이고, 발걸음 하나하나가 선택이 된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혼자 걸으면, 길이 아니라 나 자신을 따라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혼자 걷는 길이라도, 가끔은 발자국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변하고, 만물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그리고 나 또한 변할 수밖에 없다.
길을 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길을 잃을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믿지만, 이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또한 열어두어야 한다. 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가끔은 멈춰 서서 내 방향이 맞는지 확인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