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년의 사회생활을 회고하며
옷장에서 우연히 손이 닿은 옷은 회사에서 교복처럼 입던 스탠다드핏의 검정 재킷이었다. 어깨선을 매만지자 지난 몇 년의 시간이 어지럽게 풀려나왔다.
1인 사업자가 되고 나니 더는 단정히 차려입을 일이 없다는 게 때때로 아쉬웠다. 한때는 무심히 걸친 스웨터와 슬랙스 위에 단정한 재킷 하나를 더하고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지루하지만 단정한 복장에, 한 손에는 태블릿 PC를 끼고 능숙하게 명함을 꺼내던, 회사원 시절의 내가 사실은 꽤 좋았던 것 같다. 아침마다 입을 옷을 지긋지긋하게 고민했으면서도, 막상 그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미묘한 자신감과 안정감을 느꼈다. 마치 옷이 내게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듯했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를 선택한 건 아직 실무에 대한 욕심이 남아서였다. 상사가 떠나고, 내가 관리직으로 올라갈수록 본연의 업무보다 외부 소통과 회의, 사람 관리가 더 많아졌다. 팀원들이 업무에 짓눌려 병원을 들락거릴 때마다 나도 함께 일을 떠안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회사에 인력 충원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두 달간의 무관심뿐이었다. 오히려 신규 클라이언트만 끝없이 들어오며 업무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팀원에게 떨어지는 과중한 업무를 팀장 권한으로 딜레이 시키거나 막아내는 것뿐이었다.
대표와 마주 앉았던 날, 나는 팀의 과중한 업무와 직원들의 건강 상태를 전했다. 그러나 “건강 관리는 개인의 책임이며, 내가 주는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내가 시키는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곳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차가운 답변만 돌아왔다.
순간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나는 그 순간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소모되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합리적인 논리였을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인정하며, 내가 이 회사에 남아 있을 이유 역시 없다고 말했다. 남은 팀원들에게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퇴사를 서둘렀다. 이후 팀원들 역시 사수 없이 일을 이어갈 수 없다며 전원 퇴사했다고 들었다. 본의 아니게 주호민이 됐다.
길에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면 회사원이었던 나를 마주하게 된다. 매달 비슷하게 찍히던 안정적인 월급, 업무가 쌓여 야근하는 날에도 농담을 주고받던 팀원들의 반짝이는 눈, 텅 빈 사무실에서 졸린 눈 비비며 먹던 따뜻한 야식까지. 피곤한 와중에도 그 사소한 순간들이 꽤 소중했다. 누군가는 지금의 나도 충분히 멋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좀 더 명확한 정체성을 가졌던 것 같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 나는 내 시간을 온전히 통제하며 더 자유롭게 살고 있다.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돈된 자신감 대신 자유와 함께 찾아온 불확실함을 마주하고 있다. 내일을 명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모든 선택의 결과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그렇다. 거리에서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을 보면, 과거의 내가 겹쳐 보이며 묘한 부러움이 솟는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놓친, 혹은 선택하지 않은 안정과 확실성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옷장에 재킷을 걸며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종종 돌아본다. 어쩌면 그리움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선택이란 원래 그렇게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따금은 미팅 핑계로라도 그 재킷을 꺼내 입고 외출해 봐도 좋겠다. 조금 센치한 기분으로 옛날의 ‘프로페셔널한 나’를 만나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