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적, 바로 이런 클라이언트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클라이언트 7가지 유형

by 그냥 하윤

프리랜서의 운명은 클라이언트에게 달렸다.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프로젝트는 춤추듯 흘러가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견적서를 보냈지만, 상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떤 날은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보낸 시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누군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정의라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더 많기에, 앞으로 만나면 되도록 피해야 할 클라이언트 유형을 정리해 본다.





1. 네고 폭군 (a.k.a. 반값 전도사, 예산 한탄러)


“이거 크몽에서는 반값이던데요?”

그럼 크몽에서 하시면 되는데, 왜 저한테...?

하지만 나는 프로페셔널한 디자이너니까,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한다.


“예산에 맞춰 조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미 이 순간부터 일이 틀어졌다는 걸 직감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들은 한 마디를 덧붙인다.


“저희 회사 예산이 빠듯해서...”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그 회사의 재무팀이 아니고, 예산 절감을 함께 고민해 줄 의무도 없겠죠. 그래도 역시 프로페셔널답게 미소를 유지한다. 그러다 보면 결정타가 온다.


“이번에 잘해주시면 다음번에 또 맡길게요.”

이쯤 되면 네고왕이 아니라 네고 폭군 아닙니까? 물론 ‘다음번’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말 치고 진짜 다음번이 온 적은 없다. 이 말을 몇 번이고 듣고도 속아준 내가 순진했다.





2. 프로잠수러

(a.k.a. 고스트 고객, 연락 두절러)


어떤 클라이언트는 견적을 보내는 순간부터 증발한다.

또 어떤 클라이언트는 작업을 시작하면 피드백이 없다. 작업이 진행 중인데도 연락이 끊기면 나는 한참 동안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메시지를 기다린다. 그러다 납기일이 다가오면 갑자기 부활한 클라이언트의 “내일까지 가능할까요?” 라는 메시지를 받아보게 된다.


이쯤 되면 망자 부활 이벤트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마치 좀비 영화처럼, 사라졌던 존재가 마감 직전에 다시 나타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첫마디는 한결같다.


“죄송해요, 그동안 너무 바빴어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의심이 피어오른다.

‘바쁜 게 아니라 그냥 씹은 거 아니야?’


사실 급한 건 아니니 천천히 해달라고 클라이언트가 말하던 처음 그 순간부터, 이미 이 프로젝트는 고요한 바다에 떠 있는 유령선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클라이언트들은 신기하게도 마감 직전, 그것도 한밤중에 살아난다. 그리고 아주 태연하게 묻는다.


“지금 진행 어디까지 됐어요? 내일까지 가능한가요?”


아니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대답은 결국 속으로만 한다.






3. 수정은 끝나지 않아 (a.k.a. 피드백 러버)


“이 부분만 조금 더 바꿔주세요. 아, 그리고 이것도...”

“아까 말씀드린 거 말고, 다시 원래대로 해주세요.”


이쯤 되면 내가 디자인을 하는 건지, 시간을 되감는 초능력을 갖게 된 건지 헷갈린다.

본래 나는 계약서에 수정 횟수를 명확히 명시해 둔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자잘한 요청이 들어오면, "이거 한두 번 정도는 그냥 해줘야 하나?" 하고 손이 먼저 움직인다. 분명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결국 “이번만 해드릴게요” 라고 말하며 나 스스로를 속인다.


그러나 자칫 조금만, 살짝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는 말이 반복되면서 프로젝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정 지옥으로 빠져든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모든 것이 수정되기 전인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클라이언트와의 마지막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이제 진짜 최종이죠?”
네, 최종입니다!”


그러고 나서 몇 시간 뒤, 메시지가 온다.

“정말 죄송해요. 보니까 여기 한 군데만 더 고치면 완벽할 것 같아요!“

이럴 때면 그냥 내 정신을 수정하고 싶다.





4. 작업 중단 후 원본 요구

(a.k.a. 비법 소스 강탈러)


“일이 급하게 중단됐는데, 혹시 작업 파일(AI, PSD)만 따로 받을 수 있을까요?”

“중간 금액까지 정산해 드릴게요. 결과물까지는 필요 없고 원본만 주시면 돼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이건 결국 셰프한테 비법 소스만 달라는 거나 다름없다. 나는 그래도 그런 호구 디자이너는 아니다. 원본을 넘기지 않는 게 원칙이다.


만약 내가 만든 작업물을 도중에 넘긴다면 그 회사는 그 디자인을 헐값에 가져가 자신들이 만든 템플릿처럼 우려먹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어디선가 익숙한 디자인이 살짝 변형된 채 떠돌아다닐 수도 있다. 그 순간 “아, 이게 그때 그거구나.” 하고 깨달을지도 모른다.


결국 작업 도중 원본 파일을 넘겨달라는 말은,

“우리가 직접 뜯어고쳐 쓸 테니, 이젠 굳이 당신이 마무리할 필요 없어요.” 라는 뜻과 다름없다.





5. 어장관리형 (a.k.a 프로비딩러)


“여러 업체에 견적 받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일단 후보군으로 올려두겠습니다.”

“결정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러나 그 연락은 오지 않거나, 이런 사람이 있었나?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타이밍에 온다. 결국 나는 한 클라이언트의 어장에서 헤엄치다가 대차게 방출된 물고기가 된다.





6. 샘플 먼저 받아보고 판단할게요


“포트폴리오도 좋지만, 우리 스타일에 맞는 샘플 하나만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작업 가능 여부 확인 차원에서 간단한 시안만 부탁드립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그런 호구 디자이너가 아니므로 샘플을 넘기지 않는다.

넘긴다면 몇 주 후, 내 샘플을 그대로 베껴놓은 디자인이 그들의 홈페이지에 떡하니 올라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기업들이 공모전이란 이름으로 아이디어를 공짜로 긁어가는 게 치가 떨린다. 채택되지 않은 디자인도 결국 누군가의 ‘참고자료’로 쓰일 테니까.)


이런 요청이 오면 비슷한 업종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줄 뿐, 절대 샘플을 제작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답한다.


“이 정도면 충분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추가 샘플 작업은 정식 계약 이후 진행 가능합니다.”





7. 선금 없는 클라이언트 (a.k.a. 후불 마술사)


“작업 완료 후 입금해 드릴게요.”

“우리 회사는 원래 후불제로 진행합니다.”

“완성본을 봐야 돈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후불제로 한다고 하면 일을 하지 않는다. 선금 없는 클라이언트는 일단 거른다.

물론 대기업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신용이 확실하니까 그들에게는 후불도 받아본 적 있다. 하지만 소규모 업체나 개인 클라이언트가 후불을 요구하면 그건 도박이다. 그리고 이 도박을 했다가 후회하는 프리랜서를 나는 많이 봤다.


”담당자가 출장 중이라서요.“

“이번 주 안으로 정리해 드릴게요.”

“재무팀에서 검토 중입니다. 곧 연락드릴게요.”


그 '곧'이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선금 받아야 진행 시작"을 못 박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이 말에 당황하거나 망설이는 클라이언트라면 99% 확률로 골치 아픈 상대일 것이다.


“완성본을 봐야 돈을 줄 수 있다” 라고?
그럼 나는 돈을 받아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게 공정 거래니까.




이쯤 되면 나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래서 프리랜서, 왜 하는 거지?”


견적을 후려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잠수 탄 클라이언트의 행방을 추적하다 포기하고, 끝없는 수정 요청에 허덕이고, 마감 직전에 부활하는 좀비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이런 변수를 감당하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으니까.


아니면, 이 일이 나와 어울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내가 만든 원칙을 지키면서, 이해할 수 없는 피드백에 한숨 쉬다가도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삶.


어차피 이 세상은 완벽한 클라이언트로 가득 차 있지 않다.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건, 그런 변수를 받아들이면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이 판을 굴려가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클라이언트가 어떤 유형이든, 결국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서 선을 긋고, 어떻게 효율을 찾을지는 내 몫이다. 프리랜서는 클라이언트의 변덕 속에서도 스스로 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연습을 계속해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