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도, 집으로 가는 중이니까
회사에서 나온 후, 프리랜서 생활을 한 지도 햇수로 3년째가 되어간다. 수입은 들쭉날쭉하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올 때도 있고,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달도 있다. 어떤 달에는 회사 다니던 시절 월급의 두 배 가까이 수익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달에는 그보다 훨씬 못 미칠 때도 있다.
내 가족과 친구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일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좋겠다, 넌 어떻게 보면 기술직이니까. 역시 기술이 있으면 회사 안 다니고도 먹고살 수 있구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트북만 들고 다니면 어디서나 일할 수 있어서 자유롭겠다.” 라며 노마드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는 씁쓸하게 웃는다. 정작 나는 맥북이 너무 무거워서 대개 집에서 일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감탄과 부러움 속에서도, 그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그래도 월급 받다가 이렇게 불규칙한 수입으로 일하면 불안하지 않냐?”
그럴 때면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답한다.
“내 능력을 믿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안 되면 막일이라도 하지, 뭐.”
그렇게 웃어넘기지만, 사실 내심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정말 불안하지 않은 걸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외부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퇴근길, 무력하게 버스를 타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던 회사원 때와는 다르다. 아무래도 자차가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다소 무리하고 성급한 결정이었지만, 차를 구입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차량 계약 6개월 후, 퇴사를 앞둔 시점에 차가 출고되었다. 원래 계약할 때는 일부 선수금을 내고, 나머지는 회사를 다니면서 갚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차가 나올 시점이 되자, 할부에 묶이면 회사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일시불로 구매했다. 무리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선택이 없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익숙한 길 위에서 고민만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차는 나에게 제2의 집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하루를 차분히 복기할 수도 있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기분 전환도 된다. 한강을 따라 달리며 창밖으로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볼 때, 랜덤으로 틀어놓은 음악에서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그 소소한 순간들이 삶에 작은 쉼표가 되어준다.
퇴근시간대가 지나 깜깜하고 한적해진 도로가 내 시야 아래로 사라져 갈 때면,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혼자 도로 위에 붕 떠 있는 기분도 든다. 가끔은 낮보다 시야가 흐려져서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처음 보는 교차로에서 당황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언정, 결국 길은 어떻게든 이어지고 나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불안하지 않냐고?
지금의 내 삶은 밤길 운전과 닮아 있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보일 뿐, 그 너머는 온통 어둠이다. 내게 허락된 시야는 이 작은 원형의 빛 안쪽뿐이고 그 바깥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면 더 조심스러워진다.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다시 확인하고, 전조등을 믿고 달린다.
누군가는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이 정답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미지의 길이 꼭 내가 불안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인생을 완벽하고 정교한 지도로 계획한 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길을 잘못 들 수도 있다.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라도, 한 구간씩 지나오다 보면, 결국 나는 머지않아 집에 닿을 것이다.
내가 가려고 하는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내일이면 3월이 된다. 올해는 여름이 평년보다 일찍 찾아온다고 한다. 4월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를 들었다. 벌써부터 여름이 길어진다는 말에 조금은 막막하다. 습기에 축 처지고 무기력해지는 계절이라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다.
남은 2025년 동안 어떤 일들이 내게 닥쳐올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스로에게 조용히 조언을 건넨다.
깜깜한 어둠 속을 달리더라도, 내비게이션이 조금은 틀릴 때가 있더라도, 내가 가려는 목적지와 방향만 잊지 말자고.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치열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도 결국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