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체력을 대출받아 오늘을 사는 프리랜서의 고백
요즘 나는 틈만 나면 알바 공고를 뒤적인다. 고도의 코딩 실력도, 디자인 감각도, 기획력도 필요 없는 일들. ‘단순 포장’, ‘분류’ 같은 같은 문구에 괜히 눈이 오래 머문다. 누가 보면 우스운 취향이라 하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그 시간에 배너 하나 더 만들고, 코드 한 줄 더 짜는 게 낫지 않아?”
틀린 말은 아니다. 효율만 따지면 내 기술을 파는 게 훨씬 남는 장사다. 하지만 화면 속 작은 픽셀에 하루를 저당잡히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허기가 찾아온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는 자각. 나는 지금, 나를 태워 불빛을 얻고 있는 게 아닐까.
어느덧 3년 차 프리랜서. 업무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웹 구축 프로젝트에 착수하면 어지간한 직장인의 월급 이상을 단기간에 벌어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숫자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건 정당한 대가라기보다, 미래의 체력과 정신력을 담보로 끌어다 쓰는 고금리 대출금에 더 가깝다. 단가 협상으로 지친 마음 위에 실작업의 긴 터널이 이어지면, 내 영혼의 건전지가 스르륵 방전되는 소리가 들린다.
내년이면 만으로도 빼박 30대 후반이다. 지금의 이 고강도 노동을 앞으로 5년, 10년 더 지속할 수 있을까? 마음속 대답은 명확하게 ‘아니오’다. AI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말엔 별 감흥이 없다. 누군가는 정리해야 하고, 누군가는 고쳐 써야 한다. 그 ‘누군가’의 몫은 결국 사람, 그리고 아마 나일 것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내 육신의 퇴보다.
한때 의지했던 ‘패시브 인컴’도 흐릿해졌다. 템플릿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내 기술과 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만든 결과물이 벌어다 주는 돈은 딱 관리비와 공과금을 메우는 수준이었다. 세상이 떠드는 ‘경제적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요즘 세상은 쉽게 버는 법을 스스럼없이 말한다. 월 천만 원, 경제적 자유, 자는 동안 돈이 쌓이는 구조, 전자책의 기적. 나도 안다. 내 노하우를 적당히 부풀리고, 그럴듯한 마케팅 문구를 씌워 강의 책을 팔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데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 과장으로 윤을 낸 문장들을 믿지도, 만들어 내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그러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직하게 일하는 것뿐인데, 정직은 이 시장에서 점점 무기가 아니라 약점이 된다. 남은 자산을 더 굴려보려고 채권을 사고 투자를 늘려봐도, 환율은 요동치고 경제는 출렁인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것은 조금씩 닳아가는 나의 몸뿐이라는 사실이 천천히 드러난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연휴, 퀵커머스 플랫폼에서 물건을 패킹하는 단기 알바를 했을 때 느꼈던 그 기묘한 안도감이 아직도 손등에 남아 있다. 주문서를 확인하고, 물건을 집어, 박스에 담는 단순한 동작들. 그 리듬은 마치 오래된 방의 창문을 여는 일처럼, 막막했던 마음에 조용한 바람 하나를 들여보냈다.
그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있었다. 모니터 뒤에서 흐릿하게 들리던 삶의 소리가, 낯선 공간에서는 한층 또렷하게 들렸다.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들,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네는 사람들, 내가 쌓아 올린 결과물이 곧장 눈앞에 형태를 갖추는 순간들. 그 짧은 시간 동안만큼은 삶이 아주 단순하게, 그리고 조금은 온기 있게 느껴졌다.
연차가 쌓인 기술직 프리랜서가 최저시급 알바를 그리워하는 것이 철없는 일일까. 나는 오히려 이건 생존을 위한 미세한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으로만 비대해진 머리와, 그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몸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 돈보다 앞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고 싶은 갈증.
키보드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을 잠시 멈추고 창밖을 본다. 언젠가 내 체력의 대출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이 업계가 나를 침식시키는 방식과 마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사실을 조용히 바라보는 중이다. 일을 놓을 생각은 없지만, 예전처럼 무한히 내어줄 수도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려온다.
어디까지가 버티는 것인지, 어디부터가 살아가는 것인지- 그 경계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를 뿐이다.
언젠가는 결론이 찾아오겠지만, 오늘은 이 ‘멈춤’까지가 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