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통하지 않는 건, 우리가 다른 층에 살기 때문이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다. 친구든 연인이든 비슷한 사람끼리 묶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보통 그 기준을 성격이나 취향, 혹은 외적인 조건에서 찾곤 한다. 말이 잘 통한다거나, 웃음 코드가 맞는다거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관계를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알게 된다. 관계의 유효기간과 대화의 밀도를 결정하는 건 그런 겉보기가 아니라는 걸.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무엇에 몰입해 있는가'다.
아무리 성격이 잘 맞고 개그 코드가 비슷해도, 각자 해결해야 할 삶의 화두가 다르면 대화는 쉽게 겉돈다. 사랑이 고픈 사람에게 생존 이야기는 지나치게 건조하고, 자아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 현실적인 조언은 귀에 남지 않는 소음처럼 들린다. 대화의 티키타카란 결국, 서로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할 때 터져 나오는 스파크 같은 것이다. 말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기승전 부동산, 기승전 재테크 이야기만 늘어놓던 친구들. 당시 나는 나만의 취향을 디깅하고, 내면의 결을 가꾸는 게 인생의 1순위였다. 그러니 친구들의 현실적인 돈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속으로는 '왜 이렇게 세상 재미없는 얘기만 할까', '나랑은 결이 안 맞네' 하며 은근히 선을 긋기도 했다. 그 친구들이 특별히 속물적이어서도, 계산적인 사람이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대화의 주파수가 달랐을 뿐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층에서 삶을 바라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그 견고했던 선이 자연스럽게 흐릿해졌다. 몇 년 남지 않은 40대의 시기를 준비하며, 심상치 않은 시장의 흐름과 내 자산의 위치를 점검해야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삶의 다음 챕터를 위해 이제는 기반을 다져야 할 시기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그렇게 관심사의 축이 자아에서 현실로 옮겨가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예전엔 그렇게 따분하던 친구들의 그 돈 타령이, 이제는 서로의 관점을 나누는 흥미진진한 토론으로 바뀌었다.
"요즘 그쪽 동네 흐름은 어때?"
"사업 구조는 어떻게 잡는 게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친구는 변한 게 없었다. 늘 자신이 발 딛고 선 자리에서 삶을 다지고 있었을 뿐이다. 달라진 건 내 시선이었다. 내가 그들이 바라보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우리의 시간이 비로소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려운 심리학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군가와 멀어지는 건, 인성이 나빠서도 마음이 변해서도 아니다. 관계가 틀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조차, 대부분은 배신이나 실망이 아니라 시기의 차이에 가깝다. 각자 인생에서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페이지가 다를 뿐이다.
누군가에겐 사랑이, 누군가에겐 안정이, 누군가에겐 꿈이 가장 중요하다. 보고 있는 페이지가 다르면 대화가 이어지기 힘든 건 당연하다. 그러니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상대를 탓하거나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속도로 인생의 책장을 넘기고 있을 뿐이니까.
언젠가 삶의 시계가 돌아, 우리가 다시 같은 페이지를 펼치게 될 때가 온다면 멈췄던 대화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다시 흐를 것이다. 그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우리가 멀어졌던 이유도, 다시 가까워진 이유도 모두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