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태양의 궤도를 돌던, 한때의 명왕성에게
입춘이라는 말에는 이상하게도, 닫아두었던 문을 다시 여는 힘이 있다. 6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정확히 같은 날짜에 쓰인 글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화면 속에 남겨진 것은 2020년 2월 4일의 기록. 그 속에는 6년 전의 내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온도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애잔한 행성이었다. 닿지 못할 태양의 주변을 맴돌면서도, 궤도를 이탈하기보다는 기다리는 쪽을 택했던.
<봄의 문턱 앞에서>
오늘이 입춘이라고 한다. 마스크 속에 갇혀 계절 냄새조차 맡기 힘든 요즘. 달력으로 보면 이미 한참 지난 새해인데, 몸은 이제야 겨울을 벗어나는 기분이다. 그런 새벽에 꾼 꿈은, 이상하게도 아주 오래된 장면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상하리만치 설레어 있었다.
그 사람은 2년 전쯤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짝사랑이라고 단정하기도, 쌍방이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관계. 그는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중심에 서 있는 태양 같은 사람. 나는 그 주변을 아주 멀리서 도는 행성 같았다. 토성이나 명왕성쯤 될까. 궤도가 너무 달라서 가끔 망원경으로나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존재는 하지만 쉽게 닿을 수는 없는 거리였다.
시작은 별 뜻 없이 주고받던 카톡이었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가다 우연히 취향의 교집합을 발견했다. 우리는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같았고, 지도에 찍어둔 가고 싶은 맛집 리스트가 겹쳤다. 마침 그 감독의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 태양이 먼저 말했다. "다음 주말에 시간 되면 영화 같이 보러 갈래? 끝나고 그 밥집도 가보자."
그 말 하나로 궤도가 수정됐다.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그 태양계로 진입할 수 있는 입장권을 손에 쥔 기분이었다. 나는 그날 옷장 앞에서 한 시간을 서성였다. 너무 꾸민 것 같아도 안 되고, 너무 초라해도 안 될 것 같았다. 거울 앞에 서서 스무 번쯤 미소를 지어보며 어떤 표정이 자연스러운지 연습했다.
그런데 그날, 그 애에게 카톡이 왔다. "교수님이 급하게 부르셔서... 미안해. 조만간 약속 다시 잡자."
나는 괜찮다고 답장을 보냈다. 아직 영화는 상영 중이었고, 다음이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다음 약속을 잡으려던 시점에는 내게 사정이 생겼고, 그 다음에는 그가 학회 준비로 바빠졌다. 그렇게 한 주, 두 주가 밀리는 사이, 결국 그 영화는 상영관에서 내려가고 말았다. 나는 영화라는 핑계 뒤에 숨어 있었던 탓에, 맨몸으로 그냥 밥이나 먹자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마치 공전 주기가 맞지 않는 두 행성처럼, 가까워질 듯하다가 결정적인 구심점을 잃고 다시 멀어졌다.
그렇게 나는 이직 준비로, 그 친구는 학업에 집중하며 연락이 뜸해지던 어느 날, 그 애의 프로필이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다. 겹치는 친구로부터 해킹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친구는 나에게 그의 번호를 줄까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먼저 연락하기엔 타이밍이 많이 어긋나 있었으니까. 인연의 문은 그렇게 닫혔다. 요란하게 쾅 닫히지 않고, 소리 없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고 2년이 지난 오늘 새벽, 꿈속의 나는 여전히 그 기다림의 궤도 위에 서 있었다. 꿈은 현실의 충실한 복사판이었을까? 그가 오기 바로 직전, 거짓말처럼 장면이 툭 끊겼다. 기다림만 있고 마침표는 없는 꿈. 잠에서 깬 나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간질거리는 기분이 봄기운처럼 마음에 남았다.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하필 입춘 새벽에 찾아온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옛사람들은 입춘을 '진짜 새해'의 시작으로 여기며 복을 빌고 새로운 기운을 맞이했다고 한다. 아마도 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던 내 감정의 빙하가, 입춘이라는 봄기운에 살짝 녹아 꿈으로 흘러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 인연은 이미 번호를 묻지 않았던 시점에 종료되었다. 그런데도 꿈에 여전히 설레는 내가 있었다는 건, 그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쓰고, 시간을 들이고, 숨가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믿던 나. 그 설레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내면의 신호 말이다.
이 싱숭생숭한 봄맞이가 나쁘지만은 않다. 감정이 증발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건, 내가 그 시절의 마음을 소중히 여겼다는 증거니까. 이제 입춘이 지나 날씨가 풀리듯, 이 잔여 감정도 따뜻한 바람에 실려 천천히 날아가 버릴 것이다. 아니면 그 에너지가 전혀 다른 누군가에게로, 혹은 다시 나 자신에게로 새롭게 흘러들거나.
창밖에는 아직 겨울이 남아 있지만, 달력은 봄을 가리키고 있다. 꿈에서 깬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다시 누군가에게 설레게 된다면, 그때는 같은 궤도 위에서였으면 좋겠다. 너무 멀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입춘이 그런 생각을 남기고 갔다.
2020년 2월 4일
그때의 글은 그렇게 점잖게 끝을 맺었지만, 사실 그날의 기억은 조금 더 이어진다. 책상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보내지 않을 편지를 적었다. '그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같은 부질없는 가정과, "잘 지내니?" 같은 늦은 안부들. 보내지 않을 문장들을 적고, 결국 그 종이를 찢어버렸다. 묵혀둔 감정을 봄바람에 흩뿌려 보내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입춘이 왔다. 지금의 나는 작은 신호 하나에 마음을 오래 걸어두지 않고, 어긋난 시간 앞에서 나를 소모하지도 않는다. 계절이 바뀌듯, 많은 것들을 조용히 넘기는 쪽이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알게 된다. 그 시절 내가 찢어버린 것은 미련이었을지 몰라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은 누군가를 향했던 마음의 순도였다는 것을.
6년 전의 내가 보낸 편지를 이제야 수신한다. 그때의 나는 충분히 뜨거웠고, 그 온기는 아직도 남아 있다고. 올해의 입춘은 나 자신에게 그런 안부를 건네며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