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양념이고, 삶은 요리다

관계의 균형은 하루의 배치에서 시작된다

by 그냥 하윤

"언니, 저 이제 남의 연애 하소연 들어주는 거 못 하겠어요. 진짜 기가 다 빨리는 기분이에요."


며칠 전, 평소 밝던 동생 하나가 지친 기색으로 털어놓은 말이다. 관계를 끊어내고 싶을 만큼 피로하다는 그 고백을 들으며, 나는 아주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사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연애 상담을 맡지 않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남의 관계를 대신 해석해 주는 자발적 분석가의 역할에서 스스로 퇴장했다. 사람에 질려서도, 공감 능력이 바닥나서도 아니었다. 그 방식이 결코 상대의 관계를 낫게 만들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남의 연애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 데에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상황을 한 발 떨어져서 조망하는 쪽에 가깝다. 누군가는 내게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기보다,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한 건지 아닌지를 판별해 줄 객관성을 요구하곤 했다. 초반엔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의 서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는 기묘하게 변질되었다. 처음엔 가벼운 푸념이었던 대화가 점차 대화 캡처본과 통화 시간 기록이 증거 자료처럼 쌓이는 분석실이 되었다. 상대의 무심한 반응 하나하나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해독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연애는 더 이상 당사자들의 생생한 호흡이 아니라, 분석가인 내 처분만을 기다리는 죽은 데이터처럼 내 앞에 놓였다.


이 나이쯤 되면 그런 소모적인 감정 싸움으로 속을 썩이는 표본 자체가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여전히 동생들이나 간혹 마주하는 이들은 같은 궤도를 맴돈다. 반복되는 데이터의 나열 속에서 나는 늘 한 가지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 사람의 하루는 지금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한쪽은 답장 간격에 온종일 하루가 흔들리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관계를 하루의 아주 작은 부속품으로만 다루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과 살아가는 사람. 이 삶의 배치가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는 상태에서 관계의 균형이 맞을 리 만무했다.


관계가 힘들어질 때 전자는 대개 마음의 크기를 조절하려 애쓴다. 다음엔 덜 좋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감정을 숨기고 계산적인 사람이 되려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주도권을 되찾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저 자기 검열에 갇혀 더 초조해지는 방식일 뿐이다. 관계의 중심을 옮기지 못한 채 감정의 크기만 조절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


6년 전, 매일같이 날아오는 카카오톡 캡쳐와 그 뒤에 붙은 구구절절한 해석들에 피로감이 극에 달했던 날. 처음엔 리스너의 마음으로 묵묵히 들어주었지만, 반복되는 데이터의 나열 속에서 피로감 너머의 본질을 보았다. 한참을 들어주던 끝에 나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언니, 답장 속도를 분석하는 건 이제 그만해. 하루가 온통 그 사람 반응에만 매달려 있다면, 그건 마음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배치가 아예 잘못된 거야. 방 안에서 연락만 기다리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취미를 하든 뭘하든 본인 세계를 가꾸는 일을 시작해 봐. 나라도 하루 종일 내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


그 서늘한 팩폭을 끝으로 그 사람과의 인연은 멀어졌고, 나는 그날 이후로 연애 상담의 은퇴를 결심했다. 누군가에게 덜 좋아하라는 공허한 말을 대신 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말이 있다. 내 삶이 하나의 요리라면, 연애는 풍미를 돋우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내 삶이라는 요리를 좀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주재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 주재료인 내 삶이 신선하고 단단해야 요리의 형체가 잡힌다. 관계의 평온함은 상대의 마음을 조종하는 기술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 식탁은 여전히 풍성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다.


관계의 주도권은 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감정을 줄이는 데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 말고도 지켜내고 있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나는 이제 타인의 문장을 해석하는 데 소중한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대신 내 삶이라는 식탁 위에 올라갈 주재료를 더 정성껏 살핀다. 내가 몰입하는 일, 하루를 지탱하는 생활의 리듬, 그리고 관계가 있든 없든 유지되는 나의 세계.


양념이 조금 싱거우면 어떤가. 내가 차린 이 식탁은 이미 충분히 풍성하고, 나는 이곳에서 온전히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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