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가 한 사람에게 멈추는 일

배경이던 사람이 고유명사가 되기까지

by 그냥 하윤

나는 세상을 세밀하게 붙잡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인식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시야의 해상도는 늘 낮게 설정되어 있다. 타인의 얼굴은 유심히 살피지 않는 편이라, 구면인 사람도 코앞에 와서야 겨우 알아채기 일쑤다.


종종 가는 야구장은 이런 무심함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경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 오신 거 봤어요"라는 DM을 받고 '나는 못 봤는데' 하며 당황하는 일은 이제 일상에 가깝다. 심지어 아는 사람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 나는 그가 풍경의 일부인 줄로만 알고 멍하니 시선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처음엔 항상 그렇다. 그 사람 역시 무거운 배경의 일부일 뿐이었다. 인사를 나누거나 몇 마디 말을 섞어도 내 인식의 필터는 그를 특별하게 걸러내지 않았다. 그를 기억해둘 이유도, 인식의 중심에 둘 이유도 없었다. 그는 정말로, 아무런 특징 없이 내 배경 속에 섞여 있는 무수한 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전환은 늘 어느 날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찾아온다. 거창한 사건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어떤 찰나 이후, 시야의 작동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이상하게 먼저 그 사람의 위치가 들어온다.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찾아낸 뒤인 것처럼. 내가 아껴두던 관심의 자원이 그에게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배정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느 날은 멀리서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뒷모습 하나를 먼저 알아봤다. 얼굴도, 표정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이라는 걸 먼저 알았다.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웠다. 걸음의 리듬 때문인지, 어깨선의 각도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 시야가 이미 그쪽으로 정렬돼 있었기 때문인지. 확실한 건, 그를 확인하고 나서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후광이 비친다고 말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반짝이고, 세상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재배열되는 것처럼. 하지만 내 경험은 그런 미화된 서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빛이 생긴 게 아니라 초점이 맞춰지는 쪽에 가깝다. 그가 갑자기 반짝이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뭉툭하고 흐릿한 배경에서 그 한 사람만이 선명하게 끌어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그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명확한 고유명사인 '그 사람'이 되었다.


내 성향을 비추어 볼 때 무척이나 이례적인 사건이다. 평소 대부분의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한 다음에야 감정을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그때만큼은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설명보다 인식이 먼저 자리를 차지했고, 이해는 느낌보다 뒤에 왔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변화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다만 분명했던 건, 이것이 단순한 호감이나 일시적인 관심과는 다른 종류의 변화라는 점이었다. 설명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해버린 인식의 변화.


그 낯선 상태를 오래 들여다 보니, 막연하게만 이해하고 있던 것의 윤곽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세상이 바뀌는 것도, 상대가 갑자기 빛나는 것도 아니었다. 세계의 화면에서 하나의 대상이 배경에서 빠져나와 중심을 차지하는 일. 쓰지 않으려고 아껴두던 자원이 의지와 상관없이 독점되어버리는 사건.


여전히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냥 지나친다. 관심은 여전히 아끼는 편이고, 시야는 여전히 대충이다. 하지만 한 번쯤, 그렇게 아껴두던 초점이 스스로 이동해버리는 경험을 거친 뒤의 세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대신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이후, 무심한 세계에는 되돌릴 수 없는 중심 하나가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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