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서 바둑을 배운 날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래 남은 한 판의 감각

by 그냥 하윤

은퇴 이후 아빠의 하루는 바둑을 중심으로 흐른다. 탁구를 치고, 친구들과 기원에서 대국을 하고, 집에서는 바둑 TV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둔 채 홀로 돌을 놓는다. 그게 하루를 보내는 하나의 방식처럼 보였다. 정신력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후의 루틴이자, 스스로 선택한 여가생활. 바둑은 아빠의 시간을 지탱하는 몇 안 되는 장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바둑은 내 취향의 게임이 아니었다. 나는 체스나 루미큐브처럼 인과관계가 선명한 세계를 선호했다. 논리적인 수순 끝에 승패가 투명하게 드러나고, 전략의 성패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임들. 그 명료함 속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바둑은 늘 안개 속을 걷는 듯했다. 어디서부터 형세가 기우는지, 내가 지금 잘 두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그 막연한 모호함 속으로 굳이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최근 새롭게 바둑을 배웠던 날, 아빠의 설명을 들으며 바둑판 위에 돌을 올렸지만, 솔직히 말해 논리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 자리가 왜 급소인지, 방금 둔 수가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 머리는 따라가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한 번 놓인 돌은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사실.


바둑판 위에서 "그때 다르게 두었더라면" 같은 가정은 아무런 힘이 없다. 이미 놓인 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과거가 되어 박히고, 나는 그 돌을 포함한 다음의 국면을 오직 다음의 수로 감당해야 한다. 후회가 아닌 수용의 태도로. 인생이나 가족 관계에서도 늘 놓치고 마는 그 감각이, 검고 흰 돌 위에서는 유난히 또렷했다.


그날의 바둑은 길지 않았지만, 판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아빠의 태도가 깊은 잔상을 남겼다. 이기고 지는 결과보다, 끝까지 앉아 판을 마무리하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해 보였다. 마지막 수가 놓인 뒤 아빠는 아무런 감정의 덧칠 없이 돌을 정리했다. 결과를 길게 곱씹지도, 감정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목표를 크게 설정하지 않은 채 지속하는 태도. 바둑은 어쩌면 그 인내를 연습하는 수행 같았다.


아빠의 설명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돌을 놓는 손은 망설임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는 대신, 손이 먼저 가는 자리가 있었다. 반복해서 두었던 모양, 몸에 남아 있는 패턴 같은 것들. 바둑은 기억을 시험하는 게임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감각을 믿는 게임처럼 보였다. 인간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지식이나 기억이 아닌 체화된 감각이라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여전히 나는 바둑을 모른다. 앞으로 바둑을 즐기게 될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바둑이라는 게임을 떠올리는 마음은 이전과 같지 않다. 나는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한 인간의 정중한 방식을 곁에서 지켜본 것이다.


바둑판 위의 돌들은 다시 상자로 돌아가 고요해졌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탁, 탁'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해는 더뎠어도 함께 머물렀던 시간의 무게만은 선명하다. 돌을 다 치우고 난 뒤의 깨끗한 바둑판처럼, 아빠와 나 사이에도 어떤 미련이나 후회 대신 담백한 수용의 자리가 넓어진 기분이었다. 판이 끝나고 돌이 상자로 돌아간 뒤에도, 그 고요한 감각만은 내 삶의 다음 수 위로 오래도록 머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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