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이름을 대진표에 올렸을까

나는 그 경기를 신청한 적이 없다

by 그냥 하윤

"그쪽이랑 비슷한 결로 작업하시는 분이 한 분 더 있더라고요."


그 말은 아주 평온하게, 커피잔의 김이 모락거리는 테이블 위로 내려앉았다. 상대는 악의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누군가와 묶어 분류함으로써 이해하기 쉬운 카테고리에 넣으려는 효율적인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의 아주 깊은 곳에서 작고 기분 나쁜 기계음이 들렸다. 삐-. 시스템이 재부팅되는 소리였다.


본래 나는 경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미리 지치는 인간이다. 예방적 피로라고 해야 할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벌써 집에 가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이겨서 얻는 도파민보다, 이기기 위해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더 아깝다. 내게 링이란 오르고 싶은 영광의 무대가 아니라, 빨래가 잔뜩 쌓인 건조대처럼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이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1등입니다"라는 말을 들어도, 아마 "그래서 이거 언제 끝나죠?"라고 되물을 쪽이다.


그런데 인생은 종종 내가 깔아둔 돗자리를 걷어차고 그 자리에 사각 링을 설치한다. 원하지도 않은 대진표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고, 누군가는 이미 나를 비교표에 넣어두었다. 그럴 때 나는 묘한 짜증을 느낀다. 싸움이 싫어서가 아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경기 방식에 편입되었다는 사실이 불쾌한 것이다.


누군가 나를 사정거리 안에 넣었다.


어릴 적 체육시간의 피구가 그랬다. 나는 라인 근처에 서 있었다. 몸집이 작았으니 굳이 전면에 나설 이유도 없었다. 공을 잡으면 던지긴 했지만, 먼저 판을 흔들 생각은 없었다. 소란 속으로 뛰어들기보다 적당히 피하다가 죽는 척 코트 밖으로 나가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계산했다.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조용히 지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정확히 조준해 공을 던지는 순간이 있다. 경기를 주도하려고 한 적이 없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상대로 설정해버린 느낌. 순간 '왜 나를 너의 사정거리 안에 넣었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나를 만만한 타겟, 혹은 경기에서 가장 먼저 제거해도 좋을 쉬운 값으로 계산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전략 모드로 진입한다.


'저 아이는 던지기 전에 어깨가 먼저 들린다', '왼쪽 코너는 자주 비어 있다', '공은 세게 던지지만 궤적이 단순하다.'

싸움을 즐기지 않았지만, 표적 상태로 남아 있을 생각도 없었다. 다음 공이 내 손에 들어오면 누구를 먼저 코트 밖으로 보낼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복수가 아니라 수정 절차다. 나를 만만한 값으로 계산한 식을, 다시 풀어주는 일.


비슷한 장면은 운동장 밖에서도 반복됐다. 교내 미술대회 날, 나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나무의 방향과 그림자의 길이, 하늘의 농도. 내 도화지 안에서만 완성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옆에 와서 말했다. "어, 나도 이거 그려야지." 풍경은 보지 않는다. 내 도화지를 본다. 참고문헌을 찾은 얼굴이었다. 이어서 선의 방향과 구도를 힐끗거리며 옮긴다.


나는 그저 내 눈앞의 나무를 그리고 있었을 뿐이지, 누군가와 '누가 더 나무를 잘 그리나'를 겨루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런데 이미 비교 구도가 만들어진 상태였다. 내 작업이 타인의 평가표 안으로 편입되는 순간, 열이 오른다. 그럴 때면 그림의 밀도가 달라진다. 선은 더 촘촘해지고, 명암은 더 깊어진다. 원래 계획에 없던 이 비대한 디테일은 승리를 향한 열망 같은 게 아니다. 나를 경쟁 상대로 삼은 선택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곳은 애초에 내 무대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경쟁을 즐긴 적은 없다. 다만 누군가가 나를 기준 삼아 서는 순간, 가만히 있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싫었던 건 패배가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경기 방식이었다. 나만의 속도와 무대에서 충분히 존재하고 싶은데, 세상은 자꾸만 나를 호명하며 대진표 한구석에 이름을 적어 넣는다.


내가 먼저 링을 찾은 적은 거의 없다. 굳이 상대를 만들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이름이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기는 빨리 시작되지만, 그 판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이상하게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시작은 타인의 호명으로 이루어지는데, 수습은 언제나 나의 몫이라는 점이 생각할수록 억울한 구조다.


그래서 나는 링을 사랑하지도, 동경하지도 않는다. 다만 누군가 기어이 나를 그 위에 올려놓는다면, 그때부터는 조용히 판을 읽는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네가 생각한 그런 시시한 상대가 아니며, 애초에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최대한 빨리 그곳을 내려오기 위해서다.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응답한다.


그날 커피잔 너머로 나를 누군가와 묶어버렸던 그 사람에게, 나는 결국 그들이 예상했을 결과물 대신 전혀 다른 결의 제안서를 건넸다. 평소라면 쓰지 않았을 에너지까지 끌어다 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반응이었다.


비교표에 묶이지 않기 위해 더 많은 힘을 써야 하는 구조 속에서, 나는 여전히 평화를 말한다. 다만 그 평화는 누군가 나를 함부로 정의하지 않을 때만 유지된다.


나는 경쟁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으르게 살고 싶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쉬운 값으로 계산하는 순간, 이상할 만큼 부지런해진다. 그 모순이 나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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