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맥북을 켜는 프리랜서의 마음
웹 빌더 프로그램을 켰다. 요즘 해외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쓰임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웹사이트를 제작하고, 템플릿을 배포하거나 링크로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올해 들어 패시브 인컴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이미 몇 가지 템플릿과 리소스로 소소한 수익 수단을 만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선 '용돈벌이' 수준이었다. 이왕 시작한 거 내 수익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키워보고 싶었다. 한 번 만들어두면 자동으로 굴러가는 구조. 그걸 구축해보겠다는 욕심이 다시 배우는 과정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브라우저를 열고 튜토리얼을 눌렀다. 인터페이스는 세련됐고, 마우스는 부드럽게 움직였지만, 20분쯤 지나자 낯선 조작법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무언가를 클릭하면 갑자기 코드가 튀어나오고, 화면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환됐다. 튜토리얼부터 무료로 배포되는 유튜브 강의 영상까지 대부분이 영어였고, 한국어로 배울 때보다 에너지가 훨씬 빨리 고갈됐다.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혼자 배우지?'
'차라리 노가다여도 하드코딩을 하는 게 더 편하겠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브라우저를 닫았다.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 채.
늘 시작은 이런 식이다. 매번 무언가를 배워보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유창하지 않은 언어로 배우는 건, 내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일 같다.
사실 이런 좌절은 처음이 아니다. 피그마도 그랬다. 3년 전쯤, 회사에서 후임 디자이너들이 XD를 쓰고 있을 때, 나는 말했다. "UI 쪽에선 피그마가 대세가 될 테니까, 지금부터 조금씩 익혀두세요." 마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나도 유튜브 보면서 겨우 따라 하던 단계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손에 익었지만 기능은 계속 바뀌고 있고,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디자이너에게 '이제 완전히 다 안다'는 감각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배우고 쓰고, 또 배우고 쓰는 식이다.
2년 전에는 리액트를 배웠다. 실무에서 써먹은 적은 거의 없지만 당시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더 전, 6년 전쯤 나는 HTML 구조조차 모르던 '코딩알못'이었다. 디자인 외주를 병행하면서 기본 문법부터 익혔고, 어느 정도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프론트엔드까지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도 풀스택 개발자가 되면 연봉 1억 받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망상도 잠시 해봤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디자이너였고, 결국 돌아올 자리도 그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안의 욕심이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배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도태되고 싶지 않고, 여전히 일에 대한 야망이 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흔히 수명이 짧다고 여겨지는 것도 안다. 감각은 세대마다 다르고, 손 빠른 후배들은 계속 등장한다. 그래서 보통은 서른 중반을 넘기면 기획이나 PM 역할로 빠진다.
나도 언젠가 그쪽으로 옮겨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새로운 툴을 배우고 싶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싶다. 내가 디자인한 것을 실제로 구현하고, 배포하고, 손끝으로 결과를 느끼는 그 과정이 좋다. 만들지 않는 디자이너는 점점 감각을 잃는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그 감각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물론 모르는 것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감정적이다. 자신감은 쉽게 무너지고, 당장 쓸 일도 없는데 굳이 이걸 배워야 하나 싶은 회의가 따라온다. 그래도 나는 안다. 지금의 피그마도, 리액트도, 결국 그 시절에 내가 다시 브라우저를 열었던 날들의 총합이었다는 걸.
무엇이든 두 번째 열기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처음에는 그저 닫았지만, 다음엔 그 화면에서 5분쯤 더 머물 수 있었다. 또 다음엔 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맥북을 켰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튜토리얼을 다시 눌렀고, 어제는 막막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오늘은 조금 이해되었다. 나는 아직 초보다. 하지만 초보는 늘 '다시 켠 날'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언젠가는 이 툴도 익숙해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는 또 다른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다시 맥북을 켜고 브라우저를 열고 있을지도 모른다.
프리랜서에게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