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3년 차, 내가 나를 버티는 방식

휘청이는 날들 속에서도 내가 계속 작업을 이어온 이유

by 그냥 하윤

어느 시절의 나는 감정을 바로 마주하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차라리 무언가에 몰두하는 쪽을 택했다. 일이라는 건 그런 점에서 꽤 유용한 구조였다. 흐트러진 생각을 명확한 그리드 위에 얹고, 막연한 감정을 컴포넌트처럼 다뤘다.


누구는 힘들 때 친구를 찾고, 누구는 그저 울었다고 했지만 나는 작업 화면을 먼저 열었다. 감정은 정리되지 않아도 레이아웃은 정돈되어야 했다.


손을 움직이면 마음은 잠시 덜 흔들렸다. 일이 나를 구하는지, 내가 일에 매달리는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손을 멈추면 마음도 함께 멈춰버릴 것 같았다는 점이다.


말로 풀 수 없는 피로는, 빛으로 위로받는다.


몇 해 동안, 일은 일로만 남지 않았다. 계약서를 기준 삼아 작업을 시작했지만 정당한 비용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고용노동부에 전화를 걸어야 했던 일도 있었다. 받은 메일을 다시 정리하고, 오간 대화들을 기록하다 보면 일이 점점 분쟁처럼 느껴졌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날엔 하루를 통째로 침대에 뺏기기도 했고, 투자한 종목이 계속 하락할 땐 아침마다 경제 뉴스를 확인하며 그날의 기분이 정해지곤 했다. 어느 날은 가족의 건강 문제로 몇 달 동안 반쯤은 멍한 상태로 지낸 적도 있다.


그 시기를 지나며 하나 확실히 배운 건, 삶은 생각보다 훨씬 자주 틀어진다는 거였다. 계획은 흐트러졌고, 준비해둔 것들은 뜻밖의 순간에 쓸모를 잃었다. 예측은 종종 빗나갔다. 그렇게 어지러운 시기에도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은 비교적 질서가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집중한다기보단,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쪽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감각만큼은 나를 붙들었다.


클라이언트의 일정이 없을 땐 새 작업을 기획했다. 보여줄 곳이 없는 결과물도 만들었고, 이미 올렸던 포트폴리오를 다시 고쳐보기도 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걸 하고 있을 때만큼은 생각이 단순해졌다. 마감이 없어도 스스로 마감을 만들었다. 그게 나를 유지시키는 방식이었다. 컬러를 맞추고, 레이아웃을 정리하고, 흐트러진 타이포그래피를 조정하는 반복적인 작업 속에서 생각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일이 위로가 된 적도 있고, 반대로 일을 하며 더 지친 적도 있다. 클라이언트의 한마디에 방향이 바뀌고 마감 하루 전 콘셉트를 바꿔야 했던 날도 있었다. 공들인 프로젝트가 갑자기 무산됐을 땐 일단 일정부터 다시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정말 원해서인지, 아니면 익숙해진 결과인지. 어쩌면 선택이라는 말보단, 살아남기 위해 이 구조 안에 나를 배치해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매달 반복되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를 버티게 한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이 일을 하고 있을 때의 나 자신이 괜찮아 보인다는 감각이었다.


내 방이 사무실이고, 내 템포로 쉬어간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소속감이 부러울 때도 있다. 점심시간에 함께 식당으로 향하는 무리를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해진 월급날, 누군가 업무를 대신 맡아주는 휴가 시스템, 아프면 쉴 수 있는 구조. 그런 단단함이 부러울 때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구조 안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라는 것도 안다. 사람마다 견디는 방식은 다르고, 나에겐 이 구조가 조금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이 일이 앞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잘 모르겠다. 불확실하고 애매하고, 때때로 고단하지만, 지금처럼 이어간다면 아주 틀린 방향은 아닐 거라는 정도의 감각만 있다. 완벽한 확신은 없다. 5년, 10년 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쁜 길은 아니라는 직감은 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일을 붙잡은 건지, 일이 나를 붙든 건지. 다만 둘 다 아직 손을 놓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다음 일을 맡게 되면, 또 그만큼의 리듬으로 살아갈 것이다.

별일 없기를 바라면서, 별일이 생기더라도 그냥 또, 하던 대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사장도 직원도 나 하나> 연재를 마칩니다.

브런치북을 통해 1인 사업자와 프리랜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새로운 글과 이야기는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나요!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속도로 꿋꿋이 살아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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