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 바람 따라 걷는 하루의 끝에서
기차에서 내려 살레르노 역 앞 광장으로 나오니 공기부터 달랐다. 북부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어디선가 짠내가 묻어나는 듯했고, 햇살은 더 짙고 따뜻했다. 표지판을 따라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고,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인 아말피행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탈리아 남부의 해안도로를 따라 나아갔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이어지는 길, 절벽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도로. 한쪽은 깎아지른 산, 다른 한쪽은 깊고 푸른 바다.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르는 버스의 움직임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버스 창 너머로 보이던 지중해의 짙푸른 색이 점점 더 가까워질 때마다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렸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오랫동안 꿈꿔왔던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아말피에 도착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싱그러운 내음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따뜻한 햇살이 거리를 비추고, 사람들의 느긋한 걸음이 이곳만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어깨에 햇살을 얹고 걸어가는 사람들, 골목에 앉아 젤라또를 먹는 아이들, 그리고 가볍게 웃으며 인사 나누는 가게 주인들의 모습이 모두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었다.
원래 목적지는 숙소가 있는 포지타노였지만, 아말피를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안 마을을 스치듯 떠나버린다면, 분명 후회할 거야. 잠시라도 이곳의 공기를 더 느껴보기로 했다.
10월 초의 아말피는 여전히 여름 같았다. 반소매 차림의 사람들이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고, 해변가에는 한낮의 햇볕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다에선 서너 명이 푸른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모래 위에 눕거나, 파라솔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파도 소리는 조용히 귓가를 간질였고, 햇빛은 바닷물 위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 사람들은 아직 여름을 떠나보낼 생각이 없나 보다.’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다.
아말피의 거리는 선명한 노란빛의 레몬 특산품과 형형색색의 세라믹 공예품들로 가득했다. 이제야 진짜 남쪽 도시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햇살을 정면으로 받은 세라믹 타일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패턴을 뽐냈고, 가게 앞에는 손으로 직접 그린 접시와 그릇들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마치 바닷가에 자리한 작은 미술관을 걷는 기분. 눈이 즐거워 발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하얀 벽돌 건물 사이로 난 골목에서는 레몬과 올리브 오일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햇빛을 머금은 듯한 그 향기는 묘하게 기분을 들뜨게 했다. 향을 따라 한 발, 또 한 발 걷다 보니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손으로 빚은 세라믹 장식품, 앙증맞은 레몬 캔디, 노란색과 하늘색이 어우러진 린넨 앞치마까지... 거리 전체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세라믹 타일을 기념품으로 살까 고민하며 하나를 들어봤다. 매끄러운 표면에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하지만 예상보다 꽤 묵직하다. “이건 도저히 감당 못하겠다.” 결국 조심스럽게 다시 내려놓고, 대신 바이올린 모양 병에 담긴 리몬첼로 한 병, 레몬 캔디, 그리고 언제나처럼 여행지 마그넷을 골랐다.
한결 가벼워진 손에 안도감이 스르르 밀려왔다. 굳이 묵직한 타일이 아니어도, 이곳의 색감과 공기는 충분히 기억에 남을 테니까.
한적한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먼 타국 해안 도시의 바람이 온몸을 스치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짝 흩뜨렸다. 강렬한 햇살은 어깨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정오 무렵의 거리에는 나른하고도 느긋한 평화가 흘렀다. 골목 사이를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다시 중심가에 도착해 있었다.
내 발걸음이 멈춘 곳은 아말피 성안드레아 성당이었다. 웅장한 계단 위로 우뚝 솟은 성당은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자랑했다. 계단 아래에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위엄을 감상하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귀신같이 한국인 관광객을 찾아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부탁했다. 역시 한국인끼리는 통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비록 내 뒤로 사람들이 북적여서 감성적인 인생샷은 어려웠지만, 대신 이곳의 활기와 현장감은 또렷이 담겼다.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신 햇빛, 여름과 초가을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선글라스를 걸친 채 여유롭게 젤라또를 즐기는 관광객들. 그들을 바라보다 보니, 슬슬 나도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아말피의 좁은 골목을 걷다가 문득 길게 늘어선 줄을 발견했다. 사람들 손에는 종이콘에 담긴 바삭한 튀김이 들려 있었고,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기름과 해산물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간판을 보니 ‘Cuopperia’.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봤던 바로 그 해산물 튀김 가게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합류했다.
내 차례가 되어 주문을 하자, 주인 아저씨가 힐끗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다들 커플이거나 친구끼리 와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동양인 여자가 혼자 와서 쿨하게 주문을 던지니 조금은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Where are you from?”
잠시 고민하다가 ‘South’를 강조하며 남한에서 왔다고 답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마디 더 건넸고, 나도 가볍게 스몰토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작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별거 아닌 대화였던 모양이다. 그저 여행자와 가게 주인 사이의 짧고 느슨한 교류.
그래도 마지막으로 “Enjoy your trip!” 하고 인사를 건네던 아저씨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기분 좋게 남았다.
튀김을 받아들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뜨거운 해산물 튀김이 담긴 종이콘을 손에 들고, 길가에 앉아 한입. 기름이 살짝 손가락을 적셨지만, 그런 것쯤은 상관없었다. 배경은 아말피, 손에는 갓 튀긴 해산물. 여행 중 이런 즉흥적인 간식이야말로 최고의 맛이다.
튀김을 다 먹고 나니 자연스럽게 입가심이 필요했다. 근처에 있던 요거트 가게에 들러 후식으로 과일 요거트를 주문했다. 사실 이곳은 한국인 여행자들 후기에서 많이 봤던 곳이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들러야지 생각했던 가게였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막상 먹어보니 그냥저냥. 과일이 조금 더 신선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딱히 ‘와, 이거다!’ 싶은 감흥은 없었다.
스푼으로 요거트를 몇 번 휘적이다가 문득 생각했다.
'차라리 오늘도 젤라또를 먹을걸.'
이탈리아에서 젤라또를 먹지 않은 날은 분명 뭔가 손해 본 기분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요거트 가게를 나서며, 나는 조용히 아쉬움을 삼켰다.
잠시 후, 아말피를 뒤로하고 포지타노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항구로 향했다. 멀리 보이는 바다 위에는 하얀 페리 한 척이 유유히 떠 있었다.
페리 위에 올라 바닷바람을 맞으며,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봤다. 바다 위로 길게 늘어진 햇살이 물결처럼 일렁였고, 수평선 너머로 해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햇빛이 바다를 마지막으로 어루만지는 듯한 그 풍경은, 마치 이 하루를 천천히 접는 커튼 같았다.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하루 동안만 네 개의 도시를 거쳤다. 아침에는 피렌체에서 출발해 살레르노로, 그리고 아말피를 지나 포지타노로 향하고 있었다. 참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한 도시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것도 아닌, 여러 곳을 스치듯 지나쳐온 하루. 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도, 기억에 남을 순간들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페리가 포지타노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하늘빛은 점점 깊어졌다. 하늘에는 은은한 주황빛이 감돌았고, 고요한 바닷물 위로 퍼지는 색감은 마치 유화처럼 몽환적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포지타노의 계단식 마을은, 이제 눈앞에서 점점 형태를 드러냈다.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절벽을 따라 촘촘히 내려앉아 있었다.
포지타노의 푸른 바다는 내일 다시 마주할 수 있겠지. 그래도 3박이나 머물 예정이니,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생각하니 기대감이 천천히 차올랐다. 물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올라가는 건 꽤나 험난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제 나는 포지타노에 도착했다. 바다가 있고, 햇살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페리가 포지타노 선착장에 다다랐다. 잔잔한 물결 사이로 내려진 발판을 건너 다시 육지로 올라섰을 때, 눈앞에는 울퉁불퉁한 돌바닥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포지타노가 계단식 마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걸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체감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
하필 예약한 호텔도 언덕 위쪽에 있었다. 구글 맵을 보며 방향을 잡았지만, 이게 도로인지 계단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골목들이 이어졌고, 돌바닥은 바퀴를 마치 장애물처럼 튕겨냈다. 한 손으로 캐리어를 낑낑 끌며, 나머지 손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이, 이 아름다운 마을의 첫인상은 '극기 훈련'이 되었다.
힘겹게 언덕을 올라 겨우겨우 호텔 입구에 도착했을 때, 프런트의 유리문 너머로 시원한 공기와 함께 환한 미소가 날 반겨주었다. 체크인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프런트 직원은 너무나 친절했고, 그 말투와 눈빛이 마치 "고생했어요, 이제 들어오세요." 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포지타노에서 묵었던 이 호텔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상냥한 직원들, 그리고 그 따뜻한 분위기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큰 더블베드가 있는 방에 묵었다. 사진으로 보면 꼭 반지하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방은 3층이었다. 다만 천장 가까이에 작게 난 창문 덕분에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조금 묘했다. 사진만 보면 어둡고 갇힌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포근하고 아늑했다. 은은한 자연광과 부드러운 커튼, 잘 정돈된 침대가 그날의 고단함을 조용히 눌러주었다.
물론 이 호텔에는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의 방도 있었다. 하지만 전날 아울렛에서 2000유로를 넘게 써버린 여행객에게 그런 사치는 허락되지 않았다. 바다는 그냥 직접 밖에 나가서 보기로 했다.
탁 트인 오션뷰는 아니었지만, 포지타노 특유의 동화 같은 색감과 따뜻한 분위기만으로도 이 방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다음에 다시 방문한다면 하루쯤은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묵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니 테이블 위에 각양각색의 빵과 케이크로 가득한 뷔페가 펼쳐져 있었다. 지금 보면 아침부터 혈당 스파이크를 부르는 식단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예쁘고 맛있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마치 어릴 때 보던 TV 만화 '빨간머리 앤'에서 앤이 마릴라와 함께 먹던 빵이 그렇게나 맛있어 보였던 것처럼, 별것 아닌 평범한 식사조차도 그 순간에는 왠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았다.
아침 햇살이 비추는 테라스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빵을 한 입씩 베어 물었다. 그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여행의 한 조각을 음미하는 시간이었다.
포지타노의 밤은 낮과는 분명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던 해변과 파스텔톤 건물들은 조명이 켜지면서 또 다른 분위기로 변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고 있었다.
향긋한 피자 냄새가 퍼지는 작은 트라토리아부터 레몬 리큐어를 시음할 수 있는 리몬첼로 상점, 손으로 직접 만든 세라믹 공예품을 파는 가게들. 그중 몇몇은 아예 한국어로 된 표지판을 걸고 호객을 하고 있었다. 이 작은 해안 마을에도 한국인 여행객들이 꽤 많이 온다는 게 느껴졌다.
길을 따라 절벽 위쪽으로 올라가면 그곳에는 뷰가 끝내주는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 테이블 위에는 촛불이 반짝이고, 사람들은 와인을 기울이며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거기서 저녁을 먹었냐면, 그건 아니다.
밤의 포지타노는 더 차분하고 로맨틱한 공기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니는 커플들과 와인잔을 부딪치며 조용히 웃는 연인들.. 유럽인의 인기 허니문 여행지답게 곳곳에서 사랑이 넘실대고 있었다. 로마와 피렌체에서는 나처럼 혼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곳은 달랐다. 그래서인지 포지타노에서는 나 혼자라는 게 더 도드라져 보였다.
평소 혼자 여행하는 걸 더 선호하는 나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가끔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의 낭만적인 순간들을 그냥 스쳐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꿋꿋하게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포지타노의 풍경,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내 모습을 담았다.
누군가는 손을 맞잡고 이곳을 거닐었고, 나는 카메라를 손에 쥐고 이곳을 담았다.
해변가를 따라 걷다 보니 따뜻한 조명이 흘러나오는 아늑한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Chez Black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알고보니 포지타노에서는 꽤 유명한 레스토랑이라던데, 특별히 알고 찾아온 건 아니었다. 그저 밤의 분위기와 묘하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택한 곳이었다.
1949라는 이름에서 또 한 번 흠칫. 우리 아빠보다 연세가 많으시다. 이 정도면 유명 맛집이 맞겠지. 처음에는 예약 없이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혼자 왔다고 하니 작은 테이블 하나를 안내해 주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바다와 항해를 연상시키는 장식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잔잔한 대화 소리와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우디 알렌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이다. 이곳은 마치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사람들의 순간을 기록하는 곳 같았다.
안내 받은 자리는 워크인 손님들을 위한 테이블이었다. 그래서 바깥 풍경이 보이진 않았지만 적당히 아늑한 공간이었고, 혼자서도 충분히 편안한 느낌이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펼쳐 보았다.
수많은 해산물 요리 사이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해산물 빠에야였다. 이탈리아에서 스페인 요리를 먹는 게 조금 애매하게 느껴졌지만.. 뭔가 바다에 왔으니 해산물 요리를 먹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싱싱할 것 같아서..
왁자지껄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섞여 있는 공간 속에서, 나는 혼자 빠에야를 먹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조금의 어색함도 없었다. 이곳의 분위기는 혼자든, 둘이든, 여럿이든,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공간 같았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골목마다 하나둘 켜진 조명이 낮보다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람들로 붐비던 거리는 어느새 조용해졌고, 낮의 색을 잃은 풍경은 차분한 밤공기에 부드럽게 안겨 있었다. 말없이 걷는 동안, 마음도 덩달아 고요해졌다.
포지타노에서의 밤이 천천히 저물어간다. 오늘 하루 이 도시와 함께했던 시간이 벌써 지나버렸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오히려 더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채우려고 했던 것이 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의 밤은 그렇게 또 한 페이지를 남긴 채, 조용히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