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아닙니다만 자신 있습니다.
우울증 약을 멈춘 지 몇 달이 지났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스스로 한 선택이었고 아직은 약의 도움 없이 나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정도라 판단했다. 물론 내가 의사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다음 달에 떠날 여행 계획을 짜면서부터였다. 마음속이 시끄러운 잡음들로 가득했고, 결국 그것이 여행에 대한 후회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 달 뒤 일본으로 떠난다. 친정아빠는 본인의 선택하에 다음에 함께하기로 하고 친정엄마와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이다. 아이들은 외할머니와 여행 갈 생각에 그저 신나 있었고, 외할머니는 손녀들이 좋아하는 것 무엇이든 다 해줄 생각에 설레어하고 있었다. 문제는 나 밖에 없었다. 모든 게 평화로운 그 모습이 왠지 모를 걱정으로 다가왔다. '아이들 때문에 친정엄마가 여행 가서 많이 힘들면 어쩌지? 애들이 할머니한테서 안 떨어지려 할 텐데 걱정이네.' 쓸데없는 걱정이란 것을 알지만 마음속에서 무언가 꼬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정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함께 가진 않지만 자신도 아이들의 행복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여행경비를 주시겠단 말씀이었다. 주부로서 두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며 지내는 나에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여행에 필요한 예약을 하나둘씩 진행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걱정과 후회가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내 안의 잡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기 전에 나의 멘토라고 말할 수 있는 지인에게 어리석은 이 생각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딱 한마디로 모든 것을 정리했다. "부모님이 금전적이든 무엇이든 도움을 주실 때 그것을 기쁘게 받는 것도 자식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야."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들에 사로잡혀있을지 다 알고 있는 듯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부모님께서 주실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 경비를 보태주시는 거야. 일어나지 않은 일에 너무 걱정하지 마."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을 깨끗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마치 눈앞에 씌워진 얇은 한 겹의 막을 그녀가 걷어 낸 기분이었다.
나의 치료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그녀는 걱정으로 뒤 바뀌어버린 여행에 대한 설렘을 다시 찾아주려는 듯 보였다. 뜬금없이 그녀는 말했다. "비행기 마일리지 아껴놔. 나중에 너랑 꼭 미국 갈 거야."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자기랑 둘이서만 미국 가자는 말을 종종 하긴 했지만 지금만큼 달콤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그녀는 쉴 틈 없이 이야기했다. "일본 너 대신 내가 갈게.", "예약이 힘들어도 막상 가면 즐거울걸?", "나중에 언니랑도 검정봉지 들고 라스베이거스 가자." 등등. 꼭 글이 아니어도 마음은 가벼워질 수 있구나. 그제야 웃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상황이 아닌데도 내가 휘둘린다는 것은 충분히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가장 처음 우울증을 스스로 인지하고 병원행을 선택했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의사는 말했었다. 일단은 평범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인지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나에게 주어진 현재와 미래엔 즐거운 일들로만 가득하다. 그 어떠한 곳에서도 걱정이라는 것이 끼어들 틈조차 없을 만큼.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알아차린 시끄러운 마음속을 잘 다스려 진정시키는 것이다. 곧 다가올 행복한 일들만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