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도 용기가 필요해졌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괜찮으셨어요?"
갑작스럽게 든 생각이 너무도 확고해지면서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 방문할 때보다 더 두껍게만 느껴지는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의사 선생님. "네. 저는 괜찮았어요. 그래서 약을 마음대로 끊었었는데..." 나의 대답은 모두 과거형이었다.
스스로 이상함을 인지한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고민해 볼 생각이었다. 정말로 내 마음이 아직 안정적이지 못한 건지 나조차 알 길이 없었으니까. 집을 나서기 싫은 몸을 이끌고 겨우 운동을 하고 나왔을 때 개운함이 아닌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솔직해지자. 외면하지 말자."라는 말만 되풀이하다 보니 결론은 이러했다. '당장 병원을 가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구나.' 그 길로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내 이름이 불림과 동시에 후련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에 대한 답을 내리기도 전 평온한 얼굴의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화를 내는 빈도수가 하루의 절반 이상 넘어가요. 그런데 이유가 없어요."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겠는 이 마음의 병 때문에 주변의 누구라도 피해 보는 일은 없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가족이라면 더더욱.
선생님께서는 약을 중단했었으니 용량을 줄여서 다시 먹어보자 하셨다. 미뤄왔던 숙제를 해치운 듯 한결 차분해진 기분이었다. 내가 아픈 것에 대해 이해를 바라다 마음이 오히려 곪아갔던 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스스로 상처를 파고들진 않았다. 겪고 있는 당사자도 이해하지 못할, 기준조차 애매한 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서였을까. 동시에 이 병의 원인은 내가 가진 의지 탓이라는 말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서로가 이해를 바라지 않는 것이 아픔을 덧나게 하지 않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슬퍼졌다.
무표정한 얼굴에 가라앉은 기분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현재의 심정을 글에 담고 있다. 고민의 시간 없이 병원을 방문했던 이유 중 하나는 요즘 들어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조차 싫어졌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담아두는 것 없이 누군가 읽어줄 거란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써 내려갔던 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야기가 하기 싫어졌다는 것은 다시 빛 하나 존재하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겠단 소리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지금도 글을 쓰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중이다.
내가 웃으면 가족들이 웃고 내가 힘들면 가족들도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아질 방법을 알고 그것을 힘겹게라도 이행하는 지금, 빛으로 가득했던 시간들을 꿈꾼다. 이 또한 가족들을 향한 사랑이며 노력의 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잊지 않길 바란다.
“네 탓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