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인정할 용기
불안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바깥외출이 어려웠을 시기에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운동을 하는 게 좋아요." 그때 당시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집 밖을 나서는 것부터가 먼저일 텐데 운동을 저렇게도 권유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증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이 많이 호전된 후 신랑이 조심스레 PT등록을 권유했다. 바로 수락할리 없는 나에게 그는 재차 물었고 결국엔 용기를 내기로 결심한다. 개인운동을 안 갈지언정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땀을 흘리고 제대로 된 운동을 하겠지 싶은 마음에 부담감은 없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라는 생각을 곱씹으며 늘 스스로에게 말했다. "운동을 안 하더라도 일단 헬스장 가서 샤워라도 하고 오자." 그것이 시작이었다.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은 외출을 꺼려하는 나에게 좋게 작용할 것 같지 않아 3년 넘게 가던 헬스장에서 늘 봐오던 익숙한 선생님께 수업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첫 PT수업을 시작했을 때 브런치스토리에 첫 글을 올렸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운동이라는 목적하에 몸을 움직이고 집으로 돌아와 마음속에 든 무거운 것들을 글로 풀어내고 있자니 꽤 많은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뿌듯해지기 시작했다. 가라앉은 기분으로 시간만 흐르길 기다렸던 내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주말인 오늘 이유 없이 밀려오는 감정에 나는 곧장 운동복을 갈아입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만큼 2시간을 땀을 흘리며 움직였다. 거짓말처럼 기분은 산뜻해졌고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의욕이라는 것이 조금은 올라온 게 느껴졌다. 집 밖조차 나서지 않던 환자에게 무려 운동을 권했던 의사가 한 말의 뜻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용기, 그것이 필요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처음부터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굳게 다짐했던 것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날이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끝없이 가라앉는 기분을 그저 가만히 느끼고만 있었다. '운동을 다녀오면 의욕이 되살아 나잖아. 그런데 왜 집에 있는 거야?' 무기력감과 의욕상실을 깰 수 있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방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억지로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서게 되는 날엔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벼울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나아지는지 내가 가장 잘 알지 않나?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면 될 일인데 뭐가 그리 어려운 걸까?"
마음대로 중단했던 약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약에 대한 주의를 주었음에도 혼자 결정한 것에 조금씩 무서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던 때, "운동이랑 다를 것 없잖아. 중단한 약 때문에 생활에 힘듦이 생기기 시작한 거면 다시 병원을 방문해서 약을 처방받으면 되는 거야." 혼자 내뱉었다. 아주 간단했다. 우울증 약이라고 감기약과 크게 다를 것 없을 텐데... 그때 내가 예전에 의사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가 마치 안 좋은 일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사람 같아요." 스스로가 괜찮아질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음에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상태에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은 내가 정상적인 생각회로를 돌릴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 딱 그 정도라는 사실을 알았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려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쏟고 있는 한 여자는 말했다. "그냥 약이 다시 필요한 거고 중단하면 안 되었던 거고 그래서 지금 일상생활에 지장이 간 거야. 그걸 인정하기가 싫을 뿐이지." 특별할 것 없이 사소하고 당연한 일상에 큰 노력이 필요한 그녀 역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었다. 내가 요즘 붙잡고 있는 동아줄이 운동이라고 했더니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집에 가만히 있지 않아. 할 일이 없어도 무조건 집 밖을 나가는 거야. 지친 모습 그대로라도..." 그녀가 간절히 꼭 쥐고 있는 동아줄이구나.
이제 곧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현재의 생활이 평범하지 못하다고 좀 더 확고히 느끼는 순간이 오면 그 또한 인정해야겠지. PT를 그만 둘 생각도 운동을 멈출 생각도 없다. 어떻게 깨닫고 손에 쥐게 된 동아줄인데 좀 더 꽉 붙잡고 그것에 기대어보려 한다. 예전처럼 타인의 공감과 이해만 바라다가 나 자신이 더 아파지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