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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Mar 11. 2018

입맛이 까다로운 여행자들을 위한 첫끼

현지식이 어려울 때의 대안

베트남에서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베트남 식당에서 저녁 회식을 하던 날이었다. 내 앞자리에 앉았던 한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출장 온 행정실 남직원은 그의 맞은편에 앉은 나와 나의 통역관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어댔다. 어찌나 말을 걸어대던지 우리는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 입의 밥도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마침내 나는 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역관에게 미룬 채 그가 말을 걸거나 말거나 밥 한술에 반찬을 올려 입가로 가져가려고 하고 있었다. 숟가락을 입으로 넣으려는 그 찰나, 그는 내가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얄미웠던지 정확히 나를 겨냥하여 질문을 해대서 나는 그만 밥 한술도 못 먹은 채 그냥 숟가락을 다시 밥공기 위의 하얀 쌀밥 위로 살포시 올려두고 그의 질문에 답변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베트남 현지식을 먹지 못하는 여행자로 따지면 그야말로 여행 초자였던 것이었다. "왜 베트남 음식을 못 먹어요? 얼마나 맛이 있는데!" 하면서 나까지 밥을 못 먹게 했던 그가 미워 맘 속과는 다른 말을 내뱉고 말았지만 사실 나도 그와 같이 현지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던 적이 있음을 이 글에서 고백하려고 한다.


청도로 가는 페리

나의 첫 해외여행지였던 중국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먹거리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중국 실크로드를 거치는 것을 목표로 했던 나의 거창한 첫 여행의 계획을 짜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었기에 나는 뭔들 못 먹겠냐는 배짱으로, 게다가 같은 동양인데 뭐 얼마나 다를까 하며 별 걱정 없의 중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칭다오를 거쳐 들어갔던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낯선 냄새에 휩싸인 것만 같았다. 매연과 사람 냄새 게다가 향신료 냄새가 뒤섞인 베이징의 시내버스에서 나는 그만 중국음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저히 현지 음식을 입에 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 당시에는 베이징 시내에 섞인 너무나도 낯선 향기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웠다.

길거리 과일

어쩔 수 없이 내가 선택한 첫끼는 과일.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수도 없이 먹어본 너무나도 익숙한 수박이었다. 일주일 간 매일 반통의 수박을 밥처럼 먹어댔다. 중국 시내에서 파는 빵조차도 나에게는 중국 향신료가 풍겼다. 그렇게 수박을 반통씩 사다 놓고 배가 고플 때마다 퍼먹었던 기억이 난다. 수박을 손으로 뜯어 마구 퍼먹으면 배는 찼다. 아니 어떤 때는 밥을 한 끼 먹은 것 보다도 배가 불렀다. 하지만 쌀밥에 길들여졌던 나의 위장은 수박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고 나의 뇌 또한 이건 밥이 아니라 간식일 뿐이라고 계속 되뇌었다. 배는 불렀지만 늘 허기졌다. 나는 언제까지 과일만으로 삶을 유지해야 할까 하면서 무언가 까마득한 기분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과일은 현지식이 어려운 여행객에게는 최고의 밥임은 분명한 것 같다.

열대과일은 나중에

중국이나 동남아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열대 과일들이 많은데 여행 초보자들은 그 과일 냄새도 역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첫 과일 도전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과일을 추천한다. 어쨌든 덕분에 있는 줄도 몰랐던 광대뼈가 모습을 드러내 줬고 며칠 만에 3-4킬로 이상이 빠져버렸다.


그다음으로 유명 체인 패밀리 레스토랑.

그렇게 과일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북경의 이화원으로 가던 버스에서 TGI 프라이데이를 지나치는 것을 보고는 나는 주저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이화원이야 1시간 정도 후에 가도 될 것이었고 조금 늦게 간다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지 하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평소에는 길치의 극치를 보여주던 나였지만 새롭게 생겨난 제3의 감각이 나를 그 레스토랑으로 인도해 줬다. 주문 시 주의할 점은 가난한 배낭여행자라고 해서 가장 싼 메뉴를 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중국 시내의 싼 우육면 가격을 보다가 갑자기 고급이라면 고급 레스토랑이랄 수 있는 이곳에서 비싼 가격에 덜컥 겁을 먹고 가장 싼 중국식 치킨을 시켰다가 한 마리 통째 버리고 말았고 대신 친구가 시킨 가장 비싼 메뉴 었던 Rib을 반 이상이나 빼앗아 먹고야 말았다. 무조건 가장 웨스턴스럽고 한국에서도 먹어보았던 메뉴를 시키는 것이 정답. 그렇지 않다면 현지 향신료 냄새가 가득한 메뉴가 나올 수 있으니.  


그다음 선택은 일식

북경을 떠나 그다음으로 도착한 도시 서안에서 나는 드디어 일식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의할 점은 주인장이 일본인이거나 혹은 적어도 일본 식당의 체인점이어야 할 것. 그렇지 않으면 음식 맛에 중국 향신료가 섞여 들어간 맛이 나기 때문이다. 일식당이라고 해서 덜컥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것은 우선 그 가격에 있다.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우동 등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배낭여행자도 몇 번이고 먹을 만한 가격이니 현지 입맛이 맞지 않을 때 따뜻한 밥 한 끼가 간절하다면 일식을 선택하기를.


그리고 한국의 컵라면

한국의 컵라면

지금이야 세계 각지에서 한국 컵라면을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무려 2002년이다;;;) 한국 식재료를 파는 슈퍼들이 많이 없었다. 중국 시안에서 시내버스로 지나쳤던 한국 식료품 점을 다시 혼자 버스를 타고 찾아가서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ABC초콜릿과 튀김우동을 사 들고 다시 여관으로 들어가 기차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그 순간에 허겁지겁 식사다운 식사를 즐겼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만약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면 그냥 컵라면이나 고추장, 김 정도를 들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면서 무슨 한국음식을 들고 가냐 하는 말들은 그냥 한 귀로 흘려버리고 비위가 약하다면 그냥 한국음식을 들고 가기를.


그냥 웨스턴 푸드 혹은 외국인의 취향을 아는 여행자 카페

서양인들을 위한 식당 혹은 여행자 거리의 식당을 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좋다. 물론 아직도 현지의 거리에서 향신료 냄새로 두통이 온다면 계란 등을 시키지 말고 그냥 Veg 샌드위치 정도를 시키는 것이 무난한 선택이 될 듯하다.


패스트푸드 점

그래도 다행인 점은 동남아를 가든 유럽을 가든 유명한 패스트푸드 점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주의할 점은 한국에서 평소에 먹던 메뉴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에는 채식 버거를 파는데 인도 마살라 맛이 가득하기 때문에 인도의 마살라가 싫은 사람들이 시키면 한 입도 먹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냥 가장 흔한 메뉴를 시키는 편이 안전하다.


편의점

요즘은 중국 쪽에서도 흔히 보이는 편의점들. 만약 중국 우육면 같은 국물이 당긴다면 편의점의 오뎅바를 이용하는 편도 좋다. 국물에서 약간의 냄새가 날 수도 있으나 오뎅의 맛은 아주 무난하기 때문이다. 혹은 편의점 내에서 파는 간식이나 과자 등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것도 좋다.

 

길거리 간식도 배고픔을 달래기 나쁘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도 비슷한 간식이 있어서 그 맛이 어떨지 감이 오는 그런 간식들 말이다.

체인 카페에서 빵과 음료를

아직도 네팔과 스리랑카에는 스타벅스 같은 체인 커피숍을 찾기 힘이 든다. 허나 네팔에는 히말라얀 자바커피가 그리고 스리랑카에는 자바카페가 있다 (스리랑카에는 커피빈은 존재함). 그런 카페에 가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주방 있는 방 빌리기

에어비앤비에서 방을 찾으면 주방이 딸린 방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인이 많은 여행지에서는 한국인 여행자를 위해 미리 신라면을 구비해 놓는 센스 있는 집주인을 만나기도 한다. 정말 센스가 있는 집주인은 기름이나 세탁세제 등은 미리 준비해 주기도 하므로 근처 슈퍼에 가서 간단한 양념들과 식재료를 구입해 직접 음식을 해 먹는 것도 아주 좋은 생존전략이라고 생각된다.


해외에서 즐기는 한식

드디어 한국 밥

만약 현지식이 너무 힘든 상태라면 되도록 한국인이 하는 한식당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지 향신료 맛이 나는 한식을 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조미료 대신에 현지에서 흔히 파는 저렴한 향신료를 쓰기 때문에 모양은 그럴싸해도 한식에 현지 맛이 나곤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중국에서 조선족이 하는 한식당을 갔다가 콩나물 무침에 맨밥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콩나무 무침에서 조차 중국 냄새가 났지만 그것 조차 먹지 않는다면 죽을 것 같았기에 억지로 모른 척하고 먹었다. 대신에 주 메뉴였던 김치찌개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그리고 한식당에서  음식을 선택할 때 되도록이면 대충 해도 먹을만한 음식을 시키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김치찌개 같은 것을 시키면 우리나라에서 먹는 맛을 기대하기 힘들다. 예전에 인도의 한국인이 여행자 대상으로 했던 한식당에 어느 인도인 가족이 찾아왔는데 "이게 김치찌개 맞아요? 한국에서 만드는 그 맛이 아닌데요? 우리 가족 맛 보여 주려고 데리고 왔는데 너무 맛이 없어요" 이러면서 불평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떡볶이도 주문하면 낭패를 당할 가능성이 많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쫀득쫀득한 떡을 구하기 쉽지 않아서 떡인지 뭔지 떡 안에 양념이 전혀 배지 않아 그냥 씹는 느낌만 나는 떡볶이를 파는 곳도 있다.




아름다운 현지식에 도전!

사실 현지에서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한 달 정도 후에는 현지 음식이 차차 적응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나 같은 경우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줄 알았던 한식당을 찾아갔더니 조선족이 운영하는 한식당이어서 음식에서 강한 중국 향신료 맛이 났는데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모른 척하며 콩나물 무침과 함께 공깃밥 한 그릇을 후딱 비운 것을 시작으로. 나는 어느덧 중국요리에 적응하여 하루 한 끼에 두 개의 요리를 주문해 먹고는 너무 배가 불러서 걷지도 못하고 길가에 주저앉을 정도로 중국 현지 음식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토실토실, 조금은 아쉽게도 살이 쪄 갔다.


고수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여행의 고수인가?

그렇게 나는 세계 각지의 음식을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고수만 빼면. 고수는 아직까지도 아주 쉽지는 않다. 그래도 지금은 만약 누군가 음식에 고수를 넣었다면 예전처럼 고수를 빼 달라고 다시 음식을 돌려보내지는 않는다. 맛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먹을 만은 하다 정도로 먹을 수는 있게 된 정도. 누군가는 해외에 그렇게 오래 있어 놓고 아직도 고수 나물을 먹지 못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 고수 나물은 취향의 일환이라고 느껴진다. 어렸을 적부터 비위가 약하여 남의 집으로 가면 끼니를 굶고 다니곤 했던 나에게는 고수 나물이 진정한 여행자를 가리는 요소라고 하는 것에 반대표를 과감하게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수 나물은 그냥 취향일 뿐이다!라고 외치면서.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처음 나온 우리 언니의 가족들은 모두 고수 나물을 우걱우걱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없으면 베트남 내를 여행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나는 아직도 내가 고수 나물을 아직도 즐기지 않는다는 점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왜일까... 그놈의 고수 나물이 대체 뭐길래.

현지식을 즐길 수 있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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