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염 환자가 선택 가능한 해외여행 식단
덜컥 걸려버렸다. 위염과 식도염이 그것도 타국에서. 병원도 맘 놓고 갈 수 없는 나라인 베트남에서.
시작은 5월에 겁도 없이 먹어버린 3개의 생굴이었고 그로 인해 일주일 동안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 열이 나고 배가 아파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단식을 했더니 일주일 후에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젠 다 나았겠지 하는 안도감으로 먹은 맥주, 매운 쫄면과 썩은 요거트로 인해 갑작스레 발생한 위염과 식도염으로 정말 굶다시피 한 달을 견뎠다. 속이 아플 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손수 만든 된장찌개와 현미밥도 먹기에 버거워 싱크대에 그대로 버려버리고 나는 앞으로 뭘 먹으며 사나 고민했다. 그토록 쉬웠던 먹는 게 이렇게 감사해야 할 일이었을 줄이야. 그동안 해외를 떠돌면서 내 몸을 너무 혹사한 결과라 생각됐다. 중국에서는 강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하루 30-40번을 들락거렸고, 인도에서는 오래된 기름으로 볶은 초면을 먹고 또 비슷하게 화장실을 들락거렸었다. 태국에서는 전체 회식에서 나만 혼자 배탈에 걸려 고열과 메슥거림 그리고 설사로 이틀 간을 침대에서 보낸 적도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위장에 좋다는 양배추 주스를 만들기 위해 믹서기도 사서 양배추와, 사과 그리고 요구르트 갈아 주식으로 마셔대며 3주간 7kg이 빠졌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사람들은 내가 일부러 다이어트한 것처럼 보인다고까지 했다. 양배추 주스를 마셔 댄 까닭인지 오랜만에 본 베트남 친구들이 내 피부가 한층 밝아졌다며 부러워했다. 다행히 위장은 조금 편해졌지만 먹는 것은 여전히 두려웠다. 일반식이 힘들어져 다른 편히 먹을만한 걸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한국 슈퍼에 가서 병이 다 나으면 먹을 생각으로 한국 식료품을 잔뜩 샀다. 병원에 가기 힘든 타지에 있지만 어떻게든 회복해서 돌아가리라 하고 마음먹으면서. 당장 이 프로젝트를 그만두고 떠날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그중에서 힘들었던 건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미팅이었다. 미팅을 하면 술이 빠질 수 없는 베트남에서 미팅 때마다 일일이 양해를 구하기도 지쳐갔다. 그래도 그들은 내 야윈 얼굴을 보고 바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의 위염과 식도염은 심각했었다. 병원을 가기엔 힘든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중간에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올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 나는 일단 식이요법으로 위염과 식도염을 달래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3주 동안 시름시름 앓으며 나는 가까운 곳으로 짬을 내 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마음이 행복해지면 위가 좀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막상 집에서 떠나려니 음식이 걸렸다. 밖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고민되었지만 내 위장은 서서히 나아져서 여행에서의 식사가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 내 위장이 허락하는 하에서 맛있게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일단 위장을 보호하고자 죽을 만들어 싸가서 기차역에서 꾸역꾸역 먹었다.
힐링 여행으로 시작하여......
그리고 그렇게 내 기차는 베트남의 중부 훼에서 다낭으로 도착했고 내 힐링 여행에 동참하고 싶다는 베트남 친구를 다낭 카페에서 만나 나는 그 애의 오토바이를 타고 호이안의 리조트로 출발했다.
나의 일터인 베트남 훼 (Hue)의 더운 열기와 먼지 가득한 공기에서 벗어나서 인지 왠지 몸이 좋아지는 느낌에, 비록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도 오래간만에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마음이 무척 즐거웠다. 평소에는 예약할 생각도 못했던 4 스타 리조트에 도착해 짐을 풀어놓고 베란다로 나가니 펼쳐진 예쁜 코코넛 나무와 푸른 강에 크게 숨을 쉬어 보았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와서 그런지 무언가 마음이 한껏 즐거웠다. 한숨 잠을 자고 호이안 시내로 길을 나섰다.
호이안의 해변길을 지나 드디어 도착한 호이안. 호이안의 불빛들을 보며 산책을 한 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아들어갔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위염에 좋다던 브로콜리 수프를 발견했다!
수프와 바게트 (빵)
내가 한 턱 내기로 한 그 날 저녁에 친구가 시킨 맥주와 치킨 구이를 보니 나도 모르게 심술이 조금 나긴 했어도 나는 이 날 저녁 브로콜리 수프를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그 후부터 수프를 먹으면 속이 거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친구들을 만날 때나 미팅이 있을 때 간혹 수프와 베트남의 쌀이 첨가된 바게트를 시켰다. 단백질과 지방 섭취를 위해서는 버터를 바게트에 발라 먹곤 했다.
간혹 수프가 짜면 생수를 부어 먹었다. 그리고 속이 조금 나아진 것 같을 때 아주 가끔 맥주를 한두 모금 마시기도 했다......
수프 메뉴에 없을 땐 바게트 빵과 버터만 시켜 먹었는데 이로써 다행히 어떤 식당에 가도 어떤 메뉴를 시킬까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특히 저녁식사 미팅이라도 잡혔다면 베트남 식당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바게트 빵을 시키면 그만이었으니.
힐링 여행과 더불어 호텔 조식을
조식이 그냥 조식 일리가 없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먹어도 속을 그리 불편하지 않게 하기에 조식이라고 이름 지었겠지 생각할 만큼 이상하게 호텔의 조식은 나의 병든 위장도 점심이나 저녁의 2배 이상의 양을 소화시켜 주곤 했다. 아마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먹을 수 있어서였을까. 나의 위장은 아직도 호텔 조식을 환영해 준다. 다행히도.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차와 영양 주스
베트남에서는 특히 진저 티를 많이 시켜 먹었다. 생강은 위장을 소독시켜 주는 기능이 있다기에 틈만 나면 생강차를 마시곤 했다. 간혹 카모마일 티에 허니를 넣어 마시기도 했고. 차가운 음료나 커피는 거의 끊어버렸지만 덕분에 차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
과일 주스는 웬만하면 얼음을 넣지 않았지만 진짜 너무 더울 때, 진짜 달짝지근한 스무다가 생각날 때 한두 번 먹기도 했지만.... 속이 안 좋을 때는 절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걷다가 몸에 에너지가 부족함을 느낄 땐 빵을 조금씩 먹었다.
음식에 도전
먹을만한 음식은 두부와 계란 그리고 약간의 쌀밥
베트남의 우동이라는 반깐도 위장에 잘 받았다. 쌀로 만든 면이라서 확실히 일반 면과는 달리 소화가 잘되어 주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진짜 우동도 소화가 잘되는 편이었다. 위생 상태를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는 일식당은 위장이 안 좋은 여행자에게는 좋은 메뉴가 되어 준다.
먹을만한 밥들
먹을 만한 한국 밥으로는 고추장을 치지 않은 비빔밥이나 황태 해장국 등이 좋다. 사실 요즘은 한국식당 찾기가 크게 어렵지 않기에 위장이 불편한 여행자들도 여행에서 먹거리에 아주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채식식당에서 이것저것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다. 채식이라 소화도 잘될뿐 아니라 간도 쎄지 않아서 다 먹을만 했다. 특히 알로에 샐러드와 미역스프 등이 정말 맛이 좋고 위장도 편안했다.
두부와 버섯 등 몸에 좋은 야채들로 부글부글 끓여가며 먹을 수 있는 야채 샤브샤브도 무언가 요리다운 요리를 먹고 싶을때 시키기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된다. 많이만 먹지 않는다면 위장에 크게 무리도 없다.
어찌 되었든 결론은...... 여행이 주는 기쁨에 위장도 기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지친 위장을 많이 좋아지게 해 준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라고 믿는다. 현재는3킬로 그램은 도로 쪄서 엄청 마른 몸은 아니지만 식단에 신경을 써서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해외 여행을 할 때는 늘 위의 식단을 지켜서 여행에 무리가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위가 고장난 이후로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이 빠진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행으로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