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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Sep 23. 2017

그 남자의 생일 파티

스리랑카 난민을 위해 생일 파티를 열다

그를 위한 생일 케이크

나는 그의 생일에 그를 처음 만났다. 그전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을 뿐 사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채였다. 나는 그를 위해 사온 생일 케이크를 등 뒤로 숨긴 채 작은 목소리로 혹시 여기 SJ라는 사람을 만나볼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의 수줍은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아주 순수하게 생긴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 관해 듣게 된 곳은 태국 방콕의 난민수용소였다. 나는 그 당시 방콕에 체류했었고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방콕 난민수용소를 찾아 가 스리랑카 여자애를 면회하고 있었다. 방콕 난민수용소에 대해 알게 된 곳은 내가 토요일마다 자원봉사를 갔었던 방콕 빈민가의 영어교실에서였다. 봉사자들 중 몇몇이 그 방콕 난민수용소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때,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서양인들을 보조하며 가끔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다 주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 일을 하면서 혹시 내가 더 할 수 있는 없을까 인터넷을 뒤지다가 그 방콕 난민수용소 면회에 대해 쓴 미국인 변호사의 블로그를 읽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그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방콕 내 봉사자 협회 연락처를 전달받았다. 아시아에서 태국은 많은 난민들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라를 버리고 살려고 찾아오는 장소라고 했다. 난민 수용소에는 여러 국가에서 도망쳐온 난민들이 가득 차 있었고 나는 봉사자 그룹에 끼어서 스리랑카에서부터 가족과 함께 도망쳐 왔다는 16살 소녀를 소개받아 생필품과 음식을 사들고 그 애를 매주 수요일마다 면회하기 시작했다. 그 애의 이름은 프라샤. 나에게 프라샤를 소개하여 준 미국인 베키에 따르면 프라샤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도망쳐 왔고 난민 수용소에 갇혀 있은지 현재 6개월가량 되었다고 했다. 삼엄한 경비와 검문 후에 나는 난민수용소 면회소로 들어가 프라샤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앳된 모습의 프라샤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우리는 울타리를 사이에 대고 큰소리로 어설픈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주변에도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소리치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약간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서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우리의 첫 대면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 준 것도 같다. 거의 대부분이 난민들의 가족이나 친구들로 간혹 눈물을 보이며 면회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거의 미얀마나 스리랑카 난민들이 태국 방콕의 난민수용소에 잡혀 있었고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의 면회를 받았지만 그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고단해 보였다. 프라샤와는 주로 그녀의 가족과 친구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그리고 면회가 거듭될수록 친말감이 생겨서 인지 남자 친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주었다. 태국의 방콕으로 넘어와서 방콕 내 무료 영어교실을 다니며 살았던 첫 3개월은 참 행복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영어교실에서 역시 스리랑카에서 온, 18살의 앳된 그를 만났다고 했다. 그녀의 남자 친구인 '그'의 이름은 SJ. 프라샤와 SJ는 영어교실이 끝나면 손을 맞잡고 온 방콕 시내를  쏘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행복했던 3개월 이후에 프라샤와 그녀의 가족들은 방콕의 난민수용소로 끌려왔다. SJ 역시 난민이었지만 그는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 대신 스리랑카 난민협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도 일주일에 한 번씩 프라 샤를 면회하지만 어쨌든 방콕에 가족이 없던 그가 방콕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을 수용소에 갇혀 있는 프라샤는 늘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라샤가 나에게 부탁이 하나 있다고 꼭 들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 부탁은 곧 다가올 SJ의 생일을 내가 대신 찾아가서 축하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나는 유치원에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내 생일파티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고 생일 케잌크의 촛불 또한 불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 준 적은 있어도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켜주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그런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쑥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는 프라샤의 눈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SJ의 생일은 돌아오는 금요일. 가난했던 시절이라 나에게는 여유돈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생일 케이크를 살 곳을 미리 봐 두고 드디어 금요일 오전에 케이크를 사다가 스리랑카 난민협회를 찾아 뚜벅뚜벅 혼자 걸었다.


그렇게 조촐한 그의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나는 SJ가 나오기 전에 케이크에 양초를 꽂고 미리 준비한 라이터로 촛불을 켰다. 주변의 사람들이 얘 뭐하니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서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벌게졌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다 생각하며 열심히 양초에 불을 붙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SJ가 나왔다.

순해 보이는 인상의 SJ에게 내가 프라샤의 친구라고, 프라샤의 부탁으로 너의 생일을 축하하려 왔다고 하니 SJ는 바로 눈물을 훔쳤다.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지만 간신히 "생일을.... 축하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SJ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소리쳤고 우리의 어색한 순간은 곧 행복한 웃음이 대신해 주었다.

내가 다 붙이지 못한 촛불을 다시 붙여 주는 스리랑카 난민협회 사람들이 고마웠다. 뭔가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고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행히 스리랑카 난민협회의 그의 동료들이 함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러주었다. 사실 나는 생일파티 중 이 생일 축하 노래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제일 고민했는데 다행히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사랑하는 SJ 생일 축하합니다 라는 노랫말을 끝으로 SJ는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며 촛불을 껐다.

그리고 케이크를 잘랐다.

프라샤가 내게 맡긴 'SJ생일 축하 파티'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나는 그의 흥분된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뒷수습이 쑥스럽기도 했고 케이크를 그들끼리 편하게 먹기를 바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좀 더 화려하고 비싼 케이크를 사줬더라면 더 좋았을 걸, 더 행복해 했을 걸 하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낯선 이의 생일을 축하해 준 것도 처음이었고 이런 일을 처음으로 겪게 해 준 프라샤가 나에게 준 선물 같기도 했던 이 날의 이벤트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기억 속에서 가끔 꺼내 보곤 한다. 참 흐뭇한 장면이었다고 하면서.




그 후 프라샤네 가족은 UN의 중재로 미국 시민권을 얻어 방콕에서 미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나는프라샤가 떠나기 전, 그녀와의 마지막 수요일 면회를 하면서 행운을 빌어줬다. 프라샤는 남자 친구인 SJ를 통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알려주겠다며 계속 오래도록 연락을 하는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다. 나는 물론이지 하고 답했다. 그리고 프라샤가 떠난다던 그날 밤, 비행기가 무사히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혹시 미국 이민국에서 이들의 입국을 거절하면 어쩌나 잠을 설쳤다. 그리고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그녀의 새로운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 난민수용소의 면회를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를 만들었다는 것에 무언가 우쭐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쨌든 매주 수요일마다 땡볕에 1시간을 걸어 생필품을 가득 사서 면회를 하곤 했던 그 날의 벅참은 프라샤가 준 또 다른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2달후, SJ 도 미국으로 가 새 삶을 시작했다. 프라샤를 곧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그는 무척 행복하다며 특별한 생일 파티에 대한 감상와 함께 작별의 메세지를 보냈다. 현재도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 그리고 힘겨운 사랑을 견뎌냈던 그들의 모습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세상엔 정말 진정한 사랑이 있는걸까...... 에 대한 믿음 또한 심어 주었던 프라샤와 SJ. 그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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