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do 리스트'를 지우면 생기는 일

답 / 호피족의 시

by 윤이나

답 / 호피족의 시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마라.




해마다 바뀌는 다이어리 안에도 이 글은 꼭 적어둔다. 인디언의 시라는 이 글은 짧고 간결한 문장에 인생의 정수를 담은 느낌이다.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시작해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말라는 시에는 장황한 설명도 지나친 수식어도 없다.


나는 첫 문장을 읽으며 '인생'이 떠올랐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자신에게 부여된 생을 묵묵히 살아냈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삶으로 완성된다. 잘 산 인생, 못 산 인생 굳이 가르기를 할 수는 있겠으나 엄밀히 말해 해답은 없고 정답은 더더욱 없는 게 우리 삶이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그 다음 구절이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말라는 말.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을 것들이지만 나이가 들었을 때 비로소 더 간절하게 와닿는 말이기도 하다.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 꼭 필요한 말만 행동, 타인에 대한 배려. 단순하고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만 간추려 놓은 것 같다.


시의 제목이 '답'이니 오래전 인디언들의 지혜를 담은 이 글에서 삶을 살아내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년 되새기는 이 시는 읽을 때마다 나에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복잡한 세상에서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평온한 마음과 올바른 행동이 곧 삶의 해답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처럼 나도 요즘 <먹고 운동하고 쓰라>는 모토로 살고 있다. 불필요한 곳에 쓰이는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고, 내 삶에 꼭 필요한 것들에만 전심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 루틴을 최대한 단순화해 보았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처럼 정말 군더더기 없이 내 인생에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것들만 남았다.


나이가 드니 체력도 전 같지 않고 한 두 번 아플 때마다 몸이 축나는 게 피부로 와닿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누군가 생각나면 바로 연락해 약속을 잡았고, 성당, 동호회, 봉사활동, 학원, 자기 계발 등 빼곡한 스케줄로 바쁘게 지내는 게 잘 사는 일인 줄 알았다.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는 말을 좋아했는데, 내 마음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 욕구들을 다 충족시키자니 몸이 열두 개여도 모자랐다. 자연스레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 많은 사람을 둘 필요도,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바로 다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작고 소중한 에너지를 그리고 금쪽같은 시간과 돈을 꼭 필요한 곳,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쏟고 싶었다. 그래서 소모적인 만남이나 통화도 줄이고, 집밥이 제일 건강하다는 것을 알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수고도 덜어내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먹고: 꼭 유기농이 아니더라도 제철에 난 식재료, 로컬푸드 매장에서 장을 봐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가족이 아닌 혼자 먹는 밥이라도 나를 위해 정성 담은 식사를 차려낸다.


운동하고: 집 밥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는 날씨에 따라 매일 30분에서 1시간 운동하는 시간을 갖는다. 강릉에 살았을 때는 집 앞 해변가를 맨발로 거닐었고, 소나무 숲길에서 피톤치드 샤워를 하기도 했다. 경포호를 따라 걷거나 이도저도 안될 땐 아파트 단지에 볕 잘 드는 자리를 찾아 몸과 마음을 소화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세종으로 이사 온 지금은 세종호수공원, 금강변, 방축천과 제천을 주로 걷고 조금 더 날이 따뜻해지면 전기 자전거를 타거나 비학산, 괴화산 같이 둘레길이 잘 되어있는 야트막한 산에 다녀 볼 생각이다.


쓰라: 나의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조금씩이라고 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도,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다녔던 직장도,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열정을 받쳤던 취미생활도. 모두 흘러가버리는 것들이었다. 영원한 건 없었다.

반면 '글쓰기'는 학창 시절 내내 그리고 상경계열을 전공하고 회계일을 하며 전혀 다른 세상에 있었을 때도 나에게 최고의 벗이자 편안한 집이었다. 이제 그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매일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써보려 한다.


영화 제목처럼 세 가지만 꼽아봤지만 이 외에 몇 가지를 더하자면 '기도하고 여행하는 것'을 보태고 싶다. 신앙 역시 내 인생에서 변치 않을 영원한 것이기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식사 전후에 올리는 기도, 운동할 때 하는 사색과 명상, 글을 쓰면서 느끼는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들에도 기도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먹고 운동하고 쓰는> 궁극적인 이유는 삶을 잘 '여행'하기 위함이다. 멀리 떠나는 여행도 좋아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항로를 영위하기 위해 매일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몸을 움직이고, 사랑하는 일을 할 것이다. 삶을 여행처럼 즐기며 살고 싶다.




철저한 계획형 인간 파워 J인 나는 매일 '오늘 할 일'을 적었다. 새해가 되면 그 해에 이루고 싶은 소망도 적어보고, 아프고 난 후로는 '버킷리스트'라는 미명 하에 살면서 꼭 하고 싶은 목록을 작성해보기도 했다. 뭐든 손으로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의 업인 것 같기도 하다. 종이가 없어도 상관이 없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으면 언제 어디서나 수정과 업데이트가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리를 펼쳐도, 핸드폰을 봐도 오늘 해야 할 일, 내일 할 일, 나름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모아놓은 정보들이 넘치고 있었다.


호피족의 이 시처럼 '단순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나는 어느 날 휴대폰을 켜고 하나씩 메모를 지웠다. 별것도 아닌 일들이 별 것처럼 나열되어 있었다. 버튼 하나를 꾹 누르고 있으니 와다다다- 하고 글씨가 지워지는 진동이 느껴진다. 묘한 쾌감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었다. 슬며시 미래의 나에게 공을 넘기며 오늘의 자유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 오늘 할 일: 쉬기. 아무것도 안 하기.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다 그마저도 지우고 한 줄 문장을 적었다.

* 이나야 사랑해!


그 한 줄이 주는 위로가 참 컸다. 뭉클한 마음에 창을 닫았다.

자동차세 납부, 차량 보험료 갱신, 우체국 가서 택배 부치기... 이런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말이었다. 훨씬 더 나에게 와닿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TO DO 리스트를 지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글자 몇 개를 지웠다고 오늘 꼭 해야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1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늘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위한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가장 햇빛이 좋은 시간에 나가 쨍한 겨울의 체취를 느끼며 걸을 것이다. 잠꾸러기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뚝딱 글 한편을 완성했으니 오후에는 책을 읽으며 영감을 채우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설령 이 단출한 일상 중 몇 가지를 못했다고 해도, 잘하지 않았어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내일의 여행을 꿈꾸며 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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