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인생 / 김용택
이것은 나의 인생 / 김용택
나는 평생 강을 보며 살았다. 강물을 따라왔던 것들은 눈부셨고, 강물을 따라가 버린 것들도 아침 강물은 얼마나 반짝이고 저문 강물은 얼마나 바빴던가?
살아오면서 나는 흐르는 강물에 달빛 한 조각 건져내지 못했다.
외롭고, 적막했던 세월, 내 발소리를 들으며 타박타박 걸었던 길들, 나는 풀꽃이 진 자리에 앉아 산 그늘로 뜨거운 내 나이를 덮어 식혔다.
어느 날 강을 건너다 뒤돌아 보았더니 내 나이 서른이었고, 앉았다 일어나 보니 마흔이었고, 감았던 눈을 보니, 나의 인생은 또 어느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 앞에 어찌 인생을 묻고 답하겠는가.
그냥 살았다.
김용택 시인의 시에는 자연이 묻어있다. 은모래빛 모래사장과 윤슬을 머금고 흐르는 섬진강, 돌아 앉은 산과 그 위로 넘어가는 해와 달, 꽃, 나비, 이름 없는 풀꽃도 모두 시인의 글감이 된다. 그의 글에서는 언제나 싱그러운 들풀 향기가 난다.
시인을 처음 만난 곳은 한 대학 강연장에서 열린 '시 낭송회'였다. 지금 막 서울에 도착했다며 세월이 묻어나는 가방을 내려놓는 그의 모습이 참 친숙하고 푸근하게 느껴졌다. 글을 읽고 느껴지는 감정과 그것을 쓴 사람을 직접 만나고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날 본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분이었다.
필사노트에 옮겨 적은 글 중 가장 좋았던 부분은
<어느 날 강을 건너다 뒤돌아 보았더니 내 나이 서른이었고, 앉았다 일어나 보니 마흔이었고, 감았던 눈을 보니, 나의 인생은 또 어느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 앞에 어찌 인생을 묻고 답하겠는가. 그냥 살았다.>
라는 부분이다.
올해로 마흔이 된 나는 숫자가 주는 동요보다는 '내 인생이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구나. 이제 반 왔네.' 하는 생각이 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청년에 속했던 것 같은데 이제 어디 가서 '청년'이라고 우기기는 좀 뭐 한 나이가 되었다. 백세 시대다, 백이십 살까지 살 수 있다고도 하지만 사실 나는 욕심 다 떼고 88살까지만 잘 살다 갔으면 좋겠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숫자 '8'을 좋아해서 그렇다. 그때쯤 가면 세상에 아쉬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자주 아프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 나이의 두 배를 곱해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내가 지금 서른 하나. 그럼 이만큼 더 살면 육십 둘인데... 그땐 미련 없이 갈 수 있을까?'
아무리 자문해 보아도 이른 나이였다. 지금까지 버티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만큼을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평균수명은 83.7세라는데, 이십 년 간 여러 번의 암 수술을 한 나에게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숫자였다.
그래서 그냥 생각하지 말기로 했다. 사실 어떻게든 시간은 갔다. 아픈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고 치료가 끝나 3개월 검진, 6개월 검진을 몇 번 통과하면 또 세월이 지나있었다. 마음을 졸이면서 지내야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즐겁게 꽃놀이도 다니고 단풍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마흔이 되었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시간도 이만큼 흐른 것이다. 그래서 가끔 시간 가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날은 서강대 예수회센터에서 하는 '영신수련' 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피정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로 자신을 살피는 종교적 수련으로 불교의 '템플스테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 2박 3일의 피정 중에는 대침묵이 원칙이었고, 강의와 미사, 개인 기도, 면담 고해성사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도 신부님께서는 자유시간에 경의선 철길거리를 산책하는 것을 권해주셨는데, 일상생활을 하면서 하늘 한 번, 꽃 한 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사는 경우가 다반사라 피정을 하면서만이라도 자연 가까이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 후 가벼운 책과 물 한 병을 챙겨 거리로 나갔다. 주말의 대학가 앞은 젊음과 낭만이 가득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노란 조명이 운치 있는 선술집마다 청춘이 피어나고 있었다. 근처에 아파트 단지도 많아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분들, 유모차에 태운 아이와 나온 가족들, 조깅하는 청년들, 데이트하는 사람들... 이렇게 여유롭게 사람 구경한 게 얼마만인지. 모든 게 다 좋고 신기했다.
신부님은 분명 새소리와 나뭇잎 하고 꽃 등을 보라고 일러주셨던 것 같은데,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인간의 아름다움도 으뜸이니 나는 그 예쁜 자연 속에 어우러져 사는 더 예쁜 사람들을 보며 흐뭇해했다.
벤치에 앉아 책 한 권을 나른하게 읽다 보니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유행했던 노래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십 년도 넘은 노래인데 어떻게 아직도 토시 하나 빼지 않고 가사를 외우고 있는지. 코러스에 화음을 넣으며 내 마음도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삼삼오오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학생들, 여유로운 모습으로 산책하는 사람들, 파랗고 초록색인 버스가 순서대로 섰다 이내 출발하는 곳. 아빠 가슴에 매달린 아기도, 주인 따라 나온 강아지도 모두 즐거운 곳. 와인바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근사한 라자냐를 만들어주는 요리 잘하는 남편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세상을 알려줄 분신 같은 내 아이는 없어도... 그래도 이만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이 내린 공원에서 느끼는 상념들을 잊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꺼내 빠르게 적어내려 갔다. 이대로 어둠이 내리면 모든 마음들이 미풍처럼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가끔 글감들을 모아놓은 그 메모장을 보면 글을 적었던 때의 공기, 온도, 바람, 풍경들이 하나하나 고스란히 떠오른다.
흐르는 강물 앞에서 인생을 논할 수 없어 그냥 살았다는 섬진강의 시인처럼 나도 물처럼 흘러가며 그냥 산다. 그렇다고 무계획이나 목적이 없는 삶은 아니다. 이루고 싶은 꿈도 있고 지향하는 바도 있지만 인생의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쳐 삶이 다른 곳으로 흘러갈 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기다린다. 살면서 배운 건 폭풍우와 비바람이 없는 인생은 없을뿐더러 아등바등 애쓴다고 비를 덜 맞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 시간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희망을 품고 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엇보다 요즘 새로 생긴 소망이 있다면 '조용히 잘 사는 것'이다. 매일 엄청나게 행복한 일과 재밌는 일들이 휘몰아치지 않더라도 그저 무탈하고 무심하게 사는 것. 그것이 가장 값진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내 삶에는 많은 제약이 있고, 보장된 것은 없지만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삶에도 허락된 많은 것들이 있다.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 때 완성되는 것이 인생이다.>
보통의 존재로 충분히 행복할 것. 하루하루 평범하게 그냥 사는 것.
삶이 허락한다면 앉았다 일어서면 또 십 년이 후딱 가고,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도 되어있을 텐데. 그때 또 빛나는 젊음을 그리워하며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오늘도 잘 '그냥'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