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 김종삼
◉ 피파의 노래 / 로버트 브라우닝
때는 봄,
아침 일곱 시,
언덕 위에 이슬방울 진주 되어 빛나고
종달새는 하늘에
달팽인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이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다.
◉ 평화롭게 / 김종삼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로버트 브라우닝의 '피파의 노래'는 애송하는 영미시다. 시를 읽으면 모든 이미지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져 세상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김종삼 시인의 '평화롭게'는 '평화'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나열해 시를 읽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주는 담백한 작품이다.
3년 전 나는 젊은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쿨 오브 히어로즈'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6개월간 젊은 암환자들을 위한 통합 치유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 제주도로 졸업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전국에서 다양한 사연으로 모인 우리들은 사회 복귀 활동, 재활 운동, 창업 교육, 독서모임 등의 수업을 이수하며 친목을 다졌고, 서로의 아픔과 고민을 나누며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프로그램과 병행하며 치료를 하고 계신 분들도 계셨지만 거의 대부분이 표준 치료가 끝난 후에 참여하신 분들이었다. 나는 동기들에게 무언가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으로 재발과 전이 그리고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 하는 환우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스물다섯 명의 동기들에게 손 편지를 적어 보았다. 이왕이면 밝고 희망찬 그림이 담겼으면 좋겠어서 카드 선택도 나름 엄격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 멋진 여행지가 배경인 엽서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것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무엇보다 응원의 마음을 담은 짧은 시를 적어주고 싶었다. 필사노트에 담긴 수많은 글들을 꼼꼼히 읽으며 최종적으로 골랐던 시가 바로 김종삼 시인의 '평화롭게'였다.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평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지었다. '행복'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이 '몸과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마음의 평화 (Inner peace).
보물처럼 지키고 싶지만 아직 수행이 덜 된 탓에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는 나지만 그래도 지향해야 할 바에는 변함이 없다. 6개월 간 함께한 히어로즈 동기분들 마음이 오롯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나는 정성껏 시를 적었다. 그리고 동기 한 분 한 분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짧게 남겼다. 여행 일정이 끝나고 졸업장을 받는 행사에서 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달했다. 다들 뜻밖의 선물이라 아이처럼 좋아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작은 선물이지만 그래도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전국으로 흩어져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텐데, 진심이 담긴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었다. 말보다 글이 좋을 때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평화'에 대한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한 가지 더 있다. 이날은 병원 검진일로 여느 때와 같이 종양내과 문 앞에서 잔뜩 겁먹고 있었다. 암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와 향후 항암치료에 대한 논의를 하는 진료라서 몸과 마음이 너무도 추웠다. 병원에서 결과를 들을 땐 극심한 긴장감 탓에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내 걱정에만 몰두하다 가끔씩 눈을 들어 옆을 보면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환자와 보호자 너나 할 것 없이 심란한 표정으로 돌처럼 굳어있다. 어떤 마음일지 다 짐작이 갔다.
긴 기다림 끝에 진료를 마치고 복도 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분께서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것을 들었다.
"하. 지금만 해도 괜찮은데... 지금 이 평화를 깨시지는 않겠지..."
한눈에 보기에도 앙상하게 마른 몸이었다. 걸음걸이가 불편한 걸로 보아 '엉덩이 주사'라고 하는 뼈주사를 맞으시는 것 같았는데, 유방암의 경우 뼈전이가 생기면 이 주사를 맞게 된다. 파리한 얼굴로 그녀는 지금 이 상태라도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혼잣말을 내가 들어버려 미안했다. 내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이 화살기도를 했다.
'부디 저분이 바라는 게 이루어지길.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길.'
인간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어떠한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안식을 찾고 희망한다. 나는 그 점이 인간의 가장 대단한 면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가끔 병원의 그 좁고 기다란 복도를 지날 때면 나뭇가지처럼 마른 몸으로 벽에 기대어 '평화'를 바라던 그 아주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딘가에서 더 건강해진 몸으로 평화롭게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
성당 미사 중에는 '평화의 인사(평화 예식)'라는 게 있다. 신자들이 성체를 영하기 전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일치와 화해로 준비하는 전례이다. 두 손을 기도손처럼 가지런히 모으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며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한다. 크리스마스나 부활, 새해같이 기쁜 날에는 악수를 하시거나 가족끼리 가벼운 포옹을 하는 경우도 보았다. 나는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보름달같이 밝고 환하게 웃으며 모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평화'를 빌어주는 시간이 참 좋다. 무엇보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평화의 인사에는 주름살만큼이나 느리고 깊은 평화의 마음이 담겨있다. 슬로모션처럼 더 많은 평화를 담뿍 빌어주는 느낌이랄까.
'평화'라는 단어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피파의 노래'와 '평화' 그 자체인 김종삼 시인의 '평화롭게'를 읽으며 비슷한 마음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잔잔하지만 평온한 두 시를 읽으며 나는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