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설악산이 마르고 닳도록

저문 하늘빛에 기대다 / 이성선

by 윤이나

◉ 저문 하늘빛에 기대다 / 이성선

설악산 해 지는 모습이 너무 깊어서

가만히 그 아래 서서 올려보다가

저물어 아름다운 하늘빛에 몸을 기대다


고요의 산 그림자에 안기는 하루의 끝

작은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수척한 꽃대 하나 없는 바람에 떨며 곁에 있다


◉ 단풍 / 허림

설악의 나무들이 소풍가고 싶어

하늘 끝 가지에서

고운 신발 꺼대 신는다


저문 영진 바다에서 / 허림

저물도록 캄캄하게 모래톱에 앉아

끼룩끼룩 울던 새들의 그림자

바위처럼 내 옆에 다가와

파도처럼 눕는다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하루를 내려놓은

그 마음이겠다


건강상의 이유로 속초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나는 '강원도'가 고향인 작가들의 글을 찾아 읽었다. 그러다 알게 된 분들이 이성선과 허림 시인이다. 각각 고성과 홍천이 고향인 작가들이었다. 그들의 시에는 강원의 산과 바다, 언어와 정서가 잘 녹아있다. 자연이 좋다는 이유로 내려왔지만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읽은 시인들의 글은 내겐 유일한 벗이자 공감의 장이었다.


설악산의 단풍과 강릉의 영진해변 바다, 산 너머로 해가 저무는 모습, 산사의 모습들은 돌아서면 마주하는 매일의 풍경이었다.

감탄으로 끝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또 달라서 나는 언제나 그분들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찬사를 보내곤 했다.

속초에서 지내는 4년 그리고 작년 한 해를 강릉에서 보내며 나의 빈 마음을 달래준 건 설악산과 동해바다였다.

폐수술을 하고 한 달 만에 속초로 내려갔다. 아빠와 동생은 서울에, 나와 엄마는 오로지 살기 위해 속초행을 결정했다. '바다가 보이는 삼림욕장'이 있다는 동네에 집을 구했고 그렇게 우리의 속초살이는 시작되었다.


장기를 건드리는 수술이어서 회복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초반에는 동네 근처 '청초호'를 살살 걸어 다녔다. 더 나아졌을 때는 설악산의 '비선대'길을 걸었다. 육십이 훌쩍 넘은 엄마 걸음도 못 따라가

'엄마~ 좀 천천히가. 나 힘들어.'

연발하던 나였다. 지금은 무장애길이 되면서 시멘트로 덮여버렸지만, 그때는 자연스러운 흙길이라 더 좋았다.

3~4개월 지나자 드디어 '청대산 삼림욕장'에 올라갈 수 있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는 삼림욕장이라는 글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가파르고 무덤이 많은 산이어서 사실 몇 번 못 가긴 했다.


몸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갈 무렵 나는 다시 유방암 재발 진단을 받았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됐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는 데 청천벽력이 몰아치던 그때를 내가 어떤 정신으로 살아냈는지 잘 모르겠다. 다시 오른 수술대, 12번의 항암을 하며 정신적인 힘듦이 찾아왔다. 아픈 몸으로 집에만 누워있는 게 더 괴로워 나는 설악의 품에 안겼다. 힘들거나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산에 다녀볼 생각이었다.


자주 오르던 곳은 설악산의 '흔들바위' 였다. 왕복 2시간, 걸음 수로는 만보가 조금 넘었다. 아침 먹고 출발해 설악산에 출석 도장을 찍고 내려오면 엄마가 차린 맛난 점심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악산 쌓인 눈이 녹는 4월경부터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설악산으로 갔다.


처음에는 힘들어 여러 번 쉬어가던 길이었지만, 금방 체력이 붙어 한 번도 앉지 않고 흔들바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날마다 새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꽃, 이름 모를 풀들, 정답게 지저귀는 예쁜 소리의 새들, 고물고물 귀여운 다람쥐들이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다. 몇 번 견과류를 싸가 다람쥐를 준 적이 있는데, 누가 관광지 다람쥐 아니랄까 봐 부르면 다가오는 게 설악산의 다람이였다. 다람쥐들의 집, 새끼 다람쥐들, 다람쥐 울음소리, 습성 등 다람쥐에 대한 꽤 많은 것들을 그 해 설악에서 배울 수 있었다.


무렵 산에서 쓴 일기를 보면 언제 머리카락이 빠질까 노심초사하던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지금 열어보면 너무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느 바위에 앉아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는지도 전부 생각이 난다. 기록의 힘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바다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힘들여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문 열고 나가면 집 앞이 바다였다. 등산 같은 야외활동은 날씨가 계절의 제약을 많이 받는데, 바다는 비가 오고 무덥고 태풍이 치는 날에도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한여름의 해수욕장은 관광객들에게 양보해야 했지만.

해안가 드라이브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쁜 날에도,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은 날에도 나는 항상 바다로 향했다. '좋은 울음터'라는 연암 박지원의 말처럼 바다는 나의 유일한 '호곡장(好哭場)'이었다.


아야진 바다 갯바위에 앉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던 아야진은 지금 바다뷰의 대형 카페들과 무지개색 차단석이 즐비한 관광지가 되어버렸지만, 그때의 정취는 사라졌어도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곳이 누군가에게 또 좋은 장소가 된다면 의미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속초에 놀러 온 지인들이 짧은 일정에 산 보다는 무조건 바다를 택하는 것이 신기했다. 바다가 잘 보이거나 파도가 좋은 곳에 데려가면 모두 가슴을 들썩이며 크게 숨 한번 들이쉬고는

"흡- 하- 너무 좋다. 너무 좋아."

를 연발했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좋은 곳인가 보다. 특히 동해바다의 시원한 파도와 파란 물결은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선사한다. 언제나 그 앞에 서면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눈 내리는 바다와 비 오는 바다를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넋을 놓고 본다'는 말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무언가가 바다에 스며드는 광경이 신비로워 말을 잃곤 했다.




남편의릉 발령 소식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 설악산과 '' 동해바다를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있었던 건강 이슈로 바다에서 매일 맨발로 걸으며 이 노력들이 차도가 있다면

'나는 산이 한 번, 바다가 한 번 살린 것 같다.'

생각을 했다. 지친 몸을 기댈 곳은 진정 자연뿐이었다.


설악산의 날다람쥐라고 자부했던 체력도 약해진 무릎 탓에 등산을 자주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비선대는 가봐야지 싶어 어느 가을날 훌쩍 다녀온 게 전부였다. 강릉에서 가까운 소금강 계곡 코스를 다녀오기도 했다.

대신 매일 바다 곁에서 걷고 솔숲으로 들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숨 쉴 곳이 되어주는 산과 바다였다. 기뻐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은 자연이 주는 덤이었다.


지금은 그곳을 떠나왔지만 설악산과 동해바다는 여전히 나의 종착지이자 두 번째 고향이다. 속초에서 만나 결혼한 나와 남편은 은퇴 후에 다시 그곳에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다. 아직 요원한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그곳이라는 결론은 부부 둘 다 변함이 없다.


저문 영진 바다에서 하루를 내려놓았다는 시인과 설악산 하늘빛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는 어느 시인의 글을 읽으면,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머물던 내 모습이 포개진다. 숨 한번 쉴 때마다 드넓은 바다 위를 그림처럼 가르던 갈매기가,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든 설악산 단풍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