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고정희

by 윤이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고정희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 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연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이 글을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수>에서 빌려왔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십 원짜리 동전을 모아둔 지갑을 발견했다. 요즘은 현금을 들고 다닐 일도 잘 없지만 그중에서도 십 원짜리 동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에 있는 게 어색해져 버린 돼지저금통 안에서, 수평을 맞추는 용도로 가구 아래서, 냄새 잡는 용도로 냉장고에서 자주 봤었는데. 이제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현금 없는 대중교통, 현금 없는 업소들이 많아지면서 지갑도 카드도 필요 없이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만사가 해결된다. 덕분에 외출은 간편해졌지만 벼르다 산 즉석복권을 긁을 때, 간절한 소망을 담아 거북이 동상 위로 무언가를 던져야 할 때만큼은 동전이 절실해진다.


강릉 <명경지수>라는 카페에서 책상에 놓여있던 황동 볼펜을 만지면 어김없이 손에서 동전 냄새가 났다. 차갑고 묵직한 황동 볼펜의 필기감도 신기했는데, 펜으로 열심히 공유 일기장을 작성하고 나니 손에서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어린 시절 동전 쌓기 놀이를 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돈 만지고 나서는 꼭 손을 씻어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볼펜을 잡았던 손도 오이향기 나는 비누로 박박 씻어야만 할 것 같아 혼자서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면 늘 곁에 있을 것 같은데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다.


십 원짜리 동전처럼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쓸모가 다해 저문 것들을 떠올려본다. 삐삐, 워크맨, 비디오, mp3와 아이팟, 전자수첩. 학창 시절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온갖 신문물들이 생각났다. 그때의 우리는 삐삐로 암호 같은 번호를 남기며 좋아했고, 길거리에서 파는 최신 가요 테이프와 워크맨만 있으면 수련회 가는 내내 행복했었다. 아파트 상가마다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에는 누군가 빌려간 비디오를 뒤집어서 진열해 놓는 것으로 표시해 두기도 했었다. 대학생 때는 mp3에 넣을 음원 다운로드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어학 공부 동반자로는 샤프 전자수첩이 필수여서 행여 흠집이라도 날까 봐 신줏단지 모시듯 아껴가며 사용했다.


글을 쓰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았다.

분필가루 날리는 분필도 지금은 학교에서 쓰지 않는다고 하니 쉬는 시간이면 칠판을 지우던 당번도 사라졌을게다.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다며 반마다 급여된 우유를 가져오는 '우유당번'도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반 마다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했고 도시락도 필수였다.


그리고 자려고 누우면 "찹쌀떡~ 메밀묵~을 외치던 소리"가 들렸다. 어린 나는 그때가 IMF인지 몰랐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잊고 지내던 이 구성진 소리는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은명이의 일화를 통해 다시금 떠올랐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폐교되는 학교들이 많다고 하는데,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학교 운동장 크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예전에는 철봉, 구름사다리, 정글짐, 농구 골대, 축구 골대 등 기본적인 운동 기구들은 있었지만 요즘 지나다니며 학교 안을 보면 뭔가 많이 비고 허전한 느낌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놀이터에서는 '흙'이 사라진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먼지가 나지 않는 우레탄 고무, 넘어져도 다칠 일 없는 부드럽고 푹신한 화학소재로 전부 바뀌어서 우리가 놀던 진짜 놀이터 (흙 놀이터)는 보기 힘들어졌다.


특유의 감성이 살아있는 엘피판들, 티비만큼 크게 거실을 차지하고 있던 전축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축음기도... 한 시대를 풍미하며 반짝이던 것들도 세월 앞에서는 모두 옛것이 되었다. 추억이라는 말로 남아있다가 결국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지금 '최첨단'이라며 사용하고 있는 많은 것들도 백 년 후면 모두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십 원짜리 동전에서 시작한 향수는 사라져 가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때 애정했던 물건들 풍경들을 지나,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언젠가 모두 사라진다는 사실에 다다랐을 때 애틋한 마음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태어나는 모든 것들을 사라지기 위한 시간을 지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생의 한가운데서 선명하게 남는 자국들을 아로새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머니의 부재를 통해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 노래한 고정희 시인의 글처럼,

무수히 많은 것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더라도 그들과 함께한 추억은 여백처럼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