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보다 자주 갔던 명소들
강릉 그리고 주문진읍에는 산 좋고, 물 좋고, 공기도 좋은 걷기 좋은 길들이 많다. 현지인이 엄선한 마트보다 자주 갔던 읍(邑) 사람의 놀이터들을 소개한다.
1. 지경공원 ~ 소돌해변
지경공원에서 시작해 향호해변, 주문진 해변, 소돌해변에 다다르는 길은 편도 약 2km, 왕복 4km에 이르는 구간으로 성인 걸음 기준 50분 정도 소요되는 구간이다. 운동삼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7~8 천보, 바다를 감상하며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지경 공원은 특히 강릉릉 북쪽 주문진읍과 남 양양 지경면이 맞닿아 있는 곳으로 강릉과 양양을 한 걸음에 넘어 다닐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이곳은 읍 사람이 된 후 운동코스로 가장 자주 다닌 길이다. 지경공원부터 향호해안 초입까지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 곳이라서 매연 없이 상쾌하게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에는 가볍게 러닝을 하고 돌아왔는데, 척박한 모래사장에서 피어난 해당화의 향기 덕분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바다와 송림,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한낮의 땡볕이 조금 야속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기 때문에 운동하며 흘린 땀도 금세 식혀주었다.
2. 주문진 등대
세상에는 등대가 너무 많기 때문에 지나가다 보이는 등대에 전부 올라가 보지는 않는다. 그냥
'어, 저기 등대가 있네.'
하고 지나칠 뿐이었다. 주문진은 워낙 작은 동네라 집 근처에 도보로 갈 수 있는 관광지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추천할만한 곳을 꼽으라면 '주문진 등대'를 말하고 싶다.
주문진 등대는 강원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등대이다. 한국전쟁 때 큰 피해를 입었다가 1951년 복구되었고, 동해안 지역에서 맨 처음으로 무선표지국을 운영한 등대로도 알려져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등대에 오르면 기대 이상의 광경이 펼쳐진다. 높은 언덕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의 물빛은 너무도 투명해 바다의 속살까지 알알이 보여준다. 날씨가 좋은 날 올라가면 감동은 배가된다. 바다 위로 우뚝 솟은 바위들과 기암괴석들이 운치를 더하고, 미세 먼지가 없는 날에는 경포 너머의 멀리까지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3. 강원도립대 솔밭길
진정한 현지인 스팟은 여기가 아닐까 싶다.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곳. 여름철 강릉 온 동네에 피서객이 몰릴 때에도 한산할 바로 그곳. 바로 '강원도립대 솔밭길'이다. 주문진에 위치한 강원도립대학교는 후문으로 나가면 '도깨비 방파제'가 있는 영진해변이 펼쳐져있고, 학교 건물과 뒤쪽으로 넓은 솔밭길이 자리해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솔밭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남편 덕분이었다. 주문진으로 이사 왔지만 기존에 알던 곳은 모두 강릉 시내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에 매번 멀리 나가는 게 번거로웠다. 주문진 집 근처에서 편하게 걸을만한 곳을 찾던 내게 신랑이 점심시간마다 운동하는 곳이라며 알려준 곳이었다.
이곳에는 맨발로 걷는 분들이 특히 많은데, 소나무 숲 사이의 산책로가 아주 고운 흙으로 깔려있어 직접 걸어보니 부드러운 감촉이 매우 흡족했다. 세족시설이 없어도 발에 묻어나는 게 별로 없어 걱정할 필요도 없거니와 솔숲이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줘 언제 걸어도 쾌적하다. 학교 안쪽에 위치해 있어 매연 냄새가 날아들지 않고 주차도 편했다.
오늘 산책길에는 부지런히 집을 짓는 오색딱따구리를 보았다. 속초 설악누리길에서도 본 적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 오랫동안 관찰한 적은 처음이었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야생 동물과 꽃, 나무와 교감할 수 있어 근사한 곳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4.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다음은 읍(邑) 사람의 시내 놀이터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번갈아가며 꼭 들르는 곳으로 이제 본격적인 피서철이 다가오고 있어 그전에 더 부지런히 방문해 볼 생각이다. 이곳에 소개한 곳 모두 입장료는 없으며 주차비도 무료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일전의 '경포호를 즐기는 열 가지 방법'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곳이다. 아주 오래전 강릉 여행을 처음 왔을 때 방문한 이후로 한눈에 반해 자주 찾고 있다. 강릉이 낳은 천재 문장가 허균과 허난설헌의 기념관, 생가터 등을 둘러볼 수 있고 울창하게 펼쳐진 송림이 경포호까지 이어져있어 강릉 관광을 시작하는 곳으로도 손색이 없다.
근처에는 초당두부마을과 맛집, 카페들이 밀집한 거리가 있고 차로 오분만 이동하면 바로 바다를 만날 수도 있다. 특히 이곳은 겹벗꽃이 만발하는 봄과 노란 은행잎이 물드는 가을에 특히 아름다워서 봄, 가을에 강릉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꼭 들려볼 것을 추천한다.
지난 5월 첫째 주에 허난설헌을 기리는 '난설헌 문제'가 6일간 열리기도 했다. 잠시만 머물러도 '솔향 강릉'이라는 표어가 이해되는 곳. 불어오는 바람결에 허난설헌의 시(詩) 한 자락이 실려올 것 같은 곳. 읍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다.
5. 송정해변
송정해변 역시 많은 강릉의 해변이 그렇듯 한쪽은 바다고 다른 한쪽은 송림이다. 바다와 솔숲 사이에서 걸을 수 있는 길로 안목해변과 경포해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안목과 경포가 워낙 이름난 해수욕장이라 송정해변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송림의 울창함이나 주차장, 세족장 등의 편의시설이 훌륭해 이왕이면 내려서 걸어보시기를 권한다.
이곳은 '강릉 바우길 5구간'에 속해있으며 16km 정도의 바다호숫길 따라 걸을 수 있다.
어쩌다 보니 바다보다 솔밭 사진이 더 많은 것 같지만 도립대 솔밭길 바로 지척에도, 송정해변 소나무 숲 앞에도 언제나 바다는 창창하게 펼쳐져 있으니 솔숲 걷기가 지루할 즈음이면 언제든 파도 곁으로 가도 좋다.
6. 안목항 뚝방길 (솔바람 다리)
마지막 읍 사람의 놀이터는 안목항 뚝방길이다. 정식 명칭은 따로 없어 '솔바람 다리' 인근 뚝방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강릉 공항대교 아래로 남대천이 흘러 바다와 만나는 구간이 있다. 그 길을 따라 뚝방길이 펼쳐져 있는데, 길 끝에 있는 솔바람 다리를 사이로 오른쪽으로 건너면 남항진 해변, 왼쪽은 안목해변과 조우한다.
안목해변 주차장은 붐비는 편이어서 나는 뚝방길 중간에 주차가 가능한 갓길에 차를 대고 천천히 안목항으로 걸어내려가곤 했다.
파도가 예쁜 날에는 솔바람 다리를 건너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이 구간은 바다 위로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하늘 자전거'와 '짚라인'이 운영 중이어서 허공을 가르는 듯한 짜릿한 기분을 간접체험 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해 볼 생각도 있지만 아직은 섣불리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아 매번 나중을 기약하며 돌아왔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놀이터 흙바닥이 앉아 두꺼비집을 지었다.
반들반들한 바닥에서는 공기놀이가 한창이었다. 나는 그네 타는 일이 제일 좋았고, 철봉에 매달려 한 바퀴를 돌면 주머니 속 열쇠와 동전들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이 재밌어 깔깔거리며 웃곤 했다.
요즘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다들 배움에 힘쓰느라 미처 놀이터에는 올 시간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도 흙이 깔린 놀이터는 위생, 안전 등의 문제로 우레탄 고무바닥으로 바뀌고 있으니 많은 아이들이 자연의 감촉을 어디서 느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여행 왔을 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산과 바다가 좋은 곳을 찾아왔을 때 자연 그대로의 흙냄새, 소나무 숲의 향기, 맨발로 걷는 바다의 촉감 등을 한가득 느끼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도 반려 동물들도 모두 말이다.
꼭 강릉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 공원이나 물가가 있다면 잠시 들러 크게 숨 한번 쉬어보고, 무작정 걸어보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을 비우고 리프레쉬하는 데에는 걷는 게 제일인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