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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사람의 먹거리

주문진에서 즐기는 맛기행

by 윤슬log


서울에서 쭉 나고 자란 나에게 '강원도 대표 음식'이라 함은 감자, 옥수수 같은 구황작물과 춘천의 닭갈비 정도였다. 속초 수산시장에 가면 파는 각종 젓갈과 닭강정, 인제의 황태, 강릉의 순두부가 유명하다는 것은 그나마도 속초에서 지내는 사 년 동안 보고 듣고 맛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주문진으로 이사와 새로운 음식들을 접하면서 다시금 미식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 있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 음식이 될 수도 있는 메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꾹저구탕



이름도 낯선 '꾹저구탕'은 새가 꾹 집어먹는 고기로 끓였다 하여 꾹저구탕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수제로 만든 고추장과 버섯, 깻잎, 대파 등의 채소를 넣고 매콤하게 끓여낸 것이 특징이다. 매운탕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맛이 깔끔하고 감칠맛도 풍부하다.


꾹저구탕의 유래는 조선 중기 송강 정철 시대로 올라간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할 당시 어느 현에 들러 식사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날따라 바다에 바람이 몹시 불어 배가 나가지 못하였고, 민물고기로 만든 탕을 끓여드렸는데 그 맛에 반한 정철이

"이게 대체 무슨 고기탕이냐?" 하고 묻자,

"저 저구새가 꾹 집어먹는 고기로 끓였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때 송강 정철선생께서

"그럼 앞으로는 <꾹저구탕>이라 부르면 되겠구나."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한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꾹저구탕은 강원도의 향토음식으로 '뚜거리탕'이라고도 하며, 추어탕보다 담백한 맛이 있다. 강바닥에 붙어사는 민물고기인 꾹저구는 보통 그물로 잡는데, 강릉의 남대천·유천저수지, 동해의 전천강 등에서 많이 잡히는 고기라고 한다.


예전에는 꾹저구탕이 유명하여 가정의 장맛과 함께 주부의 음식솜씨를 알아보는 척도라 하니 이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음식인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관련 음식점이 많지는 않았다.

연곡면에 유명한 꾹저구탕 집이 있어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부터 종종 강릉에 놀러 왔을 때마다 들렀었다. 추어탕도 어려웠던 나에게 큰 도전이었지만 물고기가 통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어서 매운탕 먹듯 부담 없이 잘 먹곤 했다.


특히 흰쌀밥에 감자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감자밥이 별미 중에 별미이다. 꾹저구탕은 숙취해소와 피부 미용에도 좋은 음식이라고 하니 비가 오거나 추운 날 강릉에서 먹을만한 음식을 찾으신다면 한번 드셔보셔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잘 끓인 매운탕처럼 맛이 일품이었다.


2. 가자미회 막국수



주문진에 있는 대동면옥은 가자미회 막국수와 가자미회 냉면, 수육, 메밀 왕만두 등을 파는 음식점이다. 나름 '주문진 맛집'으로 검색하면 최상위에 랭크되는 곳으로 건물 한 층을 다 쓰는 넓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여름에는 대기가 길다. 집 가까운 곳이라 나는 이사 오고 처음 이곳에서 외식을 하게 되었는데, 속초에서 맛본 '명태회'와는 또 다른 식감의 '가자미회'의 매력에 한번 놀라고 푸짐한 양이 또 한 번 놀랐다.


가자미회가 올라간 메뉴를 막국수와 냉면 중 택할 수 있어 그날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다. 윤기가 싹 도는 시뻘건 가자미회에 오이, 배, 무김치, 편육, 김, 참깨 등 각종 고명을 얹어 국수가 나오고 육수는 따로 주전자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기호에 맞게 넣어 먹으면 된다. 달콤 짭조름한 육수는 메밀국수의 그것과는 비슷한 듯 조금 다른데 조금 더 깊고 풍부함이 느껴진다.


어디서 '냉면을 먹기 전에 위를 보호하기 위해 계란을 먼저 먹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근거가 있는 속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진 고명 가장 꼭대기에 예쁘게 앉아있는 반쪽짜리 달걀을 얼른 입 속으로 뽕강했다. 나는 물막국수를 선호하는 편이라 가위를 집어 면을 반으로 자른 뒤 겹겹이 쌓인 고명들을 조금 풀어헤친 뒤 육수를 붓는다. 비빔막국수를 좋아한다면 조금만 넣으면 된다. 나는 다진 양념을 조금 덜어내고 육수는 많이 부었다.


김과 깨소금이 잘 버무려져서 조금 더 고소하게 먹을 수 있도록 잘 휘저어준다. 먼저 국물을 한 숟갈 호로록 맛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국물 한 입에 없던 입맛도 싹돌게 만드는 마성의 음식이다.

무김치에 가자미회 한 점씩 올려 면과 함께 입에 넣으면 끝도 없이 술술 잘도 들어간다. 더위는 이미 날아간 지 오래다. 명태회는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강한데 가자미회는 좀 더 부드럽고 단맛보다 새콤달콤 여러 가지 맛이 나는 것 같다.


가자미식해는 본래 함경도 지방 고유의 저장음식으로, 가자미를 소금에 절였다가, 좁쌀, 고춧가루,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을 섞어 발효시켜 만든 음식으로 일종의 ‘젓갈’이다.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즐겨 먹는 먹으며 반찬으로도 나오지만 냉면이나 막국수에 고명으로 올리는 경우도 많다.


강원도 하면 유명한 또 다른 특산품 '메밀'로 만든 왕만두도 아주 맛이 좋으니 맵싸래한 회 막국수, 회 냉면과 함께 즐기시면 궁합이 잘 맞을 것이다.



3. 순두부 젤라또
이 날의 픽은 '흑임자' 맛


주문진에 위치한 '순두부 젤라또'는 무려 3호 점이다. 1호점과 2호점은 강릉 시내에 있다. 강릉 하면 순두부가 유명한데, '초당 두부'라는 로컬 푸드가 유명해지면서 순두부와 관련된 음식이 젤라또로도 만들어졌다. 초당 두부마을에서 식사를 한 후 먹을만한 강릉 로컬 디저트를 개발한 것이다.

이곳 사장님은 직접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유학하며 전통방식의 젤라또 제조레시피를 배웠다고 한다.


특히 주문진점은 '도깨비 방파제' 바로 앞에 있어 전면 통창으로 보이는 바다 뷰를 벗 삼아 아이스크림을 맛보기에 좋다. 순두부 맛을 기본으로 흑임자, 커피, 피스타치오, 자색고구마, 인절미, 누텔라, 녹차, 제주 감귤 등 다양한 맛이 존재하니 좋아하는 맛으로 선택하면 된다. 나는 순두부와 흑임자, 피스타치오를 번갈아가며 먹는 편이다.


아이스크림이 너무 달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강릉 순두부 젤라또 한번 먹어보시면 어떨까 싶다. 순두부와 젤라또의 조합은 묘하게 어울리는 맛이기 때문이다.




올 한 해 강릉시 주문진읍에서 살며 먹거리, 즐길거리, 볼거리 등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 여기서 생활한 날보다 남은 날들이 더 많아 여러 가지로 기대되는 부분들이 많다. 강릉 시내로 나가면 넷플릭스의 유명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있고, 평일에도 대기가 필수인 맛집들도 있다.


오늘은 특별히 주문진 혹은 이 근처에서 맛볼 수 있는 강원도의 로컬 음식들 위주 소개해 보았다.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가자미회 막국수와 순두부 젤라또로 더위를 날리고, 추운 날에는 꾹저구탕으로 몸도 마음도 뜨끈하게 데운다.

소박해도 정겨운 강원도 밥상, 단출해도 맛있는 강원도 밥상으로 좋은 날 좋은 사람과 밥 한 끼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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