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바다 숨비소리
매주 월요일 아침 명상 클래스에 나가고 있다. 이전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였지만 전문적으로 명상만을 가르쳐주는 곳은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강릉 시내에 명상 전문 수업이 생긴 것이다.
남편과 함께 아침마다 해오던 '긍정 확언'에 대해 스멀스멀 회의감이 피어오르고 있을 즈음이었다. 상황은 그대로, 스트레스 유발 요인도 똑같은데, 입으로만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건강합니다."를 외치는 게 이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방향이 맞는지 점검해보고 싶었고, 보다 체계적으로 마음 챙김 수업을 들어보고 싶어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명주동 유서 깊은 골목길에 자리한 명상 센터는 개원한지 얼마 안 된 곳이었다. 내가 신청한 수업은 '오늘 명상'으로 70분 동안 간단한 스트레칭, 좌선 호흡명상, 특별 명상, 자애명상 등으로 진행됐다.
첫 수업은 나와 다른 여성분, 선생님 총 셋이서 명상을 시작했다.
먼저 명상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았다.
처음 대답한 여성분은 "생각을 비우는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잡념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사실 그녀가 대답했을 때 내가 떠올리고 있었던 답이 그것이었다. 생각을 비우는 것.
선생님은 모두 맞는 말이지만 보다 정확히 명상은 "알아차림.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간단한 이론 설명 후에 본격적으로 명상을 해보았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었다. '5분 명상'이 시작된 것이다. 몸에 힘을 뺀 편안한 자세를 취해야 하지만 허리는 반듯하게 세우는 것이 좋다.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인데, 숨이 들어가고 나감이 몸 안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므로 엉덩이를 땅에 뿌리내린다는 생각으로 좌우로 흔들어 가볍게 디디고, 척추는 곧추 세운다. 과하게 허리를 꺾거나 가슴을 내밀 필요는 없지만 적당한 선에서 바른 자세는 필수다.
들숨과 날숨을 통해 내 호흡에 집중하면서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 지도자인 보리 선생님은
"내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멀리, 좋은 곳에 일부러 가지 않아도 내가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고 안내해 주셨다.
5분이라는 시간 동안 생각이 떠오르면 알아차리고 다시 흘려보내고, 나의 호흡에 집중하다가 또 다른 생각이 불쑥 나타나면 알아차린 후 다시 흘려보내고, 숨소리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해 보았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긍정 확언'의 효과도 분명히 있었지만 이 세상 온갖 좋은 말들을 외치는 순간에도 쿵쾅거리는 아래 윗집의 소음으로 모든 일을 정신력 하나로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는 진리를 배웠다. 참고 견디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숱하게 암과 싸우며 '존버는 승리한다' 정신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섰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 뽑지 않고서는 과연 이게 될 일인가 싶었다. 소위말하는 '현타'가 온 것이다.
평화롭게 시작한 5분 명상의 시간 동안 나를 명상의 세계로 이끈 윗집 아이 아빠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데시벨 체크해서 법적으로 하라"는 그 말.
아이가 뛸 때마다 소리와 울림도 힘들었지만 그 남자가 취한 태도와 날이 선 말들이 맴돌아 화가 되었다. 내 삶을 갉아먹는 불필요한 감정들이었다.
그래서 하다 하다 명상을 시작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5분 명상 후에 명상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말하는 시간에 나는 간략히 내가 했던 생각들, 왜 명상센터에 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명상을 배우고자 한 건 몇 년 전부터였지만 그건 순전히 정신건강을 위해서였지, 특정 사건이 트리거가 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말을 들은 선생님이 첨언을 했다.
"정말 힘드시겠어요. 그럴 때는 화가 나고 힘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해요. 일부러 더 극복하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애쓰면서 노력하는 것보다 지금 '아 지금 내가 이 소리 때문에 힘들구나. 그래 충분히 힘들만 해.' 하고 객관적으로 알아차리는 거예요."
나는 층간 소음을 극복하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어떻게든 약의 도움 없이 자보려고 하루에 만보씩 걸으며 몸을 힘들게 했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솟구칠 때마다 빨리 털어내려 책을 읽고 미친 듯이 글쓰기에 몰두하거나 기계처럼 긍정확언을 했다. 그러다 보니 금방 에너지가 소진됐다.
그에 반해 명상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의 마음을 온전히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하고 잡념이 드는 것은 모두가 거치는 과정이다. 다만 그 생각이나 감정을 지나치게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긍정 확언'은 충분히 유익한 활동이었지만,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의 선순환을 위해 무조건 좋게 승화시킬 필요는 없었다.
늘 생각과 감정과 인연에 몰입하며 모든 것들을 진심을 다해 붙잡고 있었던 스스로가 가엽게 느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어떤 부분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결국 다 지나간다. 영원할 것 같은 감정도, 사람도, 시간조차도 흐르는 강물처럼 흘려보내는 게 자연스러운 삶이었다.
나와 함께 수업을 들었던 젊은 여성분은 '끌어당김의 법칙'에 매료되어 혼자 명상을 하다가 센터를 찾게 됐다고 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에너지가 반드시 본인에게 찾아온다는 것으로 '긍정 확언'과도 결이 비슷하다. 여성분은 누군가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며 그 사람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가 가기 때문에 마음이 더 괴롭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했다.
선생님은 깊이 공감해 주셨다. 하지만 나의 상황이 이렇고, 상대방 또한 이해 갈 때 자칫하면 자책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항상 나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래야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늘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책이 시작되었다.
'내가 예민해서 그래. 남들은 다 참는데 내가 참을성이 없나 봐. 나만 참으면 다 해결되는데. 이 정도도 못 견디면...'
그러니 더 괴로웠다. 가끔은 내가 아주 못돼 먹은 이기주이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의 입장,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고 그 마음이 커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책도 하게 된다는 거였다.
이렇게 몇 주간 명상을 해보니 아직 숙달된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걱정이 불쑥 올라왔다. 나는 선생님께 물었다.
"명상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고, 호흡에 귀 기울이는 것인데 이게 관성화되면 혹시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면 어떡하죠? 나만 알게 되면요?"
"좋은 질문이에요. 알아차리기의 관점에서 보면 명상은 내 마음이 우선시 되는 게 맞아요. 우리는 지금까지 항상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배웠잖아요. 그래서 나만 아는 것이 몹시 이기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명상에서는 내가 먼저 단단해져야 남에게 에너지를 주고 도울 수 있다고 해요. 내가 먼저 내 마음이 먼저라는 것을 배우는 거지요."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백날 천날 명상을 해서 나에게만 집중한다 해도 절대 이기심으로 세상을 살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핸들을 잡은 손을 벌벌 떠면서 도로 주행을 할 때도
"선생님, 제가 이렇게 가면 뒤에 차는 어떡해요? 뒤 차는 어떻게 가요?"
라고 묻던 나였다.
"아니, 지금 본인도 못 가면서 왜 뒤 차 걱정을 하세요. 본인이나 잘 가세요."
강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늘 남 걱정에 정성을 쏟는 나에게 명상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어제 수업에서는 '10분 명상'과 '음식 명상'을 해보았다. 10분은 명상 초보인 나에게 다소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나 자신에게 다정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처음처럼 누군가를 향한 분노나 원망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온전히 나의 숨소리에만 집중했고 때때로 어떤 생각들이 올라오면 가만히 바라보다가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했다.
생각해 보니 살면서 이렇게 나를 위해 오롯이 5분, 10분을 내 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애정을 갖고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항상 남에게만 관대하고 나 자신에게는 엄격했던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마무리로 '자애명상'을 해보았다.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건강하기를
내가 편안하기를
내가 안전하기를"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들을 선생님의 싱잉볼 연주에 맞추어 나지막이 읊조렸다. 싱잉볼의 울림이 천천히 퍼져나가 방안을 메웠다. 파동이 원형으로 퍼져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좋았다. 봄 날씨에 시냇물이 다시 흐르듯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나에게 감사,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 나를 모르는 세상의 다른 이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하는 것으로 명상 수업은 끝이 났다.
나는 스스로 회복탄력성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살아온 날들이 많아서인지,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빨리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부단히 생각의 회로를 바꾸거나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들이었다.
반면에 명상은 여태껏 내가 진리라고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못한 채 남들이 좋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주는 정보들에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다양한 자료를 찾고 시도하며 도움이 된 것도 많았지만 나의 약한 체력과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일들도 있었다.
명상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준비물도 없고 씻고 집 밖을 나가야 하는 작은 수고로움 조차 없었다. 내가 존재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언제든 틈새 명상이 가능했다.
고요하게 내 안에 머물며 나의 숨소리에 집중해 보는 것. 일어나는 감정들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 그리고 흘려보내는 것.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복하며 연습하다 보면 전보다 훨씬 불필요한 감정과 생각들에 덜 휘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명상을 시작하며 정목 스님의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함께 나누고 싶은 구절로 글을 마무리한다.
"진정한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출렁거리는 파도 위에서도 내면의 고요함을 알아차릴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폭풍이 일어나건 두려움이나 걱정, 혼란이 일어나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진정한 고요함이지요.
다가왔던 폭풍이 지나갔다 해도 다시 찾아올 수 있으니 폭풍이 가고 옴에 저항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