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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무와 송이버섯

2025. 10. 16 (목)

by 윤슬log

모처럼 회식을 간 남편에게 사진이 왔다. 비닐봉지에 담긴 귀여운 송이버섯 한 개.

과장님이 선산에서 직접 캔 송이버섯을 가져오셨는데, 부인 갖다 주라며 주셨다는 거다. 그걸 들은 옆 팀 상사분이 "그럼 더 큰 거 가져가" 하고 또 하나를 턱 얹어주시고, 남편이 자기 접시 앞에 담긴 버섯 한 줌도 덤으로 집어왔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송이를 꺼내놓는 남편. 오늘은 마침 회사 일로 좋은 소식이 있어서 기분 좋게 한 잔 한 눈치다.

위장이 약해 술도 많이 못 마시지만 어쩌다 거나하게 마실 때면 늘 숙취와 소화불량, 두통에 시달리며 잠 못 이루는 남편이기에 과음은 안된다고 늘 이야기하지만...

오늘은 내가 본 송이버섯 중에 제일 실한 두 녀석과 무무의 (남편의 애칭) 사랑이 가득 담긴 마지막 한 주먹도 있으니 봐준다.




덕분에 아침상이 풍성해졌다. 어디선가 '버섯은 생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송이는 되는 것도 같도) 칼등으로 흙만 툭툭 털고, 결결이 찢어 프라이팬에 짧게 덖어주었다. 참기름장 만들어서 먹으니 은은한 송이 향이 입안 가득 퍼져나가는 것이 예술이었다. 이렇게 먹어도 맛있지만 '라면'에 넣어서 먹는 '송이 라면'이 진짜 최곤데... 오늘도 입맛만 다셔본다.


무무는 오후에 예비군 교육이 있어서 못다한 잠을 다시 청하고, 나는 설거지 후에 모자와 우비를 챙겨 입고 바다로 나왔다.


오늘은 <안녕하세요. 이문세입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신나게 50분 어씽! 부지런히 움직이고 발가락을 옆으로 최대한 쫘~악 벌려서 모래와 파도가 주는 촉촉한 까슬거림도 느껴본다. 어제 잠시 바위에 앉아 쉬면서 바다를 바라보니 또 다른 느낌으로 좋아서 오늘은 분주하게 걷는 것 말고도 잠깐씩 앉아서 명상도 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저 숨 고르기와 여기, 지금, 그리고 나를 온전히 느끼는 시간.


5월부터 강릉 시내의 <보리울림>이라는 명상원에서 배운 명상이 이제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막상 수업을 들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강의를 들으니까 그때 하면 되지. 하고 조금은 안일하게(?) 미뤄두곤 했는데, 요즘은 삶에 쉼표가 필요한 순간마다 자세를 바로 하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인내심이 없어 긴 시간은 못 하지만 짧게 30초, 1분이라도 하고 나면 마음이 훨씬 나아진다.


근래에 추천받아 읽은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해빗>,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그리고 '유전자'와 관련된 책 두 권. 모두 좋았다. 시집, 수필, 묵상집에 편중된 독서 습관으로 사회과학 쪽(?) 책들은 잘 접하지 않는데, 뭔가 막연한 자기 계발서보다는 수치와 논리를 근거로 주장을 확장시켜 가니 금방 납득이 갔다.


이 책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도 결국은 하나다.

'결국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것.'

우리 몸의 70% 이상은 '물'로 이루어져 있고, 물은 '파동'에 반응하므로 좋은 이야기, 좋은 생각, 선한 마음과 행동이 자신에게 반드시 이로운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9월 초에 빌려두고 병원 검진 가기 전까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던 책이었는데 (재미없어서가 아닌, 내 마음이 산란해서), 병원에서 애매한 검사 결과를 받아 들고 돌아오니 뭔가 절박함+절실함+앗뜨 앗뜨 하는 마음으로 각 잡고 책 읽고, 필사하고, 수시로 떠올리며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벼락치기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꾸준히 평생 하면 될 터이니 걱정은 미리 하지 않는다!


나는 20년 차 서바이버이기 때문에!

라고 큰 소리를 쳐본다.


무엇보다 내년 우리 부부의 거취가 정해지지 않아 (발령 관련) 고민이 더해지던 차에 기쁜 소식이 들려 일단 한시름 놓았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나씩 즐거운 일들이 전해진다면 좋겠다.




왜인지 브런치에는 정제되고 문학성 있는 글만 올려야 할 것 같은 혼자만의 압박감(?)에 그간 선뜻 글을 쓰지 못했다.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는 다이어리나 블로그 일기장에 적어야 할 것만 같아서.


이사를 하고 검진에서 잘 통과를 하면 본격적으로 출판사에 투고를 하려고 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리고 그 과정을 브런치에 남기려고 브런치북도 만들어두고 소제목과 사진들도 다 저장해 두었었는데... 비록 시작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일단은 난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아플 때도 쓰는 사람'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강릉일기>를 연재한다.


보름 넘게 비가 오는 강릉에서 밥 차리고 운동하며 살아가는 나에게도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별거 없는 하루지만, 재미없고 고요한 날들이지만 언젠가 저 두텁게 낀 구름 사이로 나올 햇살을 기다리고 있어 즐겁다.


누가 그랬다.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기다리는 날이 있어 감사하고, 기다릴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한 하루다.


무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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