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5 (금)
소소하게 적어보는 강릉 일기.
7월 초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하고 비로소 본격적인 나의 강릉살이가 시작되었다.
올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길었던 데다가 강릉은 최악의 가뭄까지 겹쳐 애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니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어처구니없는 웃음.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있다. 9월 검진에서 늑막에 고여있던 물이 조금 늘어 한 달 뒤 재검사를 하기로 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몸무게가 왜 자꾸만 늘지? 하는 의문이 드디어 풀렸다. 이 모든 것은... 살이 아니라 부종이었던 것!!!
대오각성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디스캔 명상과 감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건강식으로 끼니를 잘 챙겨 먹고, 낮에는 바다에서 맨발 걷기를 저녁에는 계단 오르기 시전! 운동 후 반신욕으로 땀 쫙 빼주면 몸이 가볍고 시원하다. 온열기는 종류별로 내 몸과 한 몸이 되게 가까이하고, 틈틈이 스트레칭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5일 만에 3킬로가 빠지더니 2주 만에 5킬로가 빠졌다. 그렇게 다이어트하려고 오만가지 노력 다 해도 안 빠지던 살이 (부종 포함) 자고 일어나면 쭉쭉 빠지고 있다. 피로감도 훨씬 덜하고 피부도 좋아졌다.
한 해를 시작하는 다이어리 첫 장에 항상 '다이어트 5kg 빼기'가 고정이었는데, 너무 쉽게 빠져서 목표를 잃어버린 느낌적인 느낌? 지방이 내리면 근육을 만들면 좋으니 내년부터는 다시 필라테스를 열심히 해봐야겠다.
환자도, 환자가 아닌 사람도 결국 체력과 근력이 있어야 버틸 수가 있다.
신기한 것은 모든 일에는 빌드업이 있는 건지 9월에 이재형 원장님께서 북토크에서 해주신 말씀, 추천해 주신 책들, 말기 암 진단을 받고 7년 넘게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는 환우님을 만났던 것이 앞으로의 치병 방향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숙이 님은
"4 기암을 진단받으셨지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 중에 가장 중요했던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에
"평정심"이라고 이야기하셨다.
사실 식단과 운동은 거의 정답이 있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한다는 것 역시 익히 알고 있지만 사실 제일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숙이 님 입에서 나온 '평정심'이라는 단어에 나는 자못 숙연해졌다. 평정심을 말하는 그분의 얼굴이 너무 평온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평정심은 '습관'인 것 같았다. 모든 정보와 지식들을 섭렵해 본인에게 맞는 치병 루틴을 만들고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정신. 사소한 것도, 티끌만큼도 타협하지 않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 무엇보다 그것들을 힘들이지 않고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습관들로 '습관화'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검진 결과가 어떻든 동요하지 않게 된다. (확실히)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내 몸의 회복성을 지지해 주는 것. 요즘 전적으로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편하다. 특히 마음이 아주 좋다.
매일 똑같은 운동만 하니까 지루해서 등산을 가고 싶었다. 지난달까지 강릉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가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2주 가까이 비가 내리고 있어 등산화를 사놓고 한 번도 산에 가지를 못했다. 모처럼 아침에 하늘이 좀 개이길래 등산 스틱까지 준비하고 야심 차게 길을 나섰건만, 양양 넘어가는 길목에서 돌아왔다. 바다 쪽만 살짝 맑고 산이 있는 내륙 쪽은 맑아질 기미가 없었다.
갖춰 입고 나온 게 아까워서 솔올성당 10시 미사. 마침 내가 좋아하는 예수의 데레사 (대 데레사) 축일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보고, 운동량에 비해 탄수화물을 너무 제한하는 것 같아 설렁탕집에 들러 파 듬뿍듬뿍 넣고 밥 1/3, 고기랑 국물 위주로 식사를 했다. 집에 가는데 초콜릿 생각이 나길래 유기농 다크초콜릿 있으면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가 전성분 보고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없겠구나 싶어서 그냥 나왔다.
전에는 '통곡물을 괜찮다고 했어.' 라며 밀가루 대신 통밀 100%, 호밀 100% 빵을 먹었고, 우유가 안 좋다는 말에 유기농 목초유를 사서 그릭 요거트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초콜릿이 유일한 낙이라 유기농 다크초콜릿 87%~99% 거의 타이어 맛(?)에 가까운 초콜릿을 먹으며 시름을 달래곤 했었고, '가끔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연하게 뽑은 아메리카노를 종종 먹었었다.
하. 지. 만
이제 그런 타협 따윈 없다!!!
진단 후 최소 2년~5년 동안은 고기도 단 과일도 안 드셨다는 숙이 님께
"그럼 오트 밀크도 안 드세요? 현미칩도 안 돼요? 자연 치즈도요?"
계속 타협 시전하고 있는 나 자신 진짜 그만해라... ㅠㅠㅠㅠㅠ
물론 다 먹고도 건강하신 분들도 많고, 워낙 커피와 콩, 우유 등은 오래전부터 의견이 많았던 음식들이라 과하지 않은 선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국 정답은 없고 본인이 선택하면 된다.
나는 이번만큼은 나와 타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오늘 마트에 초콜릿을 사러 갔지만... 결국 사지 못하고 '코코아'도 한 번 집었다 놓고, 커피는 언감생심 상하목장에서 나온 '유기농 코코아우유'를 또 잠깐 집었다가 '아, 이것도 유제품이지...' 하면서 고이고이 내려놓으면서
'비 오는데 여기서 뭐 하냐. 빨리 집에나 가자.'
하며 집으로 왔다.
커피도 마시고 싶은데 한 모금 먹으면 입 터질 것 같아서 유기농 카카오 닙스랑 밤꿀을 주문했다. 카카오닙스차에 밤꿀 조금 넣어 마시며 '얼추 커피 맛이잖아?' 하며 정신 승리하고 있을 내 모습이 벌써 그려진다. 껄껄껄.
유혹의 밭에서 아무것도 안 산 나 자신을 칭찬하며 삼 일연속 우비 입고 바다 어씽. 12시 <이은지의 가요광장>이나 2시 <안영미의 FM데이트> 같이 텐션 제대로 올려주는 라디오 들으면서 맨발 걷기 하면 진짜 웃기고 시간도 잘 간다. 집 앞 해변에 세족장이 있는 줄 모르고 지경해변이나 하평해변에 발 씻는 물병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던 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여하튼 집 3분 컷이 바다인데 세족장도 (숨어) 있어 매일 어씽하고 잘 씻고 온다. 집 앞이 최고다. 감사한 일이다.
강릉은 참 걸을 곳도 많고 30분만 가면 트래킹 하기 좋은 소금강 계곡, 위로 올라가면 명산 of 명산 설악산이 있다. 한 때 '설악산 날다람쥐'였던 사람으로서 그때처럼 자주 흔들바위까지는 못 올라도 비선대까지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가을 단풍이 예뻐지면 설악산은 관광객들에게 양보해야 하지만 어떻게든 산엘 가보겠다.
이제 정말 강릉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들 이곳에서 아름다운 강원도의 자연을 누리고 보다 더, 훨~~~ 씬 더 많이 건강해져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