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9 (일)
오늘은 고성 <테일 플리마켓>이 있는 날이다. 백화점도 아웃렛도 없는 강원도에서 가끔 (아이) 쇼핑으로 기분낼 수 있는 곳은 로컬 업체들이 모여 장터를 열 때다. 청정한 자연환경이 자랑인 만큼 '숲 속 마켓'도 열리고, '비치 마켓'도 열린다. 가면 먹거리, 볼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에 종종 들르곤 하는데, 고성에 있는 '테일'이라는 카페에서 주최가 된 이번 <테일 플리마켓>에는 꽤 많은 업체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내가 팔로우하고 있거나 단골로 자주 들르는 가게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번 마켓을 위해 참여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모처럼 이십일만에 강릉에 해도 났겠다, 우리가 사랑한 속초-고성.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는 아름다운 그곳으로 출발했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말 이틀 중에 하루는 온전히 집에서 쉬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곤 하는데, 어제도 나가고 오늘도 외출을 하면 '백 프로가 아닌 나의 컨디션이 받쳐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가기 싫으면 그냥 쉬어야지 싶었는데, 나의 고민을 어찌어찌 알게 된 남편이 척산온천 휴양촌 '가족탕' 이용하면서 쉬었다 오자고 제안해서 바로 수락!
<김영애 할머니 순두부>로 날아가 진짜 먹고 싶었던 순두부랑 맛난 반찬들 싹싹 비우고, 카페도 생략하고 곧장 마켓이 열리는 오호캠핑장으로 달렸다. 물론 가는 길에 주유도 하고, 아야진부터 이어지는 바닷길로 드라이브도 하고 했지만 별로 지체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원한 '연필 선인장'이라는 식물은 이미 나가버렸다. 사실 <숙주나무>라는 속초의 식물샾도 마켓에 참여한다고 해서 가게 된 거였다. 우리 커플이 결혼 전 속초에서 연애할 때 자주 갔던 <수키>라는 카페 사장님이셨는데, 카페를 접고 이제 식물을 판매하신다. 이제 강릉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집에 있던 동양란도 분갈이하고는 계속 시들시들한 상태라 집에 새로운 식물을 좀 놔두고 싶었다. 속초를 기억하기도, 강릉을 추억하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
<쿄와>라는 카페에서 본 연필 선인장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백 장쯤 찍고, '저 식물을 꼭 사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딱 그 화분이 팔리다니!!! 아쉬웠지만 남편과 신중하게 두 가지 종류를 골라보았다. 궁금한 점은 질문도 해가며 한참 화분을 고르다가 사장님이
"근데... 처음 뵜는 분들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본 적..."
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반갑게 아는 체했다.
"저희 수키 하실 때 자주 갔었던 커플이에요. 지금은 결혼해서 강릉에 살아요. <숙주나무> 여셨다고 해서 한번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들르다가 오늘 플리마켓 참석하신다길래 같이 왔어요."
과묵한 남편도 거들었다.
"거기서 먹었던 토마토 바질에이드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다른 곳을 찾고 있는데 여전히 못 찾았네요. 진짜 수키가 최고였어요."
사장님도 우리도 서로 반가웠다. 연필 선인장 대신 '라임고스트'라는 선인장과 '필레아 페페'라는 공기정화 식물을 사 왔다. 감사하게도 '연필 선인장'은 우리 결혼 축하 선물로 주시고 싶다고 하셔서 나중에 속초 갈 일 있을 때 화원에 들르기로 했다.
아무런 연고 없이 찾아 간 속초지만 오며 가며 좋은 이웃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서 가슴이 몽글몽글했던 하루였다.
화분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엽서도 사고, 남편은 속초의 대경중고서점에서 판매하는 책 2권을 5천 원에 득템! 고양시 삼송동에서 온 강원도 국산콩 100프로 + 바닐라빈과 사탕수수를 넣어 만든 두유도 2개 구입 (온천 가서 먹을 예정), 홍게 타르트, 감자 타르트, 고성에서 잡은 문어로 만든 문어 샐러드 2팩, 제주 흑돼지 꼬치구이(?)... 여하튼 다양하게 먹고 장을 봤다. 모처럼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는데 플리 마켓이라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좋았다.
돌아 나오면서 둘 다
"와 본 플리마켓 중에 최고였다!"
극찬을 하면서 서낭바위 - 자작도 해변 - 영랑호까지 야무지게 들렸다 척산온천으로 갔다.
가족탕은 3시간에 5만 원으로 가족끼리만 이용할 수 있는 온천탕이 딸린 객실을 대여하는 곳이다. 속초 살 때도 늘 '척산온천' 앞을 지나만 가봤지 오래됐다는 인상에 들어가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로비에 걸린 사진을 보니 1970년부터 있던 곳이니만큼 시설이야 오래됐지만 (일본 이런데랑 비교하면 안 됨), 물만 좋다면 충분히 가 볼 가치가 있지.
항암치료를 여러 번 하면서 겨울이 되면 접촉성 피부염처럼 팔에 발진이 올라오곤 하는데, 까슬거리는 옷은 물론 니트와 카디건도 입기 힘드니 나름 고충이 있었다. 작년에 노보리베츠 온천물이 유난히 잘 맞았던 걸까. 작년 겨울은 비교적 수월하게 넘겨서 쬐끔의 기대감을 가지고 몸을 담갔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온천욕을 좋아해 (특히 노천 온천) 일본 온천 투어도 하고 싶고, 일 년에 한 번씩은 온천하러 일본 가는 것이 꿈인데 감사하게도 작년, 재작년, 그전에도 그럴 수 있었다. 다녀올 때마다 만족도가 높아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다. TMI로 삿포로에서 먹었던 '수프카레'와 '사쿠사쿠 브로콜리' 다시 먹고 싶다. ♡
척산온천은 꽤 괜찮았고 물도 부들부들 좋았다. 지내보고 좋으면 자주 와도 좋을 것 같다. 온천까지 마치고 나오니 6시. 아는 맛집들이 다 문을 닫아 중앙시장에서 홍게김밥, 명태회 미니김밥 포장해서 차에서 나눠 먹으며 강릉으로 돌아왔다. 온천하고 식사한 후에 컨디션이 조금 좋아져 집에 와서 온열기로 속까지 주열 해주고, 오늘은 계단 오르기나 추가적으로 반신욕은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생각해 보면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열린 플리마켓에도 행복은 존재했고, 천 원짜리 엽서를 사고 벤치에 앉아 그림처럼 펼쳐진 바다와 파도를 바라보는 데에도 행복이 있었다. 돈을 쓰지 않아도 비치마켓에 와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강아지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가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는데, '볼 수 있다는 것' '보인다'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감사하다.
모처럼 해가 떠서 파란 바다와 하늘을 만끽하며 오래 외출한 날. 공기 좋다고 찬 바람 많이 쐐서 중간에 갑자기 컨디션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로 행복했던 하루였다.
가끔 남편에게
"여보, 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하고 묻곤 하는데, 남편도 나도
"오늘은 정말 다 좋았어."
라고 답했다. 음식도, 사람도, 풍경도, 날씨도, 쇼핑까지도... 완벽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