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만세 만만세
<강릉 일기>에서 "속초 만세 만만세!"를 외치는 패기란.
속초는 나에게 쉴 만한 물가였다. 비로소 쉴 수 있는 곳. 모든 걸 다 잃고 내려왔을 때 나를 품어주고 살려준 곳. 지금의 신랑을 만나게 해 준 곳. 남편도 나도 '속초'를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 하는 '고향사랑 기부금'도 속초에 한 적이 있다. 서울, 세종, 춘천... 어디에 있어도 우리가 편하고 좋은 곳에 쉬러 간다 하면 아마도 속초일 것이다. 아, 이 문구를 적으면서 문득 제주가 스쳤다. 제주도 정말 좋지.
어제는 강릉에서 맞는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오래전 속초에서 살 때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인연들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속초로 향했다. 남편과 홍게살 김밥을 먹고 무무는 시립도서관에서 인수인계서 작성하기로 하고, 나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옛날 루르흐 카페에 새로 들어온 가게로 '토스티 데이즈'였다. J님과 또 다른 J님은 이름도 성도 같아서 신기했는데, 오늘은 그녀들을 '더블제이'라고 칭하겠다. 언제나 따뜻하고 상냥하고 하이텐션의 그녀들과 함께 카페를 두 군데나 옮겨 다니며 폭풍 수다를 떨었다.
잔잔하고 평온한 나의 일상은 호수의 표면 같아, 가끔 이런 자리에 가서 밀린 근황을 왕창 업데이트하고 왁자지껄 떠들다 오면 '아 나 원래 이런 애였지.' 싶기도 하다. 푼수처럼 혼자 너무 떠들다 왔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래 만난 분들이라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돌아왔다. 우리는 속초의 한 북카페에서 독서모임 반년, 글쓰기 모임을 반년 진행했는데 H님이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진행자로 중심을 잘 잡아주셨고, 마지막에 합류한 유일한 청일점 S님과 해박한 지식과 유머 +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주셨다. 지금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멋진 삶을 개척하고 계신다.
저녁은 남편이 언제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한 회와 매운탕을 먹었다. 속초 중앙시장 주차장은 주말에는 특히 붐비지만 우리만 아는 주차 공간에 착! 주차하고 이모네 횟집으로 출발. 제철 맞은 밀치 (숭어의 일종)와 우럭을 먹었다.
이 날 속초의 바람은 13m/s로 차가 달리면 옆으로 밀리고, 농경지의 비닐과 박스, 스티로폼이 도로 위를 뒹굴었다. 신호등은 떨어질 것처럼 흔들리고, 이렇게 바람 부는 날 외출했다가 '간판 맞았다'는 어느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라 자꾸 상상이 되었다. 횡단보도 건너다가 부는 바람에 간판을 맞고 기절했는데, 눈 떠보니 병원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속초, 강릉 영동지역의 소위 똥바람은 대단하다. 보통 경치 좋은 바닷길 국도를 이용해 천천히 다니는 우리지만 길이 좀 어둡고 도로 사정이 어쩔지 몰라 내려올 때는 고속도를 이용해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2019년에 4월에 있었던 속초-고성 산불 났던 날이 14m/s의 바람이었다. 영랑호가 호수인데 바람 때문에 파도처럼 물결이 일어 풍속을 체크해 보니 14 정도였다. 낙산해변을 걸으며 바람 때문에 앞으로 전진하지를 못하고 풍속을 확인해 보니 역시 14. 그러니 어제의 13m/s도 가히 굉장한 바람이라 할 수 있겠다.
잠시뿐이었지만 돌풍과 함께 진눈깨비도 흩날려 '우리의 두 번째 눈은 속초에서 보는 건가?' 싶기도 했다.
6개월 간 할 말을 오늘 하루 동안에 다 쏟아낸 것 같았다. 기분 좋은 기력 쇠진으로 오자마자 반신욕하고 바로 뻗어버렸다. 이런 날은 도파민이 폭발해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각성 상태로 바뀌어서 피곤해도 잠이 잘 안 온다.
나중에 유학에서 돌아와 발령받는 곳이 춘천이라면 J님은 홍천에 또 다른 J님은 속초에 계실 때 또 만나기로 했다. 자주 보고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독서모임 끝나고도 속초 떠난다고 송별회도 해주시고, 드레스 코드 맞춰서 크리스마스 파티도 함께 열고, 별이 보이는 카페 옥상에서 첫사랑 이야기도 풀어가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전 시가 고백 공격시전한 내 이야기에 다들 빵 터지셨는데. 즐거운 추억들이 많았네!
강릉-속초-양양-고성 카테고리 별로 가고 싶은 장소, 먹고 싶은 음식, 카페들 적어놓고 다녀오면 하나씩 지웠는데, 속초에 '햅칠탐' 마지막으로 더블제이님들과 다녀왔다. 카페 분위기도 좋았지만 큰 통창으로 보이는 눈 쌓인 설악산 그리고 상도문 한옥 마을의 정취가 잘 어우러져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한 그런 곳이었다.
날씨가 좋거나 시간이 더 있었다면 영랑호도 한 바퀴 돌고 고성의 화암사나 양양 낙산사도 가보고 싶었지만, 하루에 다 하기에는 역시 무리였다. 천진해변에 사는 강아지 친구 '예삐'도 못 보고 간다. 올해 천진해변 지나가면서 예삐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강아지 별로 간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일전에 혼자 왔을 때 영랑호랑 청간정까지 들렀다 가길 잘했다 싶었다. 뭐든 나중에 해야지 하고 생각하면 기약이 없어진다. 생각날 때,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속초의 오랜 인연 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날. 주말에 귀한 시간 내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