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明鏡止水)

강릉 여행 필수 코스

by 윤이나


강릉에서 제일 많이 시간을 보낸 곳은 바다, 솔숲, 명주 도서관 그리고 '명경지수'라는 북카페이다. 엄밀히 말하면 음료 위주의 카페가 아니라 디지털 디톡스를 곁들인 '나와의 필담을 나누는 시간 (2시간)' 단일 메뉴로 구성된 문화 공간이다. 임당동 성당 첨탑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한 이곳은 속초의 단골 카페였던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곳이었다. 강릉에 산다고 하니 곧 '명경지수'라는 곳이 오픈하는데, 좋아하실 것 같다며 인스타그램 주소를 미리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금, 토, 일, 월 4일간 운영했고 지금은 화요일도 하루 추가되었다. 10시, 1시, 4시 타임을 예약할 수 있고 2시간 동안 오롯이 나와 필담을 나누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비건 디저트가 제공되며 핸드폰은 나무 케이스에 담아 잠시 반납한다. 노트북이나 패드 사용은 안되고 책, 일기 쓰기, 다이어리, 공유 일기장 작성, 각종 서류 작업 등 디지털 기기 없는 아날로그적인 시간이 흘러간다.



좌석은 다섯 자리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서 배치되어 있다. 가방을 거는 곳, 옷 걸어두는 공간, 무릎 담요와 따뜻한 핫팩 등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사장님 부부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각 자리마다 앉았던 사람들이 작성한 '공유 일기장'이 놓여 있는데, 방명록 느낌이라기보다 조금 더 길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진짜 '일기장'이라고 보면 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강릉에 어떤 연유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강릉의 수많은 공간들 중 어떻게 명경지수에 오게 되었는지, 요즘 느끼는 바나 고민거리는 무엇인지...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공유 일기장을 읽는데 눈물이 흘렀다. 다들 지금 하는 고민들이나 생각들이 다 비슷비슷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을 좀 더 아름다운 결로 풀어낸 글을 읽었을 때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떤 글은 너무 좋아 적어오기도 했다.


- 때마다 정성껏 임하며 내가 할 바 할 수 있기를.

- 명경지수. 맑은 거울에 마음을 비추어보니 수만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우개가 없는 5번 자리에 앉아 지워지지 않는 마음들을 툭툭 쓰고 있다. 맑은 거울이 어떤 마음이든 미소 지으며 비추어준다. 고맙다. 윗 옷 안쪽 주머니에 작은 거울 하나 지니고 다니듯, 명경지수에서의 기억을 자주 떠올리고 싶다. 내가 나에게 마음을 비추는 시간을 허락한다면, 나는 명경지수 할 수 있을 것이다.

- 내 안에 흐르는 마음을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명경지수에서. 푸른 나무가 보이는 가장 중간 자리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새잎이 돋아 연한 초록을 뿜어내는 나무를 오래 들여다본 것은 올해가 처음인 것 같다. 나무는 계속 새 잎을 틔웠을 텐데. 왜 난 이걸 처음 보았지?

- 앞선 이들의 일기를 읽고 있다. 눈물이 차올랐다. 모두들 저렇게 허물어진 집을 세우고 또 세우며 살아가고 있구나. 참 명랑하게도 그 와중에 나뭇잎을 보려는, 우리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애잔하다.


하루는 임당동 성당의 첨탑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또 하루는 은행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창을 사선으로 둔 모퉁이 자리에 앉아서... 나는 부지런히 글을 적고 다른 이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인상적이었던 글은 다음과 같다.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도 자주 불행합니까.
당신도 당신이 무엇인지 모릅니까.
당신도 세상과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에 슬픕니까?
강릉에서 아름다운 명경지수에서 나를 잠시라도 만났습니까.
향이 좋은 커피와 맥주를 즐겼습니까.
순두부를 먹었습니까.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거칠한 모래에 발바닥을 부빌 때 사는 것 같았습니까.
나는 내가 나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 (중략)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거칠한 모래에 발바닥을 부빌 때 사는 것 같았습니까' 하는 물음에 눈물샘이 터졌다. 생의 쓴 맛을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싶었다. 시를 쓰는 분인 것 같았는데, 좋은 글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들 사이로 나의 마음도 한 번씩 내려두고 돌아왔다. 평일에 혼자서 몇 번 가다가 남편도 틀림없이 좋아하 것 같아 함께 갔다. 남편은 그 2시간의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명경지수에서 나오는 음악, 책상과 의자, 스탠드, 만년필, 만년필 거치대 등 인테리어와 소품도 모두 마음에 들어 했다. 한마디로 우리 부부 취향저격 공간이 되시겠다. 사장님들이 직접 한 땀 한 땀 만들어 판매하시는 노트도 구입하고, 화장실 열쇠가 달린 청동으로 된 도토리 키링도 너무 예뻐 구입처를 여쭤보았다. (남편의 애칭 중 '도토리'가 있다.) 실내화 하나, 음료가 담겨 나오는 달항아리를 닮은 잔과 볼펜들도 대충 허투루 된 것이 없다.


이 공간을 준비하며 사장님 내외가 얼마나 신경을 쓰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두 분은 직접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창문 청소도 주기적으로 하신다. 아마도 명경지수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맑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애쓰시는 것 같았다.



명경지수를 나오면서 남편과 나는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저 공간 너무 소중해서 오래오래 영업해 주시면 좋겠다. 강릉 오면 맨날 들르게."

우리의 바람처럼 명경지수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단 2시간. 휴대폰을 내려놓고 전자 기기를 치워두고 오롯이 나와의 독대를 하는 시간. 손으로 무언가를 적어보는 시간은 분명 바다와 파도만큼이나 특별한 강릉의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