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의 마지막 일요일

시간아 가지마

by 윤이나


강릉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요일이다. 금요일 저녁에도 토요일만 해도 그래도 '주말이 하루 더 남았어.' 이러면서 괜찮았는데, 막상 다음 주 이 시간에는 이곳에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웠다.


남편과 함께 11시 미사에 참석했고, 흑백요리사 1에 출연하신 셰프님의 음식점에 다녀왔다. 이곳 역시 남편의 강력한 추천으로 가게 되었다. 무무가 나를 만나고 미식의 지평이 계속 넓어지고 있어서 걱정이다.

백골뱅이로 만든 에스까르고가 너무나도 맛난 안목 해변의 <미트컬처>!!! 안 가보신 분들 꼭 가보셨으면 좋겠다. 청어로 만든 애피타이저 헤링이라는 메뉴도 맛나다. 원래는 스웨디시 미트볼로 유명한 집이지만 우리는 저 두 가지 요리를 너무 사랑해서 에스까르고 각 한 접시씩 그리고 헤링 한 그릇 딱 먹고 돌아왔다.


너무 빠르고 맛있게 먹어 사진은 없다. 20살 때 파리 바스티유에 아직도 영업하는 '쉐즈 폴'에서 처음 먹은 에스까르고 요리와 똑같은 맛이었다. 그때도 너무 맛있어서 같이 간 언니랑 2유로씩 팁 놔두고 메모지에 'Merci!'라고도 적었었다. 서빙해 주는 분들이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분들이었는데, 정말 친절하고 무엇보다 요리가 맛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느낀 맛을 강릉에서 다시 느끼다니... 감동 ㅠㅠ


소스만 알면 내가 해보고 싶은데 아직 그 정도 엄두는 안 나고 가끔 강릉 오면 예약해서 와야겠다. 함께 제공되는 빵이 바게트도 아닌 것이 촉촉하고 맛있어 소스에 싹싹 적셔 그릇까지 먹을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뭔가 메인디쉬를 안 먹고 나온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만족스러운 식사였기에 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오늘도 어제처럼 바람이 많이 불었다. 주말 운동은 생략하고 집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사진은 금요일 걸었던 사천천 둑방길이다. 날이 따뜻한 날에는 바다에서 어씽을, 더 추워지고 나서부터는 사천천 강둑을 걷는다. 차도 없고 오가는 이도 많이 없어 한적하니 좋다. 매연냄새 안 나고 새소리, 바람 소리, 시골 풍경이 어우러져 편안하다. 대관령이 다 보이는 툭 트인 시야가 최고다. 이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크고 잘생긴 소나무들이 강변에 줄지어 서있는데, 유럽에서 본 풍경처럼 이국적이고 향이 좋다. 인근에 소나무를 키워 판매하는 곳도 있어서 어린 소나무들이 가지런히 자라고 있는 모습도 구경하면서 걷는다.


이 길을 몇 번 더 걸을 수 있을까?


다행히 다음 주 그리고 이사하는 날은 그리 춥지도 않고 온도도 영상이라서 무난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남서향인 지금 우리 집은 오후 2시부터 거실 깊숙한 곳까지 해가 잘 든다. 4시가 넘은 이 시간쯤에는 대관령을 넘어가려는 해가 산 위에 떠있는 모습이 잘 보인다. 이전 6개월은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지금은 앞이 툭 트인 대관령 뷰에서 잘 지내다가 간다.


나는 큰 마음을 한 번 먹고 1년 만에 당근 거래를 재개했고, 남편은 인수인계 관련해서 사무실에 출근했다.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솥밥을 하려고 아침부터 잡곡쌀을 불려두었다. 이사 때문에 냉장고 털이 하느라 국거리용 소고기를 넣어 솥밥을 만들어볼 생각인데, 처음 해보는 조합이지만 맛있을 거라 믿는다.


원래 오늘은 혼수로 사 온 그릇들 뽁뽁이로 싸서 박스에 포장하려고 했는데, 둘 다 나름의 일로 정신이 없어 내일 해야 할 것 같다. 포장이사라 귀중품이랑 성물만 챙기고 크게 신경 안 썼는데, 지난번에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로열 코펜하겐 홍차잔이 이가 나가있었다. 쿨하게 새로 사려고 했지만 컵만 구매는 안된단다. 소서까지 같이 사야 한다고. 쩝. 언제 깨진 지는 모르겠지만 이사가 잦아서 신경 쓰이니 그냥 내가 포장하는 걸로!



이 아이들은 사천천에서 운동하며 만난 새들이다. 딱새, 백할미새, 댕기물떼새, 비오리들이다. 참새는 카메라 꺼내는 순간에 알고 다 날아가서 사진은 없다. 흔한 새긴 하지만 겨울에 오동통 방실방실 털 오른 참새들은 정말 귀엽다.


이사가면 이런 철새들은 보기 힘들 것 같아 눈에 많이 담아두었다. 여기서 본 시뻘건 월출도, 경포대에 올라 달 구경한 것도, 동틀 때 달려가 시크릿 비치에서 스노클링 한 것도, 단풍으로 물든 경포생태저류지에서 햇살 밭으며 자전거 타던 것도 그리고 갈매기랑 참새, 산비둘기를 고정으로 각종 조류들을 실컷 구경한 것도 모두 강릉의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제 '퍼즐 트립' 보면서 주열기 한 시간 하고, 가열차게 솥밥과 톳두부 반찬을 만들어야겠다.


매일 듣는 문세아저씨 라디오에서 11월 말부터 캐럴을 틀어줬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이상하게도 캐럴 듣는 게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오늘 아침에 샤워하면서는 일부러 선곡해 보았다. 역시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괜찮은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