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살이 명장면 BSET 3
오늘은 강릉에 살며 '최고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한 달쯤 전부터 나는 종종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여기 살면서 뭐가 제일 좋았어? 언제가 제일 즐거웠어? 세 가지만 말해봐."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봐 딱 '3'개만 꼽아보라는 질문을 무무에게 던져놓고, 나도 얼른 머릿속으로 강릉의 추억들을 되돌아보았다.
신기하게도 남편과 내가 생각하는 강릉살이 명장면이 일치했다. 물론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사실 상반기에는 이사 와서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우리의 본격적인 강릉살이는 7월부터나 다름없었다.
"마이 대니 앞에서 아침 일찍 스노클링 한 거, 여보랑 가을에 경포생태저류지 라이딩 한 거, 엄청 큰 보름달 구경하러 경포대 올라갔던 거."
전적으로 동의했다. 오늘은 강릉에서 멀어져도 영원히 남을 것 같은 세 가지 장면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강릉으로 이사 온 후로도 그저 '언젠가 한 번 바다에 들어가겠지.'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함께 명상 수업을 듣던 분이 사람 없고 째복은 (민들조개의 강원도 방언) 많은 장소를 알려주셨다. 스노클링 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 한 번'은 거기로 가야지! 하며 벼르고 있었다. 새벽 5시엔가 불현듯 눈을 뜬 우리 둘은
"이렇게 누워있을 바에 거기 가볼까?"
호다닥 큰 수건 2개와 아쿠아 슈즈를 챙겨 바다로 향했다. 문을 닫은 펜션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고 양쪽에는 절 그리고 군부대여서 사람들이 찾는 해변이 아니었다. 째복이 사람보다 많다고 했는데, 우리가 갔던 이른 아침에도 어르신 두 분이 나와서 조개를 잔뜩 주워가셔서 그런지 소소하게 탐사할 수 있는 정도였다.
밀물 때였나 성인 무릎정도 오는 높이에 투명한 바다의 속살이 일렁이며 다가왔다. 바다 아래의 모래사장이 평면이 아니라 얕은 계단처럼 층층이 되어 있는지는 미처 몰랐었다. 물론 그 해안만 그런 것 일수도. 해안가 가까이에 있는 바위 사이사이로, 맞은편 방파제 테트라포드 부근에 줄지어 유영하는 학꽁치 떼, 새끼 복어, 니모를 닮은 작은 물고기들도 보았다. 꼭 깊은 바다에 나가지 않고 여기만 와도 내가 좋아하는 수상 생물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진작 와볼걸. 해가 떠오르고 직사광선을 맞으며 물속을 한참 구경하고 즐겼다. 남편은 꼭 다른 행성에 와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방이 고요하고, 물결도 잔잔했다. 투명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바다의 마음을 전부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황홀경에 젖은 우리는 그 장소를 못 잊고 몇 번 더 스노클링을 즐겼고, 나는 한 마리의 보노보노가 되어 조개와 고둥을 발견하며 행복해했다.
두 번째 명장면은 경포생태저류지 라이딩이다. 주일에 성당 다녀오다가 계획 없이 들른 곳이었다. 날씨도 따뜻하고, 점심도 먹었겠다 소화시킬 겸 운동하고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찾은 곳이었다. 강릉 시내에서 걷거나 산책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허균허난설헌 생가'다. 기념 공원에서 경포호수까지 소나무 숲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숲에 들어와 있는 느낌과 호숫가를 둘러보는 느낌을 둘 다 받을 수 있다. 이날은 항상 걷는 그 길 말고, 전기 자전거를 픽업해 허난설헌 생가를 지나 경포생태저류지까지 라이딩을 해보았다. 허난설헌 행가 - 경포천 - 생태저류지 메타세쿼이아 길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햇살이 너무도 따뜻해 등이 뜨끈뜨끈 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자전거를 타는 내내 기분도 함께 일렁였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그리고 크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확실히 경포호 가까이보다는 강바람이 덜했다. 강릉은 여름 내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다가 10월에는 한 달 내내 비가 왔다. 정확히 말하면 이틀 빼고 내리 비였다. 가을하늘은 공활하다는 데 매일 비 오는 강릉에서 우리는 가을 중 한 달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요즘은 체감상 가을이 점점 짧아져 과장 조금 보태 긴 여름 다음 바로 추워지는 느낌이라 아쉬웠는데, 이날은 무계획으로 간 가을 나들이가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준 하루였다.
마지막으로는 보름달 보러 경포대에 오른 것이다. 이 역시 무계획이었는데, 밥 먹고 산책하다 달이 예뻐서 좀 더 주변이 어둡고 환한 달빛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출발했다. 처음에는 경포대 생각을 못하고 인적 드문 연곡으로 올라갔다. 바다 위에 총총히 뜬 달이 참 아름답고, 달빛이 비친 물도 거룩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제대로 달맞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경포대로 향했다.
경포대는 송강 정철이 강원도에 와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랐다고 하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경포 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을 말한다. 경포대에 오르면 경포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이곳에서는 6개의 달이 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늘 위에 하나, 경포 해변 바다에 하나, 호수 위에 하나, 내 술잔에 하나, 사랑하는 님의 눈동자에 하나' 총 6개를 볼 수 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 말이다. 술잔을 부딪칠 수는 없었지만 경포대 정자에 올라 남편과 두 손 꼭 모으고 기도했다. 우리 기도는 늘 똑같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부유하게 (최근 추가됨) 오래오래 백년해로하게 해 주세요."
쟁반같이 둥근달이 하늘에, 바다 위에, 호숫가에, 무무 눈에도 떠올라 제법 운치 있는 달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명장면까지는 아니지만 사진첩을 넘기다 보니 '순간 포착 제비 사진'이 있었다. 강릉에는 제비가 참 많았는데, 사람 키만큼 낮게 날기도 해서 부딪칠 뻔한 적도 있다.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새인데 주문진에는 정말 많아 신기했다.
이 사진은 남편 토익 시험 보고 성산면에 보리밥 먹으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식당 처마에 제비집이 있어서 어미가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고 있었다. 우리가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자 가게 주인분이 나와 원래 새끼들이 많았는데 오늘이 이소하는 날이라 어미가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어미의 분주한 날갯짓은 '날아오르라'며 새끼들을 부르는 신호였다. 지금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핸드폰 사진첩을 정리한다 생각만 하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유학 준비하면서 사진첩도 싹 한번 정리하고 폴더별로 모으고 싶은데 생각만 해도 벌써 눈이 아프다. 껄껄껄.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해야지.
오늘은 흑백요리사 대망의 결승전이 공개가 된다. 남편은 인수인계하러 출근했고, 나는 집정리 짐정리를 하며 분리수거장 왕복을 세 번이나 했다. 저녁 먹고는 성물이랑 귀중품 포장하고, 내일은 명주도서관에 책 반납. 욕심부려서 총 10권 빌렸는데 아직 3권 못 읽었다. 오늘내일 다 읽을 수 있겠지ㅠㅠ 이사 전 한번 더 빨래하기, 차에 짐 미리 실어놓기. 그리고 로컬푸드 코너 최강자인 '연곡 하나로마트' 가서 잡곡도 사가야겠다. 여기서 나는 온갖 종류의 잡곡이 많은데 산지라 싱싱하고 저렴하다. 더 많이 못 가져가는 게 아쉬울 뿐. 매번 장 볼 때 강릉 시내 가거나 인터넷으로 배송시켰는데 진짜 연곡 하나로마트 진작 알았으면 참새 방앗간이었을 것이다. 하늘마, 자색마, 자색 고구마, 토란, 곶감 말랭이... 다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기한 식재료 천국이었다.
모레 짐을 빼고 금요일 이사라 <강릉 일기>는 이제 내일 1편 남았다. 총 15편 묶어서 브런치 북으로 발행할 생각이다. 제목을 아직 짓지 못했는데 뭐가 좋으려나. 내가 경험한 '강릉'을 떠올리면 마냥 좋지도, 안 좋은 기억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복잡 미묘한 그 마음을 잘 담을 수 있는 제목을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