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사랑하는 이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나타낸 글로 실제 연인들의 연애편지에도 많이 인용된다고 한다.
'연애편지'라고 하니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나의 첫 연애편지는 아찔하고 다소 신박하기까지 했다. 잊고 있던 기억이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편지 한 통에 되살아났다.
때는 초등학교 6학년. <오월은 푸르구나>라는 브런치 글에 썼듯, 어린이날 노래를 크게 불렀다는 이유로 스티커를 받고 기뻐하던 때였다. 당시 우리 반은 남녀 짝을 이뤄 6명씩 조를 이루고 있었다. 스티커 경쟁에 불이 붙어 모든 과목이 조별 수업을 했기때문에 우리끼리 유대관계가 돈독해져 갔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방과 후에 각자 책상 밑을 빗자루로 쓸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집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는데 편지와 선물이 들어있었다.
- 집에 가서 봐! (진담)
- 추신: 학교에서 보면 쪽팔림 (충격적 내용)
편지 봉투에 정성껏 붙인 비닐 포장지 안에서는 반짝거리는 종이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연애편지라고 단정하기에는 파격적인 낱말들이었기 때문에 더 호기심이 갔다. 집에 오자마자 얼른 편지를 뜯어보았다. 여러 장의 엽서에 한 문장씩 짧게 쓴 글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를 준 친구는 당시 '골반 네모' (이하 C)라는 별명을 가진 우리 조원이었다. 참고로 나는 반주자여서 '피아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호방한 C의 성격처럼 그의 편지에는 대차고 쿨한 고백이 가득했다.
윤이나! 너는 내가 널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냐?
몰랐으면 말고.
그런데 나는 너의 의사를 확실히 알고 싶어.
만약 이 편지를 집에서 보면, 다음날 학교에서 OOO의 머리를 내려쳐버려.
OOO가 너를 때리는데 그때 나는 내색은 안 해도 OOO를 XXY 하고 싶었어.
... (중략) 내가 싫으면 나한테 '변태 새끼'라고 그래. 진담이야... (후략)
당시 같은 조였던 남학생과 투닥투닥하는 게 속상했던 건지 C의 글에는 파격적인 제안들이 여럿 있었다.
'와 나도 연애편지 받았다! ^^'
라고 기뻐하기에는 일단 OOO의 머리를 내려쳐야 했고,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변태 새끼"라는 말을 뱉어야 했다. 뭔가 찝찝했지만 투박한 손으로 곱게 접었을 별모양 종이접기를 매만지며 감상에 젖으려고 할 때 즈음, 함께 들어있던 엽서 뭉치가 눈에 띄었다.
5장 정도 되는 엽서는 어찌나 철두철미하게 스테이플러를 박아놨는지, 가운데 틈 사이로 손을 넣어 들춰가며 읽을 수 있었다. 비슷한 고백의 말과 함께 대망의 마지막 장은 이런 말로 장식되어 있었다.
"고질라 양!"
흠. 이런 연애편지... 받아보신 분?
그랬다. 학급문집을 만들 때 우리 반 마흔 명이 넘는 친구들의 별명을 전부 수록했는데 나는 분명 '피아노', C는 틀림없는 '골반 네모'였다. 그런데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게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말은 참말이었던 것이다. 굉장히 가물가물하지만 내 별명 중에는 '고질라'도 있었던 것 같다.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6학년 무렵 나의 키는 160cm 정도로 성인이 된 지금과 체형이 거의 비슷했다. 학급 뒤에 붙어있던 게시판에 스티커를 붙인다는 이유로 유아용 걸상에 올라갔다가 책상다리가 부러지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때부터 '고질라'는 나의 또 다른 별명으로 등극했다.
쉬는 시간이라 반 뒤에서 놀고 있던 친구들이 '우지끈.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내 모습을 생생히 목격한 탓이었다. 그 후로 남자아이들은 나를 놀릴 때 '고질라'라고 선방을 날렸다.
고질라의 첫 연애편지는 이렇게 아찔하고 기막힌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묻는다면?
고민도 해보았지만, 편지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고질라가 생각보다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짝사랑하던 다른 친구가 있었고 C에게는 큰 감정이 없었다. 거절의 표시로 OOO의 머리를 내려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갑자기 C에게 "변태 새끼"라는 단어를 날리자니 이상했다. 나는 대답 대신 무반응을 택했다.
다행히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았고, 우리는 졸업 때까지 '명문조'의 일원으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내 마음을 이야기했어야 했나 싶지만, 나도 처음 겪는 일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생각보다 연애편지가 로맨틱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웠을 뿐.
C가 접어준 종이별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어졌지만, 편지와 엽서꾸러미는 지금도 소중히 잘 보관하고 있다. 이 편지를 쓰면서 진지하게 고민했을 C의 모습이 그려진다. 처음 떠올려본 모습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남편이 그리고 아빠가 되어있을 C.
비록 나의 첫 연애편지는 황동규 시인의 시처럼 달콤하고 말랑한 속삭임은 아니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은 친구의 진심을 읽으면서 '고질라'와 '골반 네모'와 또 다른 친구 'OOO', 우리 반, 우리 학교 그리고 담임 선생님까지. 한없이 푸르르던 날의 추억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못다 쓴 답장을 수줍게나마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C야, 잘 지내지?
어린 날의 소중한 마음 이렇게 표현해 준 거 정말 고마워! 그때는 내가 너무 어리고 잘 몰라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
근데... 그래도 연애편지에 '고질라'는 좀 너무하지 않냐? 재밌는 글 덕분에 지금까지 웃으면서 기억한다만.
어디에 있든 하는 일 모두 잘 되고, 몸 건강히 지냈으면 좋겠다. 고맙다. 친구야!"
P.S) 오늘부로 브런치북 <꺼내먹어요 2> 연재가 종료됩니다.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며 '글 근육'을 키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리차 한 잔과 함께 시작되는 '브런치 타임'이 제 하루에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꾸준히 진심을 담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