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비는 반드시 옵니다> / 주기운

by 윤이나

요 한 달 내내 여름은 불타고 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땡볕 속에 불꽃처럼 회오리치고 있는 만상은 고흐의 명화 '삼나무 길'을 보는 것 같습니다. 거북이 등같이 쩍쩍 갈라진 논바닥과 성냥만 그어 대면 금세 타 버릴 것 같은 벼 포기의 모습이 신문에 연일 보도됩니다. 몇십 년 이래의 가뭄이라고 합니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싶습니다.


정말이지, 요즈음은 팍팍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한 점 구름도 없는 사막을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나뿐이겠습니까? 아마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런 심정으로 애가 탈 것입니다. 한밤중에도 벼포기가 파삭파삭 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농민들의 얼빠진 얼굴 위에 작열하는 태양만이 고흐의 그림처럼 겹치고, 목구멍에 잦아드는 저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앉아 있기가 죄송하고, 선풍기 바람조차도 민망스럽습니다. 그래서 산으로, 바다로 피서랍시고 떠들어 대며 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를 책망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작 내 심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산천은 불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전쟁보다 치열한 이 시련 앞에서 우리는 참으로 어찌해야 합니까? 그것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그 노력은 절제와 인내, 그리고 초인적인 용기입니다. 처칠이 피와 땀과 눈물을 조국에 바치라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국민을 향해 외친 바 있습니다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을 노력을 가뭄에 애태우는 이웃들에게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목욕재계하고 지극히 삼가던 마음으로, 이웃과 향토의 이 처절한 고통을 서로 아파하고 가여워할 줄 아는 공동 운명체로서 절실한 연대감 속에 살아야 합니다. 이웃집에 초상이 나면, 가무는 말할 것도 없고 웃음소리까지 삼가고 내 슬픔처럼 조심하던 우리네였습니다. 어찌 제왕만이 스스로의 부덕함에 대한 용서를 하늘에 빌었겠습니까? 선비들도 그러했고, 한낱 여항의 백성들도 뜻있는 이는 그랬던 것입니다. 이웃을 외면한, 진정한 평안과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이런 이웃들이 있는 한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 "훌륭한 작품의 분만은 오로지 인내심이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아니, 인내가 전부라고 했습니다. 이 가뭄을 극복하는 것은 훌륭한 작품의 분만보다 훨씬 더 절실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한 방울의 물을 아껴서 벼 한 포기라도 더 소생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오늘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오로지 인내로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는 반드시 옵니다. 사후약방문 격일지라도 비는 이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우주에 종말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는 패연히 내릴 것입니다. "석 달 가뭄에는 산다"라고 우리 속담은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비는 반드시 옵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주기운님의 수필 <비는 반드시 옵니다>를 오늘의 글로 선택해 보았다.


'가뭄'에 대한 대단한 기억이라도 있느냐?

- 그렇다.

비가 안 와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었던 적이 있느냐?

- 애석하게도 그렇다.


나는 작년 '2025 강릉 가뭄' 그 한복판에 있었다.


나는 강릉 사람도 아니고 강원도가 고향인 사람도 아니다. 물론 남편도 그렇다. 전에 강릉에 살아본 적도 없고 작년 한 해. 딱 1년이라는 기한이 있었던 강릉살이였다. 강릉과 인접한 양양, 속초, 동해, 삼척, 평창, 정선 모두 가뭄이 아닌데 오로지 강릉만!!! 강릉만 가뭄이었다. 도.대.체. WHY?


나는 통탄에 통탄을 거듭했다. 사실 강릉에서 상반기는 층간 소음 때문에 날아가버린 지 오래였다. 브런치북 <읍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분들이라면 내가 숱하게 암과 싸웠을 때보다 얼마나 더 장렬하게 멘탈을 붙잡고 있었는지 알 것이다. 난리 끝에 이사한 집은 세상 평화롭고 아늑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가뭄'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게시물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게 시작이었다.


강릉시 생수 지급 안내문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4% 이하로 떨어지면서 저희 아파트는 2025년 9월 8일부터 아래와 같이 생수를 지급함을 안내합니다.

1. 기간: 2025년 9월 8일부터 ~ 소진 시까지
2. 배포기준: 1인당 2리터 기준 6병 (1팩)
3. 배포장소: 지하 1층 주차장


생각해 보니 강릉으로 이사 와서 비 온 날은 정말 손에 꼽았다. '우산 쓰고 외출한 있었던가?' 떠올려보니 우산이 어디 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오봉저수지 물이 계속 줄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생수까지 나눠준다니 의아했지만 일단 받아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가뭄으로 인해 강릉 지역에 '국가 재난사태'가 선포되었고,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게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우선 강릉에서 열리기로 한 굵직한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공중화장실들은 '가뭄 때문에 운영이 어렵다'는 안내문과 함께 전부 폐쇄되었다. 수영장은 이미 영업을 못한 지 오래였다.

아파트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아껴 쓰라는 방송이 나왔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소변의 경우 가족끼리 모았다가 한 번에 내려달라'는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아직 더위가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여름 아닌 게 어디야. 먹을 물이 있는 게 어디야.'

긍정 회로를 돌려보았지만 맘카페에 들어갈 때면 매일 'OO마트에 생수 하나도 없었어요. OO마트도 생수 품절이래요.'라는 글에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다 이 공고문을 보았다. 생수를 나눠주고 며칠 후 바로 제한급수를 실시하긴 했지만 그래도 큰 불편함은 없었는데, 이제 그나마 수도 배관도 25%만 열어준다고 하니 난감했다. 세대가 많은 아파트에서는 출퇴근 시간같이 물 사용이 많은 때는 졸졸졸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야 했다. 저녁에는 25%라도 물이 나오는 2시간 내에 씻고, 설거지하고, 장본 재료들 손질하고... 물이 필요한 모든 일들을 끝내는 게 강릉 시민들의 최대 과제였다.


9시부터 7시까지는 물이 안 나오니 화장실도, 설거지도, 물 쓰는 일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낮에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무거운 변기 뚜껑을 열고 욕조에 받았놓은 물을 3번 이상 채워야만 물내림이 가능했다.

'아! 실로 나는 그동안 버튼 하나 누르면 물이 내려가는 천국에 살고 있었구나!'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그해 화장실에서 전부 깨달았다. 울며 겨자 먹기였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가뭄이 곧 끝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비는 한 달이 넘도록 비는 오지 않았고 오봉 저수지의 저수율은 계속 내려갔다.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는 왜 자꾸 보여주는지 심란함만 더할 뿐이었다.

강릉 어딘가에선 기우제를 지냈다는 데, 그때 상황은 정말 심각하고 막막해 나는 그 마음도 이해가 갔다.

sns에는 강릉 가뭄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풍자글이 여럿 올라왔다. 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미리 대비할 수는 없었는지 나 역시 속상했지만, 우선은 마음을 모아 이 상황을 타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언제가부터 도로에 '살수차'들이 눈에 띄었다. 119 불자동차들도 급수를 위해 총력을 다했다. 2019년 속초 산불 때도 전국에서 모여든 소방차들로 장관을 이루었는데, 비슷한 광경을 강릉에서 또 보고 있었다. '성동구 살수 3호' 아는 동네 이름을 볼 때면 반갑기도 했다.

'저기서 여기까지 와주었구나. 어라? 저기서도?'

이름만 알았던 지역에서도 살수차, 소방차를 보내주고 기관들은 생수를 보내주었다. 덕분에 가뭄이 끝날 때까지 먹는 물은 부족하지 않게 지원받을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집으로 생수를 보내준 친구도 있었다. 진짜 눈물 나게 고마웠다.


사천교 아래서는 급수차들이 모여 강릉 전역으로 공급할 물을 퍼올리고 있었다. 이미 바닥 가까이까지 한껏 낮아진 수심이었다. 논밭에는 물이 말라 쩍쩍 갈라진 지 오래였고, 사천해변으로 흘러드는 사천천 하류에도 물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말 이게 가뭄이구나. 가뭄도 이 난리인데 전쟁은 어떻게 지냈을꼬...'


신기하게도 소란했던 마음들은 분주히 오가는 살수차들, 소방관 분들이 쉬는 곳을 지날 때면 후루룩 날아갔다. 남편의 회사 근처에 강릉 가뭄을 위해 모인 소방차들의 거점기지가 있었다. 9시가 되기도 전 급수를 위해 출동하는 소방차들을 볼 때면 '슈퍼 히어로'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이런 분들이라며 쌍따봉을 날리곤 했다.




그러고 보면 강릉살이 1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위 아랫집 층간 소음도, 국가 재난사태인 가뭄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우리는 목욕재계하고 지극히 삼가던 마음으로, 이웃과 향토의 이 처절한 고통을 서로 아파하고 가여워할 줄 아는 공동 운명체로서 절실한 연대감 속에 살아야 합니다.'라는 주기운 선생의 글처럼 강릉 가뭄을 걱정해 주고, 도와준 많은 분들 덕분에 가뭄은 해소될 수 있었다.


9월 가뭄의 절정을 뒤로하고 10월에는 이틀 빼고 모두 비가 내렸다. 진짜 징하게 비만 왔다. 다들 우스갯소리로 전에 지냈던 기우제가 이제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아무렴 어떠한가.

현재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90프로를 육박하고 (2026.2.19일 기준), 전국에서 세 번째 수위라고 하니 모든 이들의 염원이 하늘로 올라간 것이 분명하다.


주기운 선생의 글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내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비는 반드시 옵니다. 사후약방문 격일지라도 비는 이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우주에 종말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는 패연히 내릴 것입니다. "석 달 가뭄에는 산다"라고 우리 속담은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비는 반드시 옵니다.'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눈빛이 결연해지는 것도,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전 18화이상한 동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