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 김정호
⊙ 예전에는 전시 동물이 나이 들거나 장애를 갖게 되면 방문객에게 잘 보이는 앞쪽 방사장이 아닌, 그보다 더 좁은 뒤쪽 공간에 갇혀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동물원에는 어리고 건강한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사람처럼, 생명이라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를 거친다. 우리는 어쩌면 암묵적으로 동물들의 후반부 삶, 아프고 나이 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모른 체해왔는지도 모른다.
⊙ 사육곰 농장의 반이와 달이가 온 이듬해, 우리 동물원은 곰사 개선 비용으로 국비가 포함된 2억 원을 받았다. 입사 이래 처음 받는 큰돈이었다. 시멘트 바닥에 누워만 있던 동물원 곰들의 환경도 덕분에 좋아졌다. 이후 호랑이, 여우, 산양, 수달, 늑대, 삵 등 야생동물 방사 훈련장을 갖추게 되었고, 실내 동물원에 살던 사자 바람이와 독수리 하늘이를 데려올 수 있게 한 보호시설들이 들어섰다. 그 시작은 반이와 달이가 우리 동물원에 온 일이었다. 사람들은 청주동물원이 곰들을 구조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곰들이 청주동물원을 구한 것이다.
⊙ 동물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가만히 말해본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러면 좀 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설 연휴 <이상한 동물원>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갈비 사자 바람이, 평생 웅담을 채취당하며 살아야 했던 곰, 늙고 병들어 갈 곳 없었던 동물들이 김정호 수의사 외 많은 분들의 노고로 건강을 되찾고 청주 동물원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수의사계의 이국종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정호 수의사는 정말 좋아서 그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순수하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직업을 택한 사람. '수의사'가 천직인 사람말이다. 뙤약볕에 기어가는 지렁이가 뜨거울 것 같아서 풀숲으로 옮겨주고, 정 주고 마음 주는 '아는 동물'을 안 만들려고 한다면서도 매일같이 방사장을 돌며 동물들이 눈꼽이 끼는지, 눈물이 나는지 세심하게 체크한다.
사실 이 동물원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갈비사자 바람이를 데려오면서부터였다. 지방의 개인 동물원에서 '사자 먹이 주기 체험'을 하던 바람이는 밀림의 왕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바싹 마른 몰골과 갈비뼈가 드러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김정호 수의사는 흙도 풀도 없는 철창 속에 갇혀서 평생을 살던 바람이를 청주동물원으로 데려왔다. 바람이가 구조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 역시 무척 기뻤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땅을 밟는 사자의 모습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멘트가 익숙한 사자는 자꾸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김정호 수의사는 더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라는 의미로 '바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했다. 바람이는 사람 나이로 백 살이 넘어서야 철창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늙은 사자를 동물원으로 데려온다는 것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람이의 일을 계기로 '저런 동물들도 동물원에 살 수 있다'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생겨 기쁘고 그는 말했다.
다큐멘터리에는 김정호 수의사 외에도 다른 수의사분들과 동물 복지사분들이 등장한다. 털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수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선생님은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 강아지에게 약을 놓는다. 동물을 얼마나 사랑해야 저런 불편함도 극복하고 그 직업을 택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핑계로 쉽게 포기해 버렸던 나의 꿈들에 면구할 뿐이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치료하던 반달곰이 죽었을 때 수의사 선생님들의 말이다. 식당 앞에서 손님들의 눈요깃거리로 갇혀있었던 반달곰.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만 있는 모습에 진료를 보게 되었는데 이미 폐 손상이 너무 심하고 기도까지 부어 수술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하는 김정호 수의사의 책 내용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도태되는 야생의 현실에서 동물들은 아픔을 꿋꿋이 참는다.
동물원으로 데려와 응급조치를 하지만 곰의 시간은 이틀이 못 가 멈춰버렸다. 수의사들은 곰의 코 앞에 손을 대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메라가 천천히 곰의 먹지 못하고 간 빵이며 밤, 과일들을 비춰주었다. 눈물이 흘렀다.
"뭘 의견을 내면 이렇게 돼요. 동물들이 잘못되면 반대로 했어야 했나. 괜히 데려왔나. 그냥 엄마 아빠 곁에 있는 게 더 나았으려나..."
생명을 놓고 매 순간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수의사지만 무엇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김정호 수의사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래도 하루는 좀 따뜻하게 잤구나..."
곰을 살리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일 줄 알았는데. 씁쓸한 표정으로 그는 '그래도 하루라도 따뜻한데 있다 가서'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더 슬펐다.
수의사들도 야생 동물을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항상 희망을 거는 이유는 '그래도 한번 살려볼 수 있는 거 아닐까? 살릴 수 있는 애를 내가 오판하는 게 아닐까?'라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동물의 아픔을 치료하고 그들의 시간이 멈추면 사후 부검과정이나 사체처리 등을 통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수의사. 청주동물원에는 이렇게 한때나마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떠나간 동물들을 기리는 추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름이 있었던 동물은 이름대로, '무명'의 동물은 무명씨로 기록된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 공간에 머물며 각자의 나약함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가 언젠가는 떠나게 됨을 생각한다.
"그러니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순간만큼은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2부작의 다큐멘터는 끝이 난다.
김정호 수의사는 말한다. 동물원을 한 바퀴 돌았는데 아픈 동물, 장애 동물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모두가 어리고 예쁘고 건강한 동물들만 좋아하니까. 특히 관람료를 내고 동물을 구경하는 동물원에는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런 동물들이 있는 게 당연해지면서 늙고 병든 동물들은 오갈 곳이 없어졌다. 어쩌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우리가 아니었을까.
부리가 비뚤어진 독수리, 백내장에 걸린 수달, 보금자리를 잃고 도시에서 포획된 붉은여우 김서방, 갈비 사자 바람이와 그의 딸 구름이... 청주 상당산성의 어귀에는 아픈 동물들을 외면하지 않는 '이상한 동물원'이 있다.
따뜻한 봄이 오면 꼭 동물원에 가봐야겠다. 사람과 동물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이렇게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순간들이 있음을 알기에 '아는 동물'들을 만나도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