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찾아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by 윤이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알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고 지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라는 시로 처음 알게 된 도종환 시인의 글은 언제 읽어도 따뜻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당신과 가는 길'이라는 시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이라는 시를 특히 애정한다.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오르는 만월이기보다 빈 논길 쓰다듬는 달빛 같은 사람, 우아한 국화꽃 보다 해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 같은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과 만나 강물처럼 흘러서 바다에 이르는 사랑이라니. 이보다 더 낭만적인 표현이 있을까?



오래전 나는 미래의 배우자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이렇게 문학적인 글까지는 아니었어도 나름 진지하게 생각한 후 노트에 적어봤다. 가치관은 비슷하되 성향은 어느 정도 달라서 보완이 될 것. 글 쓰기, 책 읽기, 여행과 신앙 등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존중해 주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꿈도 품었다.


'현모양처'를 꿈꾸던 나는 결혼에 꽤 진심이었다. 직장 생활이 안정된 후에는 바쁘게 소개팅도 하고 연애도 하며 지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결혼 선배들이 효과(?)를 봤다며 추천해 준 '배우자의 기도'를 드려보기도 했다. 바야흐로 청춘이었다.


스물여덟에는 당연히 결혼해 있을 줄 알았는데, 건강 이슈를 겪으며 어째 결혼과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지방에서 치병생활을 하며 내가 만나는 것은 (엄마 빼고) 다람쥐와 길고양이, 새들 뿐이었다. 그것도 좋다고 등산 갈 때는 다람쥐 줄 견과류를, 바닷길로 드라이브를 나갈 때는 항상 트렁크에 고양이 사료를 싣고 다니며 간헐적 캣맘을 자처했다.

몸이 좀 나아지자 또래의 사람이 그리웠다. 남자든 여자든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과 만나 이 얘기 저 얘기 떠들고 싶었다. 그 길로 독립 서점에서 하는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인원이 모이지 않았을 땐 당일 취소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만나서 교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다행히 이때 했던 치료는 머리가 빠지지 않아 외부 활동에 제약이 없었다.


독서모임 가입 후 나는 치료가 끝난 기념으로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다. 특별히 이번 홍콩행에는 세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타임지에서 선정한 아시아 제일의 트래킹코스 '드래곤스 백'에 오르는 것, 전에 왔을 때 좋았던 리펄스베이 해변을 천천히 즐겨보는 것. 그리고 틴하우 사원에 방문해 월하노인의 붉은 실을 묶고 오는 것이었다.


좋아서 올랐던 설악산 날다람쥐는 어쩌다 보니 홍콩 트래킹 여행을 위한 준비과정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드래곤스 백에 오를 수 있었다. 양 옆으로 홍콩 반도의 다채로운 섬들을 조망하며 트래킹 할 수 있는 환상적인 코스였다. 예쁜 원피스를 차려입고 홍콩의 상징인 이층 버스도 탔다. 그리고 리펄스베이 해변으로 가 물빛과 바람을 맞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해변 끝에 틴하우 사원이 있었다.


처음 패키지여행으로 홍콩에 왔을 때도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도교 사원 모셔진 여러 가지 신들을 둘러보았다.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바다의 신, 건널 때마다 수명이 3일씩 늘어난다는 다리 그리고 실타래처럼 엮인 붉은 실 뒤로 우뚝 서있는 신선이 보였다. 월하노인이었다. 남녀가 태어날 때 서로 인연이 되는 사람들의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을 묶어 둔다고 하는데, 월하노인 동상 양옆에 인연석을 두어 실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별생각 없이 남들처럼 붉은 실타를 묶고 사진도 찍었다. 신기하게도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달 인연이 찾아왔다. 졸업과 취업 나름 인생의 굵직한 시간들을 함께하고 2년간의 풋풋했던 사랑은 막을 내렸다. '인연이 닿아 만난 거겠지, 때가 돼서 만난 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월하노인이 부린 도술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홍콩에 간다면 꼭 그곳을 가보리라. 간절한 염원을 담아 빌고 올 것을 다짐하며 여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틴하우 사원에 가는 날이 밝았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홍콩에 상륙했던 태풍 때문에 나동그라진 월하노인을 보고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개의치 않고 내 할 일을 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요리조리 살펴 제일 똘똘해 보이는 붉은색 실을 찾아 꽁꽁 묶었다. 행여 비바람에 끈기거나 풀려버리진 않을까 묶고 나서도 몇 번을 확인했다. 마음속으로 나의 인연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잊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꿈꾸는지는 부끄러워서 슬며시 털어놓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별일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독서모임을 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나는 개인사정으로 모임을 그만두게 되었고, 함께 책 읽고 이야기 나누던 모임원분들 중 한 분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우리는 속초의 독서모임에서 만나 4년을 연애했고 올해로 결혼 3주년이 되었다. 둘 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해 서점 데이트를 즐겼다. 속초의 자연에 반해 이주했다는 것도 큰 공통점이었다. 여행을 사랑하고 음악을 즐긴다는 점, 식성도 비슷했고 무엇보다 내가 일하던 직장이 남편의 모교여서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남편은 성당 결혼을 꿈꾸는 나를 위해 자연스레 세례를 받았고 우리는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무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나를 잘 다독여준다. 어진 성품과 한결같은 다정함으로 우리 가정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 남편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바람이, 신에게 올렸던 기도의 말이, 월하노인 앞에 매어둔 붉은 실 덕분에 나는 좋은 반려자를 만날 수 있었다.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떠올렸던 이상형과도 잘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가끔 월하노인이 들고 있던 명부에 나와 남편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을까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아니면 서로 난감할 테니 찾아보지는 않기로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인연의 붉은 실을 엮는 마음으로 이 선연(善緣)을 소중히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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