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이옥남

by 윤이나

◉ 뭣을 먹고 사는지

뻐국새가 운다. 쳐다봤더니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그렇게 힘들게 우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것이 다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힘들게 운다고 누가 먹을 양식이라도 주는 것도 아닌데 먹는 것은 뭣을 먹고 사는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우느라고 고생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 풀과 꽃은 때를 놓칠까 서둘고

오늘은 망태 세 개 매고 삼태미 두 개 매고 밭에 풀 좀 매고 어찌나 춥든지 얼른 들어왔지.

앞마당 끝에 해당화 꽃나무는 봄을 재촉하는 이 때

잎이 뾔족뾔족하게 파랗게 나면서 빛을 띄운다.

각색 풀잎도 때를 찾아 피우기 바쁘다.

사람은 춥다지만 풀과 꽃은 때를 놓칠까 바쁘게 서둔다.


◉ 매미가 빨리 짐 매라고

오랜만에 날씨가 맑아서 정말 반갑기도 하고 하늘님이 고맙기도 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건너 밭에 김을 매다가 너무 덥기에 닥나무 그늘 밑에서 좀 쉬는데, 매미가 빨리 짐 매라고 맴맴맴맴 어찌나 허리를 빨리 꼬불꼬불 잘도 놀리는지. 그것을 바라보면서 대체 너는 재주도 좋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입으로도 그렇게 재빨리 못하겠는데 허리로 재빠르게 꼬불낭 꼬불낭하며 소리를 내는지.

매미야 나도 너처럼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을 위해 내려간 속초에서 나는 강원도가 고향인 문인들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그렇게 알게 된 시인들이 이성선과 허림이었고 이전 글을 통해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 필사글의 주인공은 양양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의 글이다.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책으로 2018년 발간 당시 할머니 연세가 아흔일곱이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양양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가난과 전쟁,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오빠가 한글을 배울 때 어깨너머로 배운 게 전부였다. 열일곱에 시집을 왔지만 먹고사는 게 빠듯해 글은 아는 체도 할 수 없었고, 남편과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조금씩 글씨를 써볼 수 있었다. 나물을 팔아 번 돈으로 공책을 사서 일기를 쓴 게 여러 해. 환갑이 넘어 쓰기 시작한 일기는 삼십 년이 넘도록 이어졌고, 손자인 탁동철 교사가 할머니의 글 가운데 151편을 추려 책으로 발간했다.


할머니의 글에서는 푸성귀 향기가 난다. 수수해도 오래가는 여운이 있다. 멀리 있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작은 벌레와 짐승들의 여린 삶을 애틋해하는 마음, 사람과 생명을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들이 글마다 묻어난다.


특히 '뭣을 먹고 사는지'의 구절들을 좋아한다. 몸을 돌려가며 우는 뻐꾹새를 보고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건 다 저렇게 힘들다며 뭣을 먹고 사는지 걱정하는 이옥남 할머니. 책을 읽다 보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도 생각나고, 할머니가 써준 삐뚤빼뚤한 편지도 떠오른다.


깊은 울림이 있는 책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뜻하지 않은 기쁨이었다.




우연한 행복은 강릉에서도 계속되었다. 명주도서관은 낯선 강릉살이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장소였다. 쾌적한 시설, 창문 너머로 새소리가 들리는 열람실, 깨끗하고 다양한 신간 책들이 입고되는 곳.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나는 자주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가을날 여느 때처럼 주차를 하고 도서관 로비에 들어섰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문예교실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성인문해교육'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한글을 배워 시화전을 연 것이었다. 5월 강릉 시내에서 열린 한 축제에서 어르신들의 글을 읽고 이미 눈물 한 바가지를 쏟은 터였다.


한 글자 한 글자 반듯하게 눌러쓴 글씨에는 할머니들의 삶이 녹아있었다.


식모살이로, 수양딸로 들어가 힘들게 살았는데, 그래도 참고 살아서 배운 한글 교실 덕분에 이제 노인 일자리에 가서도 이름을 당당하게 쓰신다는 어르신. '어떻게 이 세월을 견디며 살아왔는지.'라는 문장에서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친구들이 학교 가는 게 부러워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또 다른 어르신은 교회에서 배운 이름을 자꾸 써보며 '작은 자신감'으로 살아오셨다고 했다. '진즉에 배웠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지금도 괜찮다'라고 해서 힘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시화에서도 할머니의 이름을 세 번 적어 놓은 게 보였다. 백 마디 좋은 말 보다 내 이름 석자에 담긴 무수한 용기로 세월을 건너신 분이었다.


자식들이 받아 온 가정통신문, 아들이 군대 가서 보낸 편지를 읽을 수가 없어 속앓이로 밤을 지새우셨다는 분, 글을 몰라 장사를 하면서도 한 글자씩 써서 눈치로 수금을 했다는 먹먹한 사연 속의 주인공들은 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우며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아들 며느리에게 편지도 쓰고, 지나가다 누가 길을 물어봐도 척척 알려주고, 언젠가 술술술 책을 읽는 게 꿈이라고.


새삼 내가 지금 얼마나 좋은 시절을 살고 있는지가 실감 났다. 의무교육이 일반화돼서 못 배워서 한이 된 사람이 없고, 네다섯 살 우리 조카들도 한글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학 진학은 자랑축에도 못 낄 정도로 흔하며 마음껏 꿈꾸고 이뤄가는 게 요즘 학생들이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여자라서 포기해야 하는 꿈도 더는 없다.


어르신들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어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어르신들. 이제야 비로소 어린 날 품었던 소망을 이뤄가시는 것 같아 시를 읽는 내내 마음이 흡족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덜 고단하고 더 찬란하게 빛나기를.


내가 쓰는 글도 이옥남 할머니와 어르신들의 글처럼 긴 여운을 남기는 향기로운 글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