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글쓰기 - 글쓰기도 습관이다

매일 아침 브런치 하세요

by 윤이나
하루 한 편 글쓰기


나의 하루 일과는 대부분 비슷하게 흘러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세안 후 보리차를 끓인다. 보리차와 현미차를 번갈아 가며 끓이는 데 선택지가 두 개나 돼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마시고 싶은 차를 불에 올린다. 구수한 냄새가 은은하게 주방에 퍼진다.


갓생 살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하고 있는 5분 명상을 마치고 나면 서재방에 있는 노트북을 들고 나와 식탁에 앉는다. 시력 보호를 위해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유방암 치료제의 일환인 '타목시펜'을 장기 복용 중인데, 가장 흔한 부작용에 시력저하가 있어서 장시간 모니터를 보면 눈이 영 불편하다.


잘 끓인 따뜻한 보리차 한 모금을 넘기며 글쓰기 노트를 펼친다. 핸드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고, 그중 한 편의 글로 엮을 수 있는 글감에 살을 붙여놓은 노트다. 내 경우 글을 쓸 때 항상 제목과 소제목을 정하고 시작하는 편인데, 다른 작가분들도 그렇겠지만 '책의 절반은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이름 붙이는 일에 항상 정성을 다한다.




여기까지 보면 되게 모범적인 작가 같지만, 2022년 브런치 개설 후 나는 몇 년간 글을 올리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브런치를 시작한 건 2024년 가을이 돼서였다. 작가 심사를 통과해야만 글을 올릴 수 있는 브런치에는 왜인지 모르게 잘 쓴 글, 뭔가 대단한 것들을 써내야 할 것 같았다. 의외로 브런치를 오롯한 내 공간으로 만들어준 건 '밀리의 서재'였다.


밀리의 서재는 매달 '밀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매달 수상자를 선정해서 백만 원의 창작 지원금을 후원했는데, 2024년 3월 주제가 내가 생각해 둔 글감과 맞닿은 부분이 있어 열 편의 글을 올려두었다. 사실 나는 밀리의 서재 이용자도 아니고, 내 글을 누가 볼 거라는 기대감도 없었다. 결과는 낙선.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계정을 살펴보다가 댓글 하나를 발견했다.


- 응원하게 되는 글들이네요. 나중에 윤이나 할머니 되어서도 글 많이 써주세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동그라미애독자'님은 나에게 구원이요 은인이다. 짧은 댓글에 담긴 응원을 발판 삼아 나는 세상에 나갈 용기를 얻었다. 밀리로드에 올렸던 글들은 브런치북 <윤이나는 삶>의 토대가 되었고, 오랜 세월 마음 가득 차올랐던 이야기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낼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쓰지 않고 지냈을까.


브런치는 이제 나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매일 아침 브런치에 글 쓰는 재미에 눈 뜨는 게 설레기까지 하다.

다만 요즘 드는 생각은 하루키 같은 유명한 작가들도 하루에 몇 시간 정해놓고 무조건 글을 쓴다는데, 글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매일 꾸준히 올려보자는 다짐이다. 영감이 안 떠올라서, 날이 좋아서, 날이 흐려서, 몸이 피곤해서... 하루키도 아닌 나는 핑계 부자다.


잘 쓰지 않아도 된다. 훌륭한 글이 아니어도 된다. 다만 내가 쓴 글이 사회악을 끼치거나 쓸모없는 글만 되지 않는다면 무조건 쓰는 게 좋다고 본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하루 한 편 글 쓰기를 제안했다.


처음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을 때 남편에게 물었었다.

"여보. 강원국님의 책에서 봤는데 글 쓰기는 배설 이래요.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비워내니까요. 무조건 써봐요!"

남편은 꼭 써야 한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내밀한 이야기를 고백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나는 브런치 개설 2년 후에야 비로소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쓴다. 글쓴이가 편안하게 써야 읽는 사람에게도 그 편안함이 전달될 거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글의 중심도 변한다는 것이다. 초창기의 글은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암'을 만난 에세이였다. 브런치북 소개의 말처럼 나에게는 꼭 한 번 털고 가야 할 이야기였다. 이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글쓰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필사 노트에 담은 글들을 소재로 한 <꺼내먹어요 1,2>와 강릉 생활 이야기를 상반기, 하반기에 걸쳐 연재했다.

그리고 지금은 갓생살이 프로젝트를 연재하며 소소한 생활의 기쁨에 대해 쓰고, <웃픈 더 도어> 에는 웃기고 짠한 순간들을 모으고 있다.


브런치를 개설했던 게 마지막 치료가 끝난 직후였으니 슬픔 많았던 마음도 점점 일상으로,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계속 쓰면서 내 안에 쌓인 것들을 비워내면 언젠가는 마알간 참 행복만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주말에는 충북 옥천의 정지용 문학관에 다녀왔다. 정지용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다. 가곡으로도 잘 알려진 '향수'라는 시는 들을 때마다 예외 없이 전율이 인다. '해설피 금빛, 함부로 쏜 화살, 전설 바다...' 시인은 어찌 이런 표현들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옥고(玉稿) 앞에서 감탄만 거듭하는 나다.


'시인의 마음을 닮아 좋은 글을 오래 쓸 수 있기를. 글 쓸 때마다 그분이 오시기를.'

정 시인의 초상화를 보다가 든 생각이 면구하여 문미 위로 시선을 옮겼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올봄에는 어쩐지 길하고 밝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

이전 02화2. 요리 - 먹는 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