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라디 오블라다

나를 살린 시에스타

by 윤이나

처음 유방암을 발견한 건 프랑스의 시골마을이었다. 당시 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국제워크캠프기구(IWO)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배정된 곳은 프랑스 남부의 '카오르(Cahors)'로 파리에서 4시간 남짓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검은 와인'이라고도 불리는 카오르 와인의 산지이기도 했다.


프랑스, 체코, 스페인, 러시아, 한국 총 12명의 친구들과 함께였다. 우리의 숙소는 'old school'이었는데 전에 초등학교로 사용된 벽돌식 건물로 여럿이 함께 샤워를 할 수 있는 커다란 화장실이 딸린 공간이었다. 건물 바로 앞에는 자그마한 운동장이 있어서 간단한 야외활동도 할 수 있고, 공터 양옆에 야외 테라스도 두 곳 있었다. 각자 가져온 침낭을 바닥에 펼치며 우리는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매일 일과는 비슷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리오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강가로 향한다. 쇠스랑, 괭이, 갈퀴 같은 도구를 사용해 덤불 제거, 쓰레기 수거 등의 환경 정화활동을 하고 나면 어느새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작열하고 있었다.

강변 청소를 마치고 올드 스쿨로 돌아오면 요리 당번이 만든 음식을 먹는다. 오후 시간은 주로 친구들과 배드민턴, 보드게임, 카드놀이, 종이접기 등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시에스타'가 있었다.


시에스타란 스페인과 지중해 문화권에서 흔한 점심 후 낮잠 또는 휴식 시간을 의미한다. 이 지역은 여름에 낮이 길고 기온이 높기 때문에 가장 더운 시간(보통 14:00~17:00)에 일을 쉬고 저녁에 다시 활동하는 생활 방식이 생겼다고 한다.


점심을 먹은 후 모두 각자의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아기 시절 말고는 낮잠을 자본적 없는 나지만 며칠 지나니 제법 익숙하게 단잠에 빠져들었다. 그날도 한국인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잠을 청하던 중이었다. 가슴을 스치는 손끝에 무언가 만져졌다.

'뭐지? 여기 이런 게 있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꾹꾹 눌러보았다. 계란 노른자처럼 동그란 무언가가,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무언가가 가슴에서 만져졌다. 친구에게 물었더니 본인은 없다고 했다.


곧바로 공중전화로 달려가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동네 병원을 예약해 둘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워크캠프가 끝나면 다시 파리로 올라가 선배를 만날 예정이었고 남은 여행 일정도 한참이었다. 방학 두 달을 꽉 채운 유럽 일정은 그야말로 축제의 시간이었지만, 가슴에 있는 동그란 물체가 떠오를 때면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에이. 설마.'

미간이 진지해졌다.


내 몸 안의 동그라미를 안고 무사히 워크캠프를 마쳤다. 현지 가정에 초대를 받아 프랑스 가정식을 맛본 일, 주민들과 함께했던 낚시와 카약 체험, 말로만 듣던 '히치 하이킹'을 직접 해본 경험, 카오르 와인을 양손 가득 들고 버스를 타려고 뛰어가던 모습 등 재밌는 추억들이 꼭 엊그제 같다.


프랑스-벨기에-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로 이어지는 여행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결절의 모양이 동그랗게 예쁘고,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절대로 암은 아닐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며칠 뒤 엄마가 받은 전화는 "큰일 났다.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유방 외과였는데, 의사 선생님은 이 나이에 환자는 처음 본다고 했다. 당연히 양성 종양인 줄 알고 맘모톰으로 조직은 전부 제거해 버린 후였다. 의사도 모를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도 몰랐던 아니 몰라도 됐던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곧바로 협력 병원 두 곳에 인계되었고, 가족과 상의 끝에 지금의 병원에서 수술하기로 했다.


유럽여행까지는 참 꿈만 같고 좋았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갑자기 수렁으로 빠진 느낌이었다.

젊은 날 암을 만난 건 안타깝지만 만일 그때 내가 워크캠프를 가지 않았더라면, 한국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냈더라면 과연 암을 발견할 있었을까? 매일 청하던 시에스타 덕분에 누워서 친구와 노닥거릴 여유가 있었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며 엉겁결에 병을 찾아 치료할 수 있었다.

요즘은 건강 정보의 홍수지만 당시만 해도 샤워하면서 자신의 몸을 정성껏 만져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암 예방을 위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프랑스에 가지 않았더라면 조기에 암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처럼 이미 벌어진 일에도 감사한 순간들이 있다.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워크캠프 추억이 떠오른다. 마리오 보스의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누군가 흥얼거린 노래 하나가 트럭 전체로 퍼져나갔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라이프 고즈 온- 랄랄랄라 라이프 고즈 온-"

비틀즈의 명곡은 곧 돌림노래가 되었다. 달리는 트럭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이 구슬땀을 식혀주었다.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소리 높여 노래하던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였다.


5년 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너네도 알다시피 우리가 너네랑 제일 친했잖아. 진짜 보고 싶을 거야."

나의 눈물의 고백을 듣던 체코 소녀들도 모두 엄마가 됐겠지. 불어를 하는 입 모양이 귀여웠던 러시아 친구들, 꽃미남 캠프 리더 케빈과 영어를 못해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면서도 즐거웠던 토마스도 그립다.


그해 여름 프랑스의 시골에서 함께 보낸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잊고 지내던 시간들이 금방 되살아난다. 생의 한가운데 서 있을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겠지. 우리가 함께 부른 비틀즈의 노래처럼 삶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인생은 흘러간다는 것을.



* Obladi oblada는 나이지리아어로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 일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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