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인지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에게는 누워서 만난 친구가 있다.
세 번째 재발 소식을 듣던 날 나는 처음으로 진료실 안에서 울었다. 폐암 수술 이후 6개월이나 지났으려나. 다시 유방암이라니. 신은 양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
"어떡하죠... 또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서러움이 차올랐다.
"선생님 저 폐 수술하고 6개월도 안 됐어요. 진짜 다시는 수술 안 하게 잘 좀 부탁드려요. 엉엉엉."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젊은 의사는 다급하게 환자기록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 분도 재수술이고, 여기 이 분도 비슷한 또랜데 또 수술하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암으로 다시 수술하는 일은 왕왕 있다며 짠내 나는 위로를 해주셨다. 냉정한 재판관처럼 암 선고를 하는 대신, 뭐라도 해주려고 하는 그의 모습이 고맙기만 했다.
여섯 번째 수술이었다. 유방암이 처음 재발 했을 때, 수술한 조직검사에서 또 암세포가 나왔다. 퇴원한 지 일주일 만에 재수술을, 두 해 동안 반복 했다. 전절제를 해달라고 졸랐지만 의사는 여러 가지 상황상 부분절제를 고집했다. 수술이 깨끗하게 됐더라면 일주일 간격으로 칼을 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이렇게 자주 전신마취를 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 번째 재발, 여섯 번째 수술에 가서야 나는 주치의를 바꾸고 광범위한 수술을 받았다. 겪은 게 많은 탓에 가슴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에 누워 수많은 상념들과 마주한다. 천장의 무늬만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이 침대가 차가운 수술장 말고 다른 데로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이었다.
누워 가는 내 옆으로 병원에 온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다들 건강하게 살아있다. 나도 그냥 병문안으로 온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혼자만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인 된 것 같았다.
끝나지 않았으면 싶은 이송원과의 만남은 수술장 앞에서 마무리가 된다.
"여기서부터는 보호자 들어오시면 안 돼요."
짧은 안내와 함께 엄마 아빠의 모습도 문 틈 사이로 사라졌다.
"잘하고 와. 엄마 아빠 여기 있어. 이번 수술이 진짜 마지막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진짜 마지막'이 그 후로도 계속된 게 문제였을 뿐, 부모님의 말에는 죄가 없다.
수술장에 들어가면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우선 비슷한 시각에 수술받는 환자들이 줄줄이 도착하면 간호사 선생님들이 환자 인적사항을 확인한다. 손에 찬 팔찌로 한 번, 구두로 또 한 번 본인의 이름과 어떤 선생님에게 어느 부위 수술을 받는지 일일이 묻는 작업이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싶다는 마음과는 달리, 별 일 아닌 일이 될 수 없는 암수술 앞에 나는 정성껏 내 이름과 담당 의사 이름을 말한다. 오른쪽 수술인지 왼쪽 수술인지 헷갈릴 새라 노파심에 한번 더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잠시 대기하고 있으면 파랑 혹은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또 다른 선생님들이 나와 나를 진짜 수술방으로 인도한다. 모든 과정에서 나는 처연하게 누워있을 뿐이다.
한 번은 수술실 이동을 기다리며 양옆으로 줄지어 누워있던 환자들에게 시선이 갔다. 대부분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었지만 그날따라 내 또래의 여성분이 바로 옆 침대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운 건지 베갯잇에 얼룩이 보였다. 예전의 내 모습이었다.
"저기요... 무슨 수술하세요?"
말이 먼저 나갔다. 가끔 생각보다 말이 더 빨리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안쓰런 마음에 오지랖이 발동할 때 특히 그렇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유방암 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어느 선생님에게 수술받는지 물어보자 마침 주치의도 같았다.
"울지 마세요. 잠깐 잠들었다 일어나면 금방 끝나더라고요. 젊은 환자들은 회복 속도도 빠르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나는 숙련자(?)로서 수술이 두려운 새싹 환자를 다독였다. 이야기를 듣던 그분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처음 수술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저는 지금 여섯... 아, 근데 중간에 두 번은 재수술한 거라 그거 빼면 네 번...?"
가끔은 천연덕스럽게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남 일에 관심이 없거나 입을 다물거나.
괜찮을 거라는 격려의 말을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야기가 길어질 때면 산뜻한 분위기가 어려웠다. 아차 싶어 "잘될 거라고"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차례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서도 저쪽 방에 아까 울던 아가씨가 마음이 쓰였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 나지만 첫 암 수술, 두렵고 무서운 마음만 한 가득인 사람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길 빌었다.
누워서 만났던 친구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가끔 외래 진료를 볼 때면 수술장 앞에서 나란히 누워 울던 동갑내기 친구가 생각난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저 병원 어딘가에서 한 번은 스쳐갔으려니 한다. 벌써 8년 전 일이라 이왕지사 그녀가 깨끗이 완치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사이 나는 한 번의 재발을 더 겪었다. 유방암은 마지막 치료 이후 5년을 향해 가고 있고, 폐암은 이제 9년째에 접어들었다.
여러 번의 수술에서 잘 회복한 것도 자랑이었으면 좋겠다. 젊은 날 쌓은 화려한 병력들도 부끄러움이 아닌 단단한 경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아픈 걸 잘 견디는 게 특기가 돼버린 나는, 요즘도 가끔 투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응원의 말을 남긴다. 대부분은 속엣말이다. 조용히 기도하고 쾌유를 빈다.
항상 누군가 무슨 암이냐고 물어보면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지금 완치되신 거죠?" 하는 물음에는 차마 그 희망에 찬 얼굴을 보면서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혼자 열렬히 응원한다. 다 잘 될 거라고. 나도 이렇게 살아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부디 언젠가는 나도 깨끗하게 완치되어 선한 마음이 육성으로 터져 나왔을 때, 상큼 발랄하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때는 몇 번 수술했는지 반드시 비밀로 할 것이다.
암세포야 잘하자.